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이사장과 윤희숙 의원이 헨리 조지(Henry George)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두 사람 모두 맞는 말을 했으나 그의 사상의 일부만을 얘기했다. 헨리 조지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진보와 빈곤』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은 1879년에 출간되었지만 저자의 통찰이 뛰어나서 21세기 우리나라의 현실을 잘 설명한다. 다만, 이 책을 의도적으로 오독(誤讀)하고 저자의 사상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전을 잘못 해석해서 사이비종교가 나타나듯이, 이 책을 오독하면 헨리 조지는 선동가 내지 몽상가가 된다. 내가 이해한 헨리 조지는 상식적이고 직관적이며 친(親)시장적인 사람이다.헨리 조지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는 그를 사회주의자로 보는 것이다. 헨리 조지 사상의 바탕은 노동가치설이다. 임금은 자본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자본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노동은 생산하는 즉시 자신의 몫을 가져간다. 여기까지는 마르크스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헨리 조지는 노동과 자본이 적대적이지 않다고 했다. 노동과 자본에게는 지주(地主)라는 공동의 적이 있다. 이 지점에서 헨리 조지는 마르크스와 결별한다. 생산물 중에서 지대를 제외한 나머지가 노동과 자본의 몫이다. 지주의 몫인 지대(地代)가
하혜수 교수(행정학부)대구경북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 공동위원장 <삼국지>를 보면 관우는 조조 휘하의 다섯 관문을 돌파하면서 위험을 벗어났다. 자치단체 통합은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야 하지만, 크게 보면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관문은 자치단체장의 합의이고, 두 번째 관문은 주민의 동의(주민투표)이며, 세 번째 관문은 국회의 승인(특별법 제정)이다. 대구경북의 행정통합은 광주전남 등 다른 지역보다 앞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 주민과 국회의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이제까지 중앙정부는 주민의 요구가 아닌 국가의 필요에 따라 하향식 자치단체 통합을 추진했다. 그에 따라 중앙정부는 지방의회 의결이나 주민투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다음 법률의 제정으로 끝냈다. 마창진 통합에서는 지방의회 의결이 선택되어 주민들은 참여할 기회가 없었고, 청주청원 통합에서는 주민투표가 선택됐으나 토론과 협의과정이 생략되어 주민들은 정확한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투표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의 미래를 위한 선택에서 주민들은 배제되거나 깜깜이 투표에 내몰린 것이다.대구경북의 행정통합은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서 주민주도의 상향식 접근을 취하고 있다. 상향식 접근의 가장 큰…
백두현 교수(인문대 국어국문) 지구 전체가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이 뚜렷해 가는 21세기에 한국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변화 속에 놓여 있다. 한국은 경제 성장을 통해 국가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으며, 이른바 한류를 통해 문화 발신자 역할까지 하고 있다. 문화 발신자임을 증명한 한류의 세계화는 한국인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이다. 과거 2천여 년 동안 한반도는 중국, 일본, 유럽, 미국 등에서 발신하는 학문과 문화의 수신자 역할만 했다. 이제 한국인이 만든 첨단 제품을 세계로 수출하고, 한류 문화가 세계인의 호응을 받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글의 위상도 높아졌다. 훈민정음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과학적 원리를 높이 평가했다. 특히 임금이 백성을 위해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의아해하며 믿지 못하겠다는 외국 학자도 있다. 하지만 한글이 비록 뛰어난 문자라 해도 이 문자를 세계인이 필요하도록 만들어야 그 가치를 세계인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 한글이 아무리 훌륭한들 그네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면 한글의 가치는 제몫을 다 할 수 없다. 외국 젊은이들이 방탄소
안승택 교수(인문대 고고인류) 영어의 ‘post-’라는 접두사는 한국어에서 ‘탈-’이나 ‘후기-’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다음에 따라붙는 단어와의 관계에서 ‘탈-’은 단절된 벗어남, ‘후기-’는 연속된 다음 단계임이 강조되는 뉘앙스였고, 양쪽 모두 적절치 않다고 여기면서 그냥 외래어로서 ‘포스트-’라고 쓰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탈구조주의도 후기구조주의도 문제라면 포스트 구조주의라고 쓴들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한데, 또 그런 사소한 탈출구를 찾고 흡족해하는 것이 지식인의 생리일 수도 있겠다. 코로나 앞에 ‘포스트’를 붙이려는 지금 상황도 유사하지 않은가 한다. 단지 차이라면, 코로나에 붙은 포스트는 벗어남이나 뒤이음보다는, 그 등장 이후 함께 간다는 뜻이 강하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한창 그 복판에서 뒹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접두사의 문제로서만 아니라, 이 코로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점은 흥미롭다. 바이러스와 함께 하는 삶이라니, 운명을 거부 못 하는 고전 비극 속 주인공도 아닌데, 사랑은커녕 일말의 호감조차 없으면서, 이처럼 숙명적 공존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경우가 또 있었을까. 멧돼지나 바퀴벌레와의 공존, 길
