고등학생 시절, 선생님들은 늘 ‘대학교 1학년’이라는 단어에 낭만을 심어주었다. 화사한 꽃이 핀 캠퍼스, 연인과 손을 잡고 걷는 백양로, IT 도서관에서의 밤샘 공부와 센트럴 파크에서의 돗자리 술. 경북대학교에 입학하기로 한 내가 1월에 바랐던 것들이다. 3월이 됐고, 개학은 2주나 미뤄졌다. 4년을 함께할 동기들과의 첫 모임은 실시간 수업이었고, 자취방은 구했지만 기말시험을 칠 때까지 갈 일이 없었다. 그렇게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이 지나갔고, 1학기와 비슷했던 2학기도 어느새 다 흘러갔다.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20학번들은 여전히 학교가 낯설 것이다. 설렘과 떨림으로 가득 찼어야 할 신입생 시절은, ‘언제쯤 학교에 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방 안에서의 끝없는 고독으로 가득 찼다. 새내기 새로 배움터와 학과 MT, 동아리 가두모집과 대동제는 유튜브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값진 경험이 담긴 조언을 해줄 선배들은 인터넷으로밖에 볼 일이 없었다. 아직 경상대학이 어디에 있는지, 테크노 문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벌써 1년이 지나갔다.한 해를 다 보내고 아쉬운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는 비단 나만의 아쉬움이 아니라 작년을 살았던 모두의 아쉬움일 것이다. 더
우리는 겸손한 태도가 중요하다고 자주 듣는다. 특히 유교 문화가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크다. 겸손함이란,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역으로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자세나 행동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지나치면 좋지 않다. 요즘은 삶을 살면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기계적으로 겸손해 하는 이들도 많다. 물론 겸손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좋고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겸손한 자세가 무조건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겸손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여러 종교나 사회에서 이상적인 태도나 모습으로 그렸다. 서양의 기독교에서도 겸손은 좋은 자세로 여겨졌고, 동양의 유교에서도 겸손은 바람직한 자세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때론 너무 기계적이고 주입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겸손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교육을 받은 탓인지 가끔 우리는 겸손이 지나쳐서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지 못할 때도 있다.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운이 좋은 경우 굳이 자신이 말하거나 드러내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가치를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경우
R=VD.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Realization=Vivid Dream, 즉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라는 뜻을 가진 공식이다.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갑자기 “혹시 R=VD라는 공식 알아?”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단순히 그러한 공식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러자 친구는 R=VD 공식 사용 방법과 원리를 알려줬다.R=VD 공식 사용 방법 중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글 VD 기법’이다. 노트나 메모지를 준비한 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글로 작성한다. 그리고 그것을 읽으며 꿈이 이루어진 모습을 상상한다. 자주, 지속해서 상상하다 보면 뇌는 우리가 실제로 성공했다고 믿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꿈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이끌릴 수 있는 것이다.친구는 직접 공식을 사용해서 효과를 봤던 경험도 말해줬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공식의 효력에 대해 크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단순히 우연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1학기 때 시험 성적이 내가 원했던 만큼 나오지 않았던 터라, 2학기 때는 더욱 열심히 공부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
코로나19도 벌써 9개월이나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도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여가로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대표적인 실내 여가 중 하나인 인터넷 방송의 수요가 증가했고, 대학교 강의, 초·중·고등학교의 수업과 조례·종례, 각종 모임과 동아리 등을 화상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하면서 1인 미디어의 수요는 더더욱 증가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의 지난 7월 31일 2분기 영업수익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이후 올해 1분기 대비 9%의 수익 증가를, 누적 방송 개설 수는 8월 대비 4배, 동시 시청자 수는 2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의 특성상 공중파 방송과 달리 각종 제재 수위가 낮아서 콘텐츠가 매우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방송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누구나 비제이(스트리머)와 시청자가 될 수 있다는 손쉬운 접근성 덕분에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기도 한다. 1인 미디어는 높은 수요가 존재하고 그 중요성 역시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해당 플랫폼의 에티켓과 향유 문화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 생기는 문
