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보다 몇 시간은 먼저 떠오르는 걱정을 뒤로하고 깊은 한숨을 쉬며 나는 또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며 조금은 걱정을 씻어보려 했다. 가방 속에 든 전공 책들은 삶의 무게 만큼이나 무겁기만 하다. 그렇게 앞만 보고 바쁘게 뛰어가다 보면 어느새 해는 지고 밤이 찾아온다. 그리고 또 새벽이 오면 밝아지려는 어떠한 걱정보다도 먼저 눈을 감으려 애쓴다. 누가 나를 해코지하지 않아도, 어떤 긴박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과거 괴로웠던 기억이 떠오르고 앞으로의 일을 미리 걱정하며, 나는 불을 끈다.나의 인생에는 늘 불안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남들보다 1년 늦었다는 두려움과 뚜렷한 미래가 없다는 불안감. 늘 우리의 불안함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 조용히 뒤로 다가와 칼을 꽂아버린다. 대학에 입학하고 신문사에 들어와 한 선배에게 ‘행복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왜인지 답을 바로 알 것 같았다. ‘손으로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부질없는 것.’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행복했던 시간을 행복했던 시간 그대로 간직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르막길 뒤엔
사람은 왜 사는가? 나는 항상 이런 질문에 농담 반 진담 반인 “죽지 못해서 산다”라고 답했다. 삶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다. 행복의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며 그 찰나마저 많은 횟수가 아니리라 생각한다. 입시 걱정이 끝나면 취업 걱정이, 취업 걱정이 끝나면 독립 걱정이, 대개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굉장히 근사하고 기쁜 일만 가득하기보단 걱정과 힘듦이 더 많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 삶을 연동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죽음이라는 미지의 공포에서 오는 생물학적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연명하는 것일까?내 인생에 있어 가장 끔찍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작년의 기억이다. 1년 동안의 재수 과정과 그리고 씁쓸한 불합격의 고배, 특히 결국 4차 마지막 합격자 발표까지 내 번호가 나오지 않아 절망해 일주일간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그 일주일의 기억은 아직도 꺼내기가 두려워 무의식 저편으로 밀어두었다. 힘들었던 기억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내 뇌의 반사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히 그냥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었고 일주일 동안 제대로 끼니를 챙겼던 적이 없었다’ 정도로 애매하게 생각날 따름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의 기억을 마주할 자
제목을 보자마자 책 한 권이 떠올랐나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500페이지가 넘는 위압감을 간신히 이겨낸다 하더라도, 첫 장을 펼치면 보이는 첫 문장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을 읽고도 책을 덮지 않을 용기가 당신께는 있을까요.저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네요. 이 책은 철학과 정치에 대해, 이데올로기와 사랑에 대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많은주제들에 대해 얘기해요. 저는 그중에서도관계, 종이보다 가벼운 우리의 관계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해요. 소설의 주인공인 토마시는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유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고 여겨요. 평생의 사랑이라고 느끼는테레자를 만났음에도,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지속하죠.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상대방에게 하나의지옥을 선사했어요. 그들은 정말 사랑했지만, 공존 불가능한 그들의 생활 양식은 지속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죠. 다른 여자와함께 있으면서도 테레자 생각을 하는 토마시를 당신은 이해할 수 있나요? 문득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지네요. 당신은위에서 언급한 것이 정반대편
어느 날 인터넷 게시판에서 우리 신문과 관련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신문을 음식 먹을 때 바닥에 까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지만,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기자 활동을 하기 전에도 사람들이 신문을 읽기나 할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기사를 읽기보다 다른 용도로 쓰는 게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항상 스마트폰을 가까이 두고 있어 종이 신문보다 스마트폰으로 더 빠르고 편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오히려 유튜브와 SNS에서 더 많고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에게 종이 신문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무리 열심히 기사를 써도 읽어줄 사람이 없다면 헛수고가 되어 버리진 않을까 걱정됐고 종이 신문은 어느새 시대에 뒤처진 매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1999년에 창간돼 20년 동안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대학내일’이 장기간 휴간, 사실상 폐간 절차를 밟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 신문도 시대의 흐름 속에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많아졌다.그럼에도 신문 기사를 쓴다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단순히 읽기 쉽게 요
대학 동기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진다. 많은 질문 중에서도 ‘어느 고등학교에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1학기가 전면 비대면으로 시행됐지만, 새내기에게 대학생활은 생소하고 신기했다. 첫 수업시간, 이론을 설명하던 교수님께서 ‘이건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죠?’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동기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배우지 못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농업특성화고등학교로 1학년을 제외한 2, 3학년은 대학교처럼 수업을 선택해 수강할 수 있다. 1학년 때는 수1, 국어, 사회 등 인문계 고등학교와 일정 부분 비슷한 교육과정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다른 점은 본인 전공에 대한 수업시간이 있다. 2학년부터는 수업을 선택한다. 선택 과목 중 국어, 수학, 영어 과목이 개설돼 있지만 대부분 학생은 재배, 농산물 마케팅 등 농업과 관련된 수업을 듣는다. 나 또한 그런 대부분 학생과 같이 국·영·수가 아닌 농업 과목을 수강했다.남들이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는다면 ‘네가 대학에 갈 생각이 있었다면 일반 교과목을 선택했어야지!’
