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선생님들은 늘 ‘대학교 1학년’이라는 단어에 낭만을 심어주었다. 화사한 꽃이 핀 캠퍼스, 연인과 손을 잡고 걷는 백양로, IT 도서관에서의 밤샘 공부와 센트럴 파크에서의 돗자리 술. 경북대학교에 입학하기로 한 내가 1월에 바랐던 것들이다. 3월이 됐고, 개학은 2주나 미뤄졌다. 4년을 함께할 동기들과의 첫 모임은 실시간 수업이었고, 자취방은 구했지만 기말시험을 칠 때까지 갈 일이 없었다. 그렇게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이 지나갔고, 1학기와 비슷했던 2학기도 어느새 다 흘러갔다.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20학번들은 여전히 학교가 낯설 것이다. 설렘과 떨림으로 가득 찼어야 할 신입생 시절은, ‘언제쯤 학교에 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방 안에서의 끝없는 고독으로 가득 찼다. 새내기 새로 배움터와 학과 MT, 동아리 가두모집과 대동제는 유튜브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값진 경험이 담긴 조언을 해줄 선배들은 인터넷으로밖에 볼 일이 없었다. 아직 경상대학이 어디에 있는지, 테크노 문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벌써 1년이 지나갔다.한 해를 다 보내고 아쉬운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는 비단 나만의 아쉬움이 아니라 작년을 살았던 모두의 아쉬움일 것이다. 더
하늘이 무너진 듯 비가 오는 날이나 수능을 하루 앞둔 날에도 한 시간씩 걸을 정도로,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친구가 나에게 “넌 왜 그렇게 산책에 집착하냐”며 물었다. 당시엔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와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산책을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는 주로 집 앞 공원을 걸었고, 대학에 입학해 이곳에 온 후로는 학교의 모든 곳을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산책을 하고 있다. 각 계절마다 산책의 감정이 다르다. 매 순간마다, 떠오르는 기분과 생각 또한 다르다.봄에 하는 산책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새 학기, 새 친구, 새싹 등 ‘새’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가는 계절인 봄은, 어딜 걸어도 설렘으로 가득 차있다. 3월엔 어린 잎과, 아직은 춥지만 조금씩 피려 하는 꽃이. 4월엔 길가를 뒤덮는 벚꽃이 산책을 풍성하게 채워준다. 한 친구가 봄은 개나리라고 얘기했는데, 그 덕에 이제는 봄에 산책할 때 개나리만 기다릴 것 같다. 여름의 산책은 느리다. 새벽을 포함한 어느 시간대에 걸어도 사라지지 않는 더움과 습함은,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 걷는 산책을 이내 우울하게도 한다. 장마철에 하는 산책이 오히려 좋다. 시원
우리는 겸손한 태도가 중요하다고 자주 듣는다. 특히 유교 문화가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크다. 겸손함이란,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역으로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자세나 행동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지나치면 좋지 않다. 요즘은 삶을 살면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기계적으로 겸손해 하는 이들도 많다. 물론 겸손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좋고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겸손한 자세가 무조건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겸손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여러 종교나 사회에서 이상적인 태도나 모습으로 그렸다. 서양의 기독교에서도 겸손은 좋은 자세로 여겨졌고, 동양의 유교에서도 겸손은 바람직한 자세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때론 너무 기계적이고 주입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겸손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교육을 받은 탓인지 가끔 우리는 겸손이 지나쳐서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지 못할 때도 있다.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운이 좋은 경우 굳이 자신이 말하거나 드러내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가치를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경우
R=VD.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Realization=Vivid Dream, 즉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라는 뜻을 가진 공식이다.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갑자기 “혹시 R=VD라는 공식 알아?”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단순히 그러한 공식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러자 친구는 R=VD 공식 사용 방법과 원리를 알려줬다.R=VD 공식 사용 방법 중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글 VD 기법’이다. 노트나 메모지를 준비한 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글로 작성한다. 그리고 그것을 읽으며 꿈이 이루어진 모습을 상상한다. 자주, 지속해서 상상하다 보면 뇌는 우리가 실제로 성공했다고 믿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꿈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이끌릴 수 있는 것이다.친구는 직접 공식을 사용해서 효과를 봤던 경험도 말해줬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공식의 효력에 대해 크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단순히 우연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1학기 때 시험 성적이 내가 원했던 만큼 나오지 않았던 터라, 2학기 때는 더욱 열심히 공부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
