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서남극의 스웨이트(Thwaites) 빙하 인근에서 획득한 해양 관측 자료를 분석하여 빙하가 녹아 나온 물인 융빙수가 남극 얼음의 용융 속도를 다시금 줄일 수 있다는 일명 ‘자기방어 기작’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였다. 해당 연구 결과는 연구의 참신성과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1월 13일 자로 저명한 국제 학술지인 Nature Communications에 출판되었고 경북대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되기도 하였다.서남극 지역은 빙하 밑의 기반암이 해수면보다 아래 있기 때문에 무겁고 따뜻한 성질의 환남극 심층수가 쉽게 얼음 하부로 유입되어 다른 남극 지역에 비해 빠른 용융이 발생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중에서도 서남극에 위치한 스웨이트 빙하는 최근 남극에서 가장 빠르게 녹고 있는 빙하이다. 특히, 스웨이트 빙하는 남극 상류의 빙하 흐름을 막고 있는 역할을 하므로 스웨이트 빙하가 빠른 용융에 의해 붕괴될 경우 서남극 빙상 전체의 급격한 붕괴를 초래해 전 지구 해수면을 수 미터(5~6m)까지 상승시킬 것으로 예측되어, 이 빙하를 ‘운명의 날 빙하’라 부르기도 한다.스웨이트 빙하를 비롯하여 서남극 지역에서는 따뜻한 해수 유입에 의한 빙하의 빠른 용융으로 많은 양의…
미국에서 거주할 때의 일이다. 미국 달러로 물건값을 계산하면서 항상 머릿속에서는 달러 가격에 해당하는 한국 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국 돈으로 계산할 때 미국 생활 물품의 가격이 왜 그렇게 비싼지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생활 물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계산대 앞에 서 있다가 다시 돌아가 슬그머니 물건을 내려놓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 미국 달러 가격을 한국 가격으로 환산하는 버릇은 6개월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그 이유는 비싼 미국 달러 물가에 점차 무덤덤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싼 달러 물가에 스스로 적응하는 데 꼬박 6개월이 걸린 셈이다. 달걀 51%, 시금치 10%, 배 45%, 마늘 28%, 돼지고기 12%, 제빵 5%… 이 숫자는 지난해 4분기에 슈퍼마켓에서 소비자들이 자주 구입하는 생활 물품 가격의 상승률이다. 이것은 일 년 동안 오른 가격이 아니라, 한 분기 동안 오른 가격 상승률이다. 숫자에 둔감한 사람으로서 단순 계산만으로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연평균 목표 물가상승률 2.5%를 훨씬 초과하는 물가 상승률이다. 이렇게 오른 물가 상승률에 적응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다시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소위 비인기 학과라고 불리는 철학과의 전공 수업에도 다양한 전공의 타 학과 학생들이 제법 많이 찾아와 수강한다. 자신의 전공 공부에도 바쁠 텐데 기특하고 반가운 일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철학과 전공 수업 몇 개를 동시에 수강하고 있는 이공계열 학생이 찾아와서 고민을 토로했다. 철학 수업이 재미도 있고 진짜 대학 공부를 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끼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취업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데 자신만 딴짓을 하다가 뒤처질까 염려된다고 한다. 자신의 순수한 학문적 관심이 일종의 ‘탈선’처럼 여겨지는가 보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독배를 마셨다는 소크라테스가 생각났다.우리 대학에서 교과과정개편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이런 논의가 있을 때마다, 혹시 대학 경쟁력 강화와 취업률 제고라는 명분으로 철학을 비롯한 순수 학문 분야를 축소 또는 변질시키려 하지는 않을까 신경이 곤두선다. 많은 대학에서 기초학문 분야 학과들이 실제로 이런 운명을 겪었으니 노파심만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이 유례없는 위기에 봉착했다고 하니 걱정은 더해진다. ‘탈선’을 염려했던 학생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자
올해도 어느덧 4월, 바야흐로 봄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코로나에 지친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싶었던 것일까, 벚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곳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다. 매년 어김없이 만나는 봄꽃들이지만 마주할 때마다 새롭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8년 전, 2014년 봄. 당시에도 봄꽃들이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으리라.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날 이후 벌써 8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당시 희생자를 추모하며,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해 이날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했다. 문뜩 그날의 참사를 헛되이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국민안전의 날 외에도 매년 많은 기념일을 시행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런 날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다. 참사의 가슴 아픈 교훈을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매년 크고 작은 안전사고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안타까워하면서도, 우리에게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누구나 안전이 중요하다