사람들에게 일기란 어떤 의미일까. 초등학생 때 늘 밀렸던 방학숙제, 대부분 그쯤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스물두 살인 지금까지 매일 일기장에 일기를 써왔다. 하루를 정리하는 기분으로, 약간은 강박과 습관으로.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 같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거의 매달 챙겨봤으니 적어도 50번은 봤을 것이다. 부끄러워서 누군가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대사마저도 외워버린 그 영화를 보며 내린 결론이 하나 있다. ‘오늘을 살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다’가 그것이다. 내가 살아온 20년 남짓한 시간의 작은 마침표가 오늘인데, 그 작은 점 하나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어쩌면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살아지는 삶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능동적이어야 할 것 같다. 눈 떴으니 아침이고, 배가 고프니 밥을 먹었고, 들어야 하는 수업이니까 듣고, 걸어야 하는 길이니 걷지는 않았나.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도, 그 안을 잘 들여다 보면 분명히 다르다. 첫눈이 내린 아침일 수 있고, 생일인 친구와 맛있는 밥을
코로나 시대의 사랑기아, 전쟁과 함께 전염병은 인류의 가장 큰 적 중 하나였다. 전염병은 병원체가 포함된 공기나 물, 음식을 통해 전해지거나 작은 동물과 벌레에 묻어서 옮겨지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쥐 혹은 인간 스스로가 매개체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자로 만들기도 했다. 고대 아테네를 몰락시킨 장티푸스와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 단일질병으로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망자를 낸 천연두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에 대한 투쟁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인류는 과학과 의료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병균을 그럭저럭 통제하는 데에 성공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질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노화로 죽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낙관적인 순간도 잠시 오늘날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전염병에 의한 위협이 여전히 실재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최초로 발병한 코로나바이러스는 3개월 만에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를 휩쓸며 다시 한 번 인류를 팬데믹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었다.어느새 외출 필수품이 된 마스크와 악수 대신 하는 팔꿈치 인사는 흑사병의 상징이 된 역병의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외래어 중 가장 빈도가 높은 단어가 ‘스트레스’라고 한다. 그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은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시기에 따라 공부와 입시가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때로는 취업 준비가 혹은 입사 후 생활이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여러 의미로 치열했던 대학 입시를 지나 신입생으로 지냈던 2019년 한 해 동안 나 역시 때때로 스트레스와 싸우며 지냈다. 그중 가장 큰 원인은 사람과의 관계였다. 특히 몇몇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신적 피로감을 많이 느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어디서부턴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책임감과 기본적 예의가 부족한 몇 사람들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되새겨 볼수록 짜증이 났고 예민해졌다. 그렇게 내 삶의 한구석에는 예민과 짜증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 감정들이 불쑥 고개를 내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정작 피해를 입는 것은 내가 정말 사랑하고, 또 소중히 해야 할 주변 사람들이었다. 이걸 깨닫고 나니, 스트레스를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해, 또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지나친 스트레스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부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