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터져 모두의 일상이 마비된 2020년은 참 우울하고 답답한 해였다. 2021년에는 무슨 활동이라도 좋으니 대학생다운 활동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그때 학과 동기가 BIK(Books In KNU, 중앙도서관에서 주최하여 교직원과 대학생이 함께 활동하는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이처럼 우연하고 사소한 동기로 참가하게 되었지만, BIK는 2021년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활동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 모임은 BIK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소개하고 이 활동을 통해 내가 얻게 된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 팀의 주된 활동은 독서토론이었다. 학생 멤버 3명이 돌아가며 작성한 발제문을 바탕으로 주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발제문을 작성하는 것은 까다롭고 귀찮은 과정이었지만 이 발제하는 과정이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발제문을 완성할 수 없다. 관련된 다른 해석도 찾아보고 곰곰히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덕분에 책의 배경과 맥락을 함께 생각하게 되고 비판적인 독서 시각을 키울 수 있었다. 우리 BIK 모임이 단순한 독서 활동이 아닌 깊이 있는 활동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완성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단체 관람으로 <코리아>라는 영화를 보러 가서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영화의 주연은 명실상부 대스타인 하지원과 배두나였는데, 이상하게도 내겐 조연으로 잠깐 출연한 어느 배우의 연기가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지금껏 영화를 보면서 이랬던 적이 있었나? 놀란 마음으로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서 알아낸 그 배우의 이름은 바로 한예리였다.그 이름을 꼭 기억하고 있다가 대학교에 오고 나니, 마침 한예리가 <최악의 하루>라는 독립영화의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두근대는 마음으로 영화 시간표를 찾아보던 나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상영관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곧 그 영화를 상영한다는 대구 독립영화 전용관 오오극장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길로 <최악의 하루>를 보러 가서 이제껏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독립영화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있었다니! 이렇게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있었다니! 이렇게 소중한 영화관이 있었다니!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내가 독립영화에 폭 빠져버리게 된 순간은 이렇듯 의외와 놀람의 감정으로 가득하다
토이 스토리 르네상스를 겪어보지 못한 우리 세대가 극장에서 처음 접한 토이 스토리는, 아마도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종착역인 4편일 것이다. 세계 최초의 Full CG 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 실제와 흡사한 색채나 질감 같은 외적인 표현력, 그리고 이 시리즈가 얼마나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는지 등에 대해 얘기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읽어낼 수 있는 실존주의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얘기해 보려 한다.인간은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갖는 존재이다. 즉,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실존’은 반드시 스스로의 자기실현에서 성취해야 하는 것인데, 관계 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이 선택을 남에게 맡겨버리곤 한다. 그런 맥락에서 ‘적당히’ 혹은 ‘보통’같은 단어는 참 편안하면서도 무서운 단어다. 모난 구석 없이, 튀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욕구에 잠식된 나머지 서서히 ‘나’를 잃도록 하기 때문이다.토이 스토리의 주인공들은 이전 시리즈에서도 실존을 탐색하는 모습을 보여주나, 장난감 세계에 국한돼 자신의 가치를 찾아나간다. 이것은 진정한 실존이라고 하기 어렵다. 김춘수 시의 한 구절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 꽃이라는 존재로 남는 것이
요즈음 여러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이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잇따라 매진 행진 중이다. 뮤지컬 시카고는 그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뮤지컬 중 하나이다. 이 뮤지컬의 배경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1920년대 미국 시카고이며 그곳의 감옥에서 석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자 죄수들과 주변 인물들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가본 적도 없는 시카고에서 그것도 1920년에 벌어진 이야기가 왜 인기가 많은 것일까? 물론 넘버(뮤지컬에서 사용되는 노래나 음악)가 좋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엄청난 인기를 설명하기에 조금 부족하다. 이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보고자 한다. 뮤지컬 시카고는 분명히 매력적인 뮤지컬이며 오락적으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정서 자체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이질적이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상 내면에서부터 차오르는 감정을 거침없이 표출하는 데 애로사항을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러한 사람들 중 한 명으로서 이 뮤지컬의 이야기 전달방식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픽션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에 살면서 ‘서편제’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청준의 원작 소설도 유명하지만, 동명(同名)의 영화가 상당한 명작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소설도 영화도 오래되었기에 작품의 내용을 아는 사람은 잘 없다. 