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류문화는 모두가 놀랄 정도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소셜미디어 매체이용은 급속하게 증가하였고, 한류콘텐츠 또한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더 빨리 더 멀리 지구촌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지구촌에 한류문화의 시대가 온 것은 K-Pop의 선풍적인 인기에서 기인하였다. K-Pop 은 사랑, 희망과 꿈 등의 노랫말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고, 세계 젊은 케이팝 팬들의 모범이 되었다. 한류문화는 건전한 인류문화 형성의 효과적인 수단과 소통의 장으로 발돋움하였고, 국가 이미지와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소비위주의 자본주의와 외모지상주의 등의 상업성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전달부족과 기업의 이익수단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최근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은 한국드라마가 예상치 않게 사상 최고의 큰 인기를 얻어서 넷플릭스의 주가는 최대로 치솟았고 기업은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그러나 해외글로벌 플랫폼의 거대 자본의 주문제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제작자 당사자들에게는 큰…
독일 서남부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프라이부르크. 프랑스, 스위스, 독일 3개국과 국경을 접한 도시. 작고 아기자기한 도심을 걷다보면 모든 도로의 양옆에 조그마한 실개천이 흐르는 걸 쉬이 목격할 수 있다. “베히레” 바로 그 실개천의 독일식 이름이다. 조르르~졸~~~ 흐르는 물소리가 걸음을 걷는 시민들에게 평안한 안식을 주고, 습도를 조절해주며 도시의 미세 먼지들까지 정화해 주어 시민들의 건강까지 덤으로 선사하는 실개천, 베히레! 이곳에 실수로 발이 빠지면 프라이부르크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전설도 있어 운치까지 한층 더한 곳이다. 베히레의 도시에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모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독일의 첫날을 맞이했다. 첫날 아침 눈을 뜨며 기숙사 밖 전경에 넋이 빠졌다. 묵직한 독일식 베란다 창문 밖으로 하얀 비둘기의 평화로운 날갯짓, 끝없이 펼쳐진 잔디밭, 영화에서나 보던 멋들어진 아름드리나무들이 한껏 어우러져 선경을 빚어내고 있었다. 독일에서 맞은 첫날의 그 놀라움. 이후 숨 가쁜 나날들이 이어졌다. 독일어 어학연수를 겸한 3개월의 프라이부르크 생활을 마감한 후,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10월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미국, 일본을 포함한 태평양연안 12개 경제체가 조인했다. 협정에 앞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세계경제질서를 쓰게 할 수는 없었다”는 말로 TPP의 성격을 규정했다. 마치 중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는 듯하다. 그러고는 “미국이 21세기의 무역질서를 세워야한다”는 다짐까지 첨부했다. 아베의 “TPP는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아부성 추임새도 안성맞춤이다. 특히 언론들은 아베총리가 미국과 안보동맹뿐만 아니라 경제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중국의 팽창에 대항하는 광범위한 전략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고 부추긴다. TPP를 중국의 확대를 막기 위해 결성된 배타적인 경제동맹체인 것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TPP가 처음 시작된 것은 2005년이다. 최초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 간의 광역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발족되었고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4개국이 참여했다. 그 후 미국 등 11개국으로 확대되었고, 최종적으로 2013년 3월 15일 일본이 참여를 전격 선언함으로써 지금의 12개 회원국의 TPP로 발족된 것이다. 주도국 미국은 TPP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애초에는 관심이 많지 않았다. 2008년 미국발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우리의 산은 올망졸망 가버린 사람들의 안식처로 덮여 있다. 무덤의 주위에는 둘레 나무를 심는다. 무덤과 숲의 경계를 지우고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대체로 무덤은 양지바른 야산에 만들어지니 좀 건조해도 별로 개의치 않고, 햇빛도 좋아하는 소나무가 제격이다. 그래서 무덤 주위에 심은 소나무를 도래솔이라 한다. 우리의 장묘문화는 멀리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부터 왕조시대의 거대한 왕릉으로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이때도 둘레나무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이에 얽힌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있다.《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고구려는 9대 고국천왕, 10대 산상왕, 11대 동천왕으로 이어진다. 고국천왕이 죽고 아들이 없자 왕비 우씨는 세 명의 시동생 중 둘째 연우를 도와 10대 산상왕으로 만든다. 그녀는 그 공로로 산상왕에게 개가하여 또 왕비가 됐다. 우씨는 우리 역사상 유일하게 왕비를 두 번 한 셈이다. 고국천왕 2년(AD180)에 처음 왕비가 되어 고국천왕의 왕비로 18년, 이어서 다시 산상왕의 왕비로서 30년을 합쳐 두 임금 48년에 걸쳐 ‘퍼스트레이디’라는 영광을 누린다. 산상왕의 뒤를 이어 아들인 동천왕이 등극하자 태후가 되었고, 왕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살았던 어린 날은 내게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된다. 