코로나19도 벌써 9개월이나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도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여가로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대표적인 실내 여가 중 하나인 인터넷 방송의 수요가 증가했고, 대학교 강의, 초·중·고등학교의 수업과 조례·종례, 각종 모임과 동아리 등을 화상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하면서 1인 미디어의 수요는 더더욱 증가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의 지난 7월 31일 2분기 영업수익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이후 올해 1분기 대비 9%의 수익 증가를, 누적 방송 개설 수는 8월 대비 4배, 동시 시청자 수는 2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의 특성상 공중파 방송과 달리 각종 제재 수위가 낮아서 콘텐츠가 매우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방송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누구나 비제이(스트리머)와 시청자가 될 수 있다는 손쉬운 접근성 덕분에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기도 한다. 1인 미디어는 높은 수요가 존재하고 그 중요성 역시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해당 플랫폼의 에티켓과 향유 문화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 생기는 문
전국적인 코로나19 2차 대유행으로 2학기에도 대면 수업이 어려워졌다. 경북대는 3주 간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그 이후는 코로나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통보했다. 이 방식이 옳은가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지만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학교의 권위적인 의사소통 방식과 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학생회의 무력함이다.학기 초 학교의 수업운영 방침이 결정된 것은 개강일(9월 1일)을 고작 1주일 남겨둔 8월 25일이다. 학생들은 학기동안 지낼 곳을 구해야 한다. 기숙사에 합격한 경우는 다행이지만 코로나로 기숙사 선발 인원이 줄어든 만큼 평소보다 원룸을 찾는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다. 학교 근방 원룸들은 개강 한 달 전에는 대부분 계약이 완료된다. 그래서 학기가 끝나자마자 계약하기도 하고, 개강 몇 개월 전에 계약하기도 한다. 지난 1학기에는 대구를 중심으로 퍼진 코로나에 비대면 수업이 결정돼 실제로 구해둔 방에서 살지 못했던 학생들이 많은 금전적 손해를 봤다. 2학기에는 ‘하이브리드’로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학교 발표에 따라 1학기 때처럼 계약을 새롭게 한 학생들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학기를 1달 정도 앞두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가 재유행하면서 모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울어줬으면 좋겠다.”2018년 9월 5일, 열아홉 살의 나는 이렇게 썼다. 그 뒤에는 왜 굳이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투정에 가까운 물음이 따라붙는다. 당시의 나는 혼자 진단하기에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고, 아무것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울어줬으면 좋겠다니. 인간관계의 회복과 감정의 이해를 동시에 바라는 어린애 특유의 뻔하고 우울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득 그날의 내가 궁금해진 탓에 사진첩을 뒤져서 찾은 9월 5일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해맑기 그지없게 웃고 있다. 한없이 가라앉은 글을 쓴 아이라기엔 너무나 밝은 모습이다. 나는 그 미소를 바라보면서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둘 중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어서였을까.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웃는 얼굴이 짠해 보인다. 내가 자주 글을 비상구 삼아 도망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탓이다. 이젠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이 어린애의 마음속이 얼마나 곪아있었을까를 어른의 시선에서 가늠하게 된다.나는 어렸을 적부터 글을 썼다. 처음으로 펴낸 책은 열한 살 때, 풀과 가위를 이용해 접어 만든 동화책이었다. 당시 주
“문명은 화가 난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대신 최초로 한마디 ‘말’을 하는 순간에 시작됐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이다. 이처럼, 문명의 기반은 ‘말’이다. 말은 문명을 탄생시킨 이래로, 지금까지 인간 삶을 변형시키고 발전시켜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언론인에 대해 가장 엄격하고 가혹한 처벌을 내리고 언론 개혁을 실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과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말과 글이 넘쳐난다. 한국의 언론은 하루에 1만 건이 넘는 기사를 쏟아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SNS를 통해 지인이나 유명인의 소식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디지털의 발달은 우리에게 시공간을 뛰어넘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인지능력 또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정말 우리는 이제 가려진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을까.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눈먼 자들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제주도에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입국했을 때 무슬림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사진이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