대한민국 청년, 유럽의 아나키즘을 만나 다. 지난 학기에 휴학을 하고서도 뚜렷한 목 적지를 몰라 늘 어두운 밤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기분이었다. 길을 잃고 두려움 속에 서 헤매고 있을 때 『19세기 유럽의 아나키 즘』을 만났다. 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불 만 대신 국가에 대한 ‘분노’를 생각하게 해 준 이 책 덕분에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우연 으로 만나 삶의 선물이 되어준 이 책은, 언 론인을 꿈꾸며 글을 쓰고 국가에 대해 고민 하곤 했던 나의 정치적 감수성을 되찾아 주 었다. 개념이 생소하고 내용도 쉽지 않았지 만 나에게 그렇게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나키즘 그 자체를 넘어서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말하고, 대한민국 청 춘들을 힘들게 하는 ‘대한민국’을 말했으며,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기억해야 할 ‘조 언’을 건넸기 때문이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과거 유럽의 아 나키즘을 불러와야 할 때 부끄럽지만 그동안 ‘아나키즘=무정부주 의’로 착각해 왔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중대한 사실은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나키즘은 국가 자체를 반대하고 국가의 폐지 혹은 절멸을 지향하 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
지난 20대 총선 이후 ‘협치’라는 단어가 한동안 세간에 맴돌았다. 국회에서 과반수를 얻은 정당은 없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서로 120여 석을 나눠 가졌으며, 그 사이의 다른 정당들도 적지 않은 의석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 했다. 협치는 그렇게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당시 국회의장이던 정세균 의원은 협치에 대해 ‘각자의 주장에서 벗어나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사람들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해 가는 ‘협치’를 하길 바랐다.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광화문에는 수많은 촛불과 태극기가 지나갔고, 여러 번의 단식과 한 번의 필리버스터가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성향이 다른 정치인들이 ‘협치’하는 사례를 얼마나 보았는가?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서로 싸운 사례에 비해 얼마나 많았을까?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되 그들의 타협을 보며 흐뭇해했던 기억이 없는 것을 생각해 보면 협치보다는 대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누구를 집어 탓하기도 어렵다. 한 정당이 어떤 정책을 제안하면 다른 정당은 깊이 검토도 하지 않은 채 반대에 나서고, 제안한 정당은 반대 의견을 들을…
지금 내 대학생활 1년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것들이 많다. 부모님을 비롯해 여러 어른들이 스무 살에 많은 걸 경험해야 한다고 늘 얘기해 왔다. 어쩌면 나는 무엇을 많이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내 스무 살을 너무 눈치만 보며 살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물론 스무 살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나이임은 분명하다. 성인으로서의 첫 걸음이며 스물한 살 이상의 성인이 주는 의미와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생각해보면 스무 살이라서 못 하고 못 보는 것들도 많다. 많은 친구들이 술을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데 쓴 돈이 아깝다고 하지만 난 이러한 부분에 쓴 돈이 절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대를 다녀오고 정말 내가 내 인생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 뒤늦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스무 살에 실컷 노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교라는 보다 큰 사회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배워보는 이 시간 또한 여행에서 배우는 여러 가지와 마찬가지로 값지다고 생각한다. 스무 살이 아니면 언제 동기 자취방에서 밤새 놀고 시험기간에도 과방에서 야식을 먹으면서 노는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추억들도 지나고 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큰 힘을 줄 수 있을 것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는 여성이란 이유로 고통 받는 청년 기혼여성, 김지영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녀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어머니나 외할머니에게 씐 것처럼 행동하는데, 이 ‘빙의’ 증세는 이 영화의 핵심적 장치다. 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한다.빙의 증세는 그녀의 주체성을 갉아먹는 요소들에 의해 심화됐다. 그렇기에 이는 그녀가 주체성을 회복한다면 해소될 것이다. 아이를 돌보면서 사회적인 무력감에 젖어가던 김지영은, 전 상사가 새로 회사를 차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일자리를 부탁하고자 한다. 육아를 하며 항상 칙칙한 옷만 입고 다니던 그녀는 전 상사와의 미팅을 위해 정성 들여 화장을 하고, 새파란 코트를 입으면서 생기를 내뿜는다. 이 장면은 그녀가 아들을 낳기 위한 과정 중에 태어난 딸, 누군가의 엄마, 내조 잘하는 아내이자 며느리이기 전에, 똑같은 인간이며, 그렇기에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활동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주변 상황으로 인해 결국 복직이 좌절됐을 때, 빙의 현상이 절정에 달한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이러한 빙의 장면은 여성 혐오의 폐해를 자세히 그려낸다. 어머니 세대가 겪어 왔던 여성혐오 문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