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집단에서 소외되는 순간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물리적으로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과 비슷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과학적인 검증을 떠나 참 적절한 비유다. 그저 팔 한쪽이 아닌 머리털 끝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하나가 절멸해 공기 속으로 흩뿌려지는 느낌이 좀 더 어울리겠다. 그저 사무치게 고통스러워 심연으로 무한히 빠져가는 듯한 상태와 말하기도 버거운 시간 속에서 사회적 생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렇게 어둠 속으로 하나둘 사라져버린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시기가 있었고 비슷한 시기를 보내던 사람 곁에서 무심히 그들을 지켜본 시간도 있었다. 고립 속에서 버둥대던 순간도, 남의 고립을 지켜보던 순간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착잡함의 강도는 엇비슷했다. 은연중에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위계와 질서 그리고 불필요한 도태로 위안으로 삼는 수많은 표정이 가증스러워였을까. 하지만 내가 간사한 건지 그저 사람이 간사한 건지 나의 과거를 생각하지 못한 채 고립된 이에게 따뜻한 손 한 번 내밀어 주지 못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굳이 그들을 위해 내 감정의 여유분을 내어주기 귀찮아서 혹은 그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기 싫어서. 그렇게 사람들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물을 좋아했고,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바닷속 생태계에도 관심이 많았다. 에메랄드빛 바닷속에 다채로운 색깔의 물고기가 헤엄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한 번쯤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입학 후 바로 경북대학교 수중탐사대(스쿠버다이빙 동아리)에 지원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경북대학교 동아리 수중탐사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스쿠버다이빙을 하게 되었다. 오픈 워터 과정-첫 다이빙 자격증-을 위해 남해에 갔을 때의 설렘을 아직도 기억한다. 대한민국의 가장 남쪽으로 가서 하늘과 맞닿아 드넓게 펼쳐져 있는 바다와 중간중간 솟아있는 섬과 바다의 푸르면서도 따뜻한 색감이 참 좋았다. 보트를 타고 섬에 내려 다이빙을 준비했다. 처음 하는 다이빙이라 긴장되고, 설레기도 했다. 11월은 스쿠버다이빙을 하기엔 조금 추운 계절이었지만 처음 바닷속에서 10분 이상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독특한 경험이었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스쿠버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올해 여름엔 울릉도로 동아리 하계원정을 떠났다. 시야가 좋기로 소문난 울릉도에서의 보트 다이빙은 내가 상상한 스쿠버다이빙 그 자체였다. 13m까지 하강하자마자 바로 눈앞을…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한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5월을 가정의 달로 공식화하여 아주 많은 행사를 주최해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족 신문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가족 신문에 차마 게재할 수 없는 기삿거리가 많았다. 그 이유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만드는 가족 신문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을 검색해 보면, 엄마 아빠 그리고 자녀들이 서로를 안아주며 활짝 웃는 모습만이 나온다. 물론 그런 가족도 이 세상에는 많이 존재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실 가족이라는 존재를 떠올려 보았을 때, 마냥 행복하고 좋았던 순간만을 떠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가족에게 화가 나기도, 실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가족은 그만큼 가까운 존재라서 조그마한 말로도 행동으로도 서로에게 쉽게 상처 입힐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가족 영화를 한 편 추천하고 싶다. 가족 영화는 ‘가족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하거나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이며 영화 장르 중 하나이다.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와 함께 행복하고 완벽하게 맺힌 결말로 끝나는 영화 몇몇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지만, 만약 누군가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낚시를 나간 평화로운 가족들의 모습으로 문을 연다. 두 형제와 아들, 세 명의 따스하고도 일상적인 풍경. 그런데 감독은 이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이 장면은 계속 롱숏으로 멀리서 찍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아름다운 순간이 지금의 리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멀리서 보는 듯한 희미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다음 현재의 리 플레처가 나타난다. 그의 직업은 아파트 관리인, 무덤덤하고 무기력해 보이지만 갑자기 화를 내는 평범해 보이는 인간. 하지만 그는 반지하인 자기 집처럼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존재이다. 눈이 덮은 그의 창처럼 그의 맘에는 차가운 상처로 가득 차 있으며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그런 그에게 형의 부고를 알리는 소식이 온다. 그리고 리는 어쩔 수 없이 마을로 돌아간다.이 영화에서 과거의 플래시백과 현재는 쉽게 구별할 수 없다. 영화는 과거 장면임을 알리는 표식을 삽입하지 않았다. 리에게 그 과거의 상처는 현재형이며 그가 과거와 현재가 무의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리가 형의 유언에 대해 아는 순간, 당연히 그는 끔찍한 밤을 떠올린다. 그때 영화는 리의 얼굴과 과거에 발생한 그의 실수 그리고 창밖의 풍경을 교차시