이상화 시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구절에서 나는 그 옛 시골길을 떠올린다. ‘나는…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식민지 현실에서 쓰인 대표적인 저항시이면서 어찌 이리 아름다울까. 나는 시의 풍경을 묘사한 듯한 들안길 시화거리 이상화 벽화 앞에 섰다. 벽화에 그려진, 애수와 강인함이 느껴지는 이상화의 눈을 보면 아름다운 시가 그로부터 나온 것이 이해가 간다. 부드럽지만 굳게 다문 입은 그의 굴하지 않는 저항의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벽화에는 이상화의 《비 갠 아침》이 적혀있다. 시 구절 ‘내야 세상이 너무도 밝고 깨끗해서…이 땅은 사랑 뭉텅이 같구나’에서 우리 땅에 대한 진한 애정이 드러난다. 하지만 뒤이어 나는 어두운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구절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에서 시인의 슬픔이 느껴진다. 그는 이 땅을 사랑한 만큼 우리 민족 역시 사랑했을 것이다. 그래서 ‘들을 빼앗긴’ 슬픔을 누구보다 크게 느끼고, 독립운동을 할
바다를 낀 공업도시. 내게 울산이란 도시는 가족들과 함께 바다 구경 및 해산물 외식을 하러 가거나 학교에서 포스코 공장 견학을 할 때 가는 곳이었다. 수학여행의 메카 경주처럼 말이다. 구름인지 공장 연기인지 모를 것이 뭉게뭉게 고래모양으로 핀 날. 꽃피는 고래의 배경이라 할 수 있는 울산에 도착했다. 꽃피는 고래에서는 배경이 울산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가상의 공간인 처용포가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고래박물관, 생태체험관 등을 돌아보니 포경작업이 한창이었던 포구라는 점부터 고래박물관, 고래관광사업 육성까지, 장생포에 소설이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소설은 실제 장생포 인근에는 처용암이라는 유명한 바위를 모티브로 한 것 같다. 실제 반구대 암각화를 소재로 쓴 듯, ‘니은’의 아빠는 고래 떼가 그려진 선사시대 바위그림이 남아있는 고향을 ‘니은’에게 자랑했다. 또, 부모님은 아랍 상인 처용과 인도 공주 허황옥이 처용암에 왔던 신화를 좋아해 서로 처용과 황옥으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향을 사랑하던 부모님들이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며 어린 ‘니은’은 홀로 남아 그 슬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그런 ‘니은’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장포
대학을 ‘학문의 전당’,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하였는데, 요즘의 대학은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한 수단인 취업학교는 아닌지? 아무튼 취업률이 대학 평가의 중요한 지표이고 대학과 전공학과 선택에 있어 취업이 큰 변수인 것이 현실이다. 많은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매진하고 있을 때이다.검색 포털에서 취업준비생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연관검색어 중 하나로 우울증이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6월 취업준비생 465명을 대상으로 ‘취업준비를 하며 우울감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를 물은 결과 94.5%가 ‘그렇다’고 답했고, 이러한 우울감의 결과로 무기력증, 대인기피증, 만성피로, 식욕감퇴 등 각종 증상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물론 위 설문에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 모두가 정신과적 질환으로서의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취업준비생 대다수가 우울감을 경험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건강에 상당한 악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로 생각된다. 이러한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므로 단시간 내에 해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요즘 취업준비생의 하루 일과는 대부분 앉아서 공부하거나 소위 ‘스펙’을 쌓는 데 집중되어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어디냐라고 물으면 대부분 동성로와 그 일대를 떠올릴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하루하루 변화하는 그곳의 모습을 보고 자란 우리는 그곳의 옛 모습을 생각하기 쉽지 않다. 이곳의 옛 모습을 보고 싶다면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을 펼쳐보면 된다. 소설은 작가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그것도 1954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의 1년 정도가 배경이다. 가족은 피난을 위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왔고 주인공인 길남이가 30년 후 당시를 회상하는 식으로 내용이 구성된다. 뻔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내용이지만 툭툭 튀어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20여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의 마지막 장까지 긴장감을 갖게 한다. 소설은 대구를 배경으로 해 당시 대구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준다. 전쟁 후였지만 당시 대구는 육군본부와 군부대에 기댄 공장들이 있어 전쟁경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약전골목은 당시에 ‘이름만 골목이지만 차가 다니는 훤한 길’로 ‘감초 따위를 작두로 잘게 써는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약령시와 비슷한 이곳의 ‘땅이 우묵하게 꺼진 쉰 평 정도의 너른 안마당’이 있는 집이 길남이가 지내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