거기다 소설 ‘서편제’가 ‘남도사람’이라는 연작 중 하나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다.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새와 나무’, ‘다시 태어나는 말’이 다섯 작품이 연결되어 ‘남도사람’ 연작을 이룬다.‘남도사람’ 연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일까? 나는 운명과 한(恨)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소리’가 싫어 도망쳤지만, 그 ‘소리’를 찾아 남도를 떠도는 남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욕심으로 눈을 잃게 된 누이는 한을 품고 있다. 이들은 다시 만나지만, 각자의 운명과 한을 지키기 위해 다시 헤어지고 남도를 떠돌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그려지며, 나는 숭고함을 느꼈다. 이것은 ‘남도사람’ 연작이 가장 한국적인 소설이라는 걸 보여준다.‘한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려면 가장 필요한 조건이 있다. 다른 민족, 국가와 차별되는 고유한 특징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러한 특징이 한이라
순수한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한평생 맹목적인 사랑만 하다 죽은 ‘위대한’ 개츠비의삶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크게 세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개츠비와 그가 사랑했던 데이지, 개츠비가 전쟁으로 떠난 사이데이지와 결혼한 톰. 비록 불륜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각자 나름의 사랑을 했다. 192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한없이 방탕했던 당시 미국 사회를 보여준다. 순수성이 사라져가던 시대를 살아가는그들의 화려한 모습은 개츠비가 매일 밤 여는 파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난했던 개츠비는 불법을 저지르며 부를쌓았고, 집착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지속했으며 그가 사랑했던 데이지의 실수 때문에죽음에 이르렀다. 이쯤에서 생각해보자. 개츠비는 삶은 과연 위대할까? 그가 사랑했던 데이지는 천상의 베아트리체와는 거리가 멀다. 개츠비가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라고 했을정도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열렸던 파티와대저택의 모든 것들은 데이지를 위한 것이었다. 한 여자에게 모든 걸 바치고자 화려해지려 노력한 개츠비, 그의 인생의 목표는데이지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들을 다 가진다면 와주지 않
몇 달 전 국내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새로운 희곡 <심판>이 출판됐다. 사람들이 죽은 후에 가는 사후세계에서 충실하게 살았는지 심판받게 된다는 이 희곡은 과연 충실하게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또한 심판을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 과정은 우리가 실제로 심판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며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면 <심판>에 나오는 대사들을 통해서 충실한 삶이란 무엇인지 한 번 알아보자. 당신은 당신의 재능을 어떻게 썼죠? 전혀 쓰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형... 아니, 다시 말해 삶의 형을 구형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을 꿈꿀 것이다. 직업적인 성공, 금전적인 성공, 명예적인 성공 등등. 여기, 우리 기준에서 충분히 성공적인 삶을 산 ‘아나톨 피숑’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피숑은 자신을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아내에게 충실했고, 좋은 가장, 좋은 가톨릭 신자, 좋은 직업인>으로 멋지게 살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사후세계의 심판에서 최고의 형벌을 선고받는다. 검사는 피숑의 평가에 대해 왜 좋은 인생이 아니었는지 죄목을 낱낱이 밝힌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요즘 인기 있는 힐링 에세이 책이다. 그림과 글이 함께 있다 보니 상당히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그렇지만 이 책은 짧고 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메시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명쾌하다. 바쁜 현대인들은 책 한 권 제대로 읽기 힘든 게 사실이기에 나는 가볍고 읽기 편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여기서 저자는 정답 없는 이 세상에서 누구도 흉내 내지 않고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려 한다. 그러면서 누구의 삶도 손상되지 않은 것은 없으며 누구의 삶도 완벽하지는 않으니, 어떤 삶이든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위로를 해주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걱정이 아닌 존중이며 ‘내가 어떤 삶을 살던 응원하며 살자’라는 걸 강조한다.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고 나 자신을 먼저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SNS에서 다른 사람들의 일상, 고작 사진 몇 장이지만 호화로운 모습이 보일 때면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느 누구의 삶도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를 볼 때 자기에게 결핍된 부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