우린 살아가며 많은 과오들을 저질렀고 일부는 우리의 기억으로 저장되었다. 기억들로 인한 괴로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문제의 기억들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근데 이러한 기억들을 선택적으로 지울 수만 있다면, 과연 지우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줄 영화, 이터널선샤인을 소개한다. 이터널 선샤인(2005)주인공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기차에서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 또한 여느 연인들처럼 갈등 후 이별을 하게 된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이 이별 후 먼저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운 것을 알고, 배신감과 분노로 가득 차라쿠나 회사를 찾아가 자신의 기억 또한 지워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기억을 점점 지워 갈수록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들과 직면하게 되고, 조엘은 그제서야 기억을 지우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후회하게 된다. 고통스러운 기억도 분명 존재하지만, 행복했던 시간 또한 분명 존재했음을 우리는 공감한다.“망각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메리, 이터널 선샤인 中망각으로 실수조차 망각하는 것이 과연 축복받은 일인 것일까. 다시 ‘기억’에 관하
어느 날 갑자기 히틀러가 현 시대로 오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 히틀러는 그가 살던 당시와는 너무나도 변해버린 사회에 적응도 잘 못하고 전쟁, 나치, 유대인 학살 같은 말들을 떠들어대는 그를 사람들은 미친 사람 취급할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가 바로 2015년 개봉한 다비드 브넨트 감독의 <그가 돌아왔다>이다. 과거 총통벙커가 있던 자리에서 전쟁 중이던 히틀러는 70년 후의 독일에서 깨어난다. 본인이 있는 곳이 2014년의 독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히틀러는 당황하여 기절하지만 신문 가판대 주인의 도움을 받아 2014년의 독일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프리랜서 영상제작자인 사바츠키를 만나 ‘히틀러가 현대 독일에 온다면’이라는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다. 코미디 장르 영화인 이 영화는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관객의 웃음을 유발시키며 코미디 장르 관객의 영화에 대한 기대를 충실히 만족시킨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히틀러는 자신이 2014년에 와있다는 것을 눈치 챘음에도 독일 총통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대부분의 대화에서 자신의 국가관과 정치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관성을 보인다. 이러한 히틀러의 태도와 그를 둘
코로나가 터져 모두의 일상이 마비된 2020년은 참 우울하고 답답한 해였다. 2021년에는 무슨 활동이라도 좋으니 대학생다운 활동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그때 학과 동기가 BIK(Books In KNU, 중앙도서관에서 주최하여 교직원과 대학생이 함께 활동하는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이처럼 우연하고 사소한 동기로 참가하게 되었지만, BIK는 2021년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활동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 모임은 BIK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소개하고 이 활동을 통해 내가 얻게 된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 팀의 주된 활동은 독서토론이었다. 학생 멤버 3명이 돌아가며 작성한 발제문을 바탕으로 주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발제문을 작성하는 것은 까다롭고 귀찮은 과정이었지만 이 발제하는 과정이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발제문을 완성할 수 없다. 관련된 다른 해석도 찾아보고 곰곰히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덕분에 책의 배경과 맥락을 함께 생각하게 되고 비판적인 독서 시각을 키울 수 있었다. 우리 BIK 모임이 단순한 독서 활동이 아닌 깊이 있는 활동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완성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단체 관람으로 <코리아>라는 영화를 보러 가서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영화의 주연은 명실상부 대스타인 하지원과 배두나였는데, 이상하게도 내겐 조연으로 잠깐 출연한 어느 배우의 연기가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지금껏 영화를 보면서 이랬던 적이 있었나? 놀란 마음으로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서 알아낸 그 배우의 이름은 바로 한예리였다.그 이름을 꼭 기억하고 있다가 대학교에 오고 나니, 마침 한예리가 <최악의 하루>라는 독립영화의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두근대는 마음으로 영화 시간표를 찾아보던 나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상영관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곧 그 영화를 상영한다는 대구 독립영화 전용관 오오극장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길로 <최악의 하루>를 보러 가서 이제껏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독립영화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있었다니! 이렇게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있었다니! 이렇게 소중한 영화관이 있었다니!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내가 독립영화에 폭 빠져버리게 된 순간은 이렇듯 의외와 놀람의 감정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