오정일 교수 (행정학부)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은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프록램 알파고와의 대국을 앞두 고 알파고에 5:0 혹은 4:1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프로기사들 역시 인공지능 이 심오한 바둑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대국 결과, 알파고가 4:1 로 승리했다. 이세돌 9단은 신의 한 수인지 알파고의 버그인지 알 수 없는 수로 한 판 을 이기는 데 그쳤다. .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의 신이 된 셈이다. 프로기사들은 그동 안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작년 12월 이세돌 9단은 우리나라 인공지능 ‘한돌’을 상대로 은퇴 바둑을 두었다. 이세 돌 9단이 두 점을 깔고 둔 결과는 1:1이었고 프로기사들은 중국 인공지능 ‘절예’의 훈수 를 보면서 바둑을 해설했다. 격세지감(隔世 之感)이다. 이세돌 9단은 왜 젊은 나이에 은 퇴했을까? 알파고가 단기간에 자신을 넘어 서자 의욕을 잃은 것 같다. 알파고가 커제 9단에 3:0으로 이긴 후 구 글은 바둑 인공지능을 만들지 않는다. 알파 고를 통해 구글 인공지능의 우수성을 충분 히 알렸기 때문이다. 알파고로 인해 구글 주식의 시가 총액은 10조8천억 원 증가했다. 1997년 I
이창희 교수(자연대 생명과학) 바이러스는 스스로 에너지 합성을 하지 않고 숙주 세포에 기생해서 번식하는 기생체이다. 바이러스는 우리 인간을 포함한 숙주를 활용하여 생존,진화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터득해 왔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인간에게 치명적인 급성 감염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인류의 능동적·수동적 노력 등으로 박멸돼 지구상에서 사라져 왔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천연두 바이러스이다. 만약 천연두 바이러스가 치사율이 낮고 급성보다는 만성적으로 질병을 유발하였다면 현재까지도 진화를 거듭하여 생존해 있지 않았을까? 이와 유사한 것으로 에볼라 바이러스가 있다.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한정되어 발병된 것은 잠복기가 짧고 감염된 환자의 경우 능동적 사회활동이 거의 불가능하여 직접 접촉에 의한 숙주 간 전파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러스 스스로가 잠복기간을 지연시켜 증상 발현 전 감염자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빠져나와 바이러스가 유럽 및 미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는 인간의 활동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인간을 감염시켜 현재까지 유행과 대유행을 반복하면서 생존과 진화를 거듭해왔고, 급기야는 인류에 커
지난 11월 21일, 프랑스에서 아일랜드로 가는 화물 컨테이너 안에서 16명의 이주민이 살아 발견됐다는 말에, 필자는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 달 전 벨기에 제브뤼헤에서 영국 에섹스로 이송된 냉동고에서 사체로 발견된 39명의 베트남인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발 뉴스를 찾아보면, 지난 한 달 “대형화물차(lorry)에서 발견된 이주민”에 대한 소식이 예사롭지 않다. 19일에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가는 컨테이너에서 25명이, 6일에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가는 컨테이너에서 아동을 포함한 20명이, 4일에는 그리스 냉동차에서 41명이, 지난 10월 30일에는 벨기에를 지나는 냉동차에서 12명의 이주민이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다. 출신 국가도 이란, 수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베트남 등 다양하다. 이들은 왜 화물차에서 발견되는 것인가?전쟁과 빈곤으로 난민과 이주민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1951년 UN 난민협약을 기초로 한 거버넌스 시스템은, 빈곤에 쫓기는 “경제난민”을 난민의 법적 정의에서 제외하고도 늘어나는 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난민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10개국 중, OECD 가입국은 터키(1위)와 독일(8위) 단 두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곳이다. 그런데 학문이 삶과 분리될 수 없듯이 대학 역시 사회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학문이 삶을 성찰하여 우리를 참된 길로 인도해야 하듯, 대학도 이런 학문 활동으로 사회 전체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 학문과 삶, 대학과 사회가 분리될 수 없다면, 대학의 연구와 교육도 이런 바탕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대학의 연구와 교육도 삶과 학문 사이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이루어내야 한다. 우리는 이 같은 정신을 일찍이 철학자 칸트로부터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철학을 ‘학문으로서의 철학’과 ‘삶으로서의 철학’으로 구별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학문의 엄정성을 포기한 채 부당한 삶에 매몰되거나 삶의 현실을 외면한 채 학문의 공허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였다. 그는 사유의 엄밀함을 추구하는 ‘학문으로서의 철학’과 현실의 다양성에 참여하는 ‘삶으로서의 철학’ 사이의 조화를 모색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늘을 나는 비둘기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공기를 외면한 채 날 수 없듯이 인간의 사유도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감각이 없이는 생명력을 지닐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우리의 학문 연구와 교육도 이처럼 사유에만 머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