지금으로부터 74년 전, 1948년 4월 3일 한라산과 인근 오름들에서 봉화가 올랐다. 그러나 제주4·3의 시작은 1948년 4월 3일이 아니라 1947년 3월 1일이다. 4·3은 그날부터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의 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기호이기도 하다. 제주4·3특별법도 “‘제주4·3사건’이라 함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4·3의 시작을 1947년 3월 1일로 규정한 것은, 4·3 발발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주도 3·1절 기념대회가 끝난 직후 경찰의 발포에 의해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은 이후의 미군정의 살인적인 탄압으로 이어져 봉기가 일어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중요한 지점은 단독선거를 저지하고 통일정부를 이루고자 했던 대중적 투쟁이었다는 점이다. 1948년 5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는 김구를 비롯한 일부 민족지도자들도 분단을 앞둔 단독선거라 하여 반대했고 전국에서 선거반대투쟁이 일어났다. 제주도에서는 과반수에도 못 미치는 선거 결과로 인
2018년에 SPACEX사가 제작해서 발사에 성공한 팔콘 헤비 발사체가 화제였던 적이 있었다. 발사 장면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그해 태어나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아이가 가장 즐겨 보는 영상이기도 하다. 팔콘 헤비는 아이가 “도와주는 친구”라고 부르는 2개의 1단 부스터가 달려 있고, 추후 재활용을 위해 지상에 다시 착륙시킬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2개의 부스터가 목표지점에 정확히 착륙하는 순간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다 같이 환호하는 장면은 이 영상의 백미이다.팔콘 헤비에는 일런 머스크가 타던 로드스터 전기자동차가 실려 있었다. 이를 페이로드(우주선)라고 한다. 보이저 1호에 인류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여러 매체들을 실어 보냈듯이, 로드스터에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인 “Don’t panic”이 적혀 있다. SPACEX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화성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기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꿈꾸듯 팔콘 헤비의 우주선이었던 로드스터는 현재 화성까지 먼 여행을 한 후 화성과 같이 태양을 공전하고 있다. 이 날 모든 시선이 팔콘 헤비에게 집중되었지만, 실제로 팔콘 헤비는 우주선을 띄우는 걸 “도와주는” 발
신입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심리학과의 김지호 교수입니다. 심리학과 관련된 이런저런 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수업에서 만나볼 수 있겠네요. 오늘은 특히 신입생 여러분께 전해드리고 싶은 말을 써봅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그런 내용입니다.인터넷은 여러분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는 매체입니다. 사람들의 공감을 기반으로 하여 커뮤니티나 SNS, 에타 등이 여론을 이끕니다. 그런데 이 여론이라는 것이 결국 더 많은 사람의 공감 지표, 이를테면 ‘좋아요’나 ‘추천’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이다 보니, 그 의견과 다른 목소리는 반대에 묻혀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런 다수의 의견은 재미나 웃음, 때로는 분노와 질투와 같은 감정을 촉발할 수 있는 짧은 사례 글들과 함께 캡처되어 여기저기 떠다니면서 모두가 아는 밈(meme)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렇게 도출된 명확한 의미,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밈, 예컨대 성차, 세대 차 등에 대한 인식은 일종의 고정관념, 나아가 편견과도 같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메시지에 과몰입한 사람들에게나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속적, 반복적이면서 새롭게 버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2020년 5월 Pandemic!: COVID-19 Shakes the World, 2021년 1월 Pandemic 2: Chronicles of a Time Lost라는 두 권의 저서를 연이어 발간하면서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호흡기 감염 질환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무거운 경고를 반복했다. 라캉(Jaques Lacan), 마르크스(Karl H. Marx), 헤겔(Georg W. F. Hegel)을 접목한 사유로 ‘동유럽의 기적’, ‘라캉 정신분석학의 전도사’, ‘서구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불리는 지젝은 이 두 권의 저서를 통해서 ‘두려움을 넘어서는 더 심각한 무언가’에 대해 피력한다. 그는 이제 더는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젝은 ‘사회적 삶 전체를 새로운 형태로 발명해야 한다’고 간절한 웅변을 토해낸다. 왜, 우리는 팬데믹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바이러스만 통제하고 나면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아포리즘을 되뇌며 늘 그랬듯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걸까? 지젝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미 팬데믹이라는 실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