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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목숨이 담보가 되는 슬픈 나라

어처구니없는 사고들을 헤드라인으로 시작한 <매일노동뉴스> 2021년 5월 21일 기사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떨어짐 사고사망자는 328명, 끼임 사망자는 98명에 이른고 한다. 
근로현장에서 일어나는 사망사고의 실체적 위협이 일반 대중에게 심각하게 인지된 것은 아마도 2016년 5월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 스크린도어 수리 중 사망한 비정규직 김 모 씨의 끼임 사고일 것이다. 사고 당시 거대 공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한 외주화,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처우 문제,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었던 2인 1조 작업 원칙을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작업 현장의 현실 등이 부각되면서 우리 사회는 분노로 들끓었다. 채 스무 해도 살지 못하고 부모조차 알아보기 힘든 가슴 저린 모습으로 한 젊은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갈 데 없이 내몰린 청년 비정규직자들에게 시선이 머물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떨어지고 끼이고 기계에 빠져 사망하는 근로자들의 뉴스를 사흘이 멀다고 기사로 만나야 한다. 
김 군이 사망한 지 여섯 해가 지나고 다시 두 번의 계절이 더 흘렀지만, 대한민국의 산업 현장은 여전히 근로자들의 목숨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김 군의 사망사고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대중의 분노가 서울메트로의 책임 40%라는 선고를 이끌어냈지만, 그 판결이 곧 우리 산업 현장의 안전 대책 마련으로 이어지기에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눈과 귀가 너무 굳게 닫혀 있다. 그저 또 하나의 사건으로 묻혀 버린 김 군의 아픈 죽음은 결국 지난 4월 매일유업 30대 근로자 컨베이어벨트 끼임 사망, 10월 15일 SPC그룹 계열사 SPL의 평택 소재 제빵공장 20대 여성 근로자 끼임 사망사고 등으로 이어졌다. 
SPL 제빵공장 20대 여성 근로자 사망사고가 더 공분을 사는 것은 SPL이란 회사가 국내 제빵기업 1위인 SPC의 계열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이나 방호장치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새벽 6시가 좀 넘은 시간, 여성 근로자 혼자서 허리를 숙여 어깨까지 기계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로 소스 배합기에 재료를 붓던 중 발생했다. 업무 강도가 높고 위험성이 큰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사고 예방을 위한 2인 1조의 수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배합기 내에 사람의 손 혹은 재료 이외의 이물질이 들어가게 되면 반응하는 안전 센서도 부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계 덮개를 열면 자동으로 멈추는 방호장치도 없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사건 발생 일주일 전 비정규직 직원의 손이 20분간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근로자는 3개월 파견직이었기 때문에 SPL에서 “알아서 병원에 가라”는 통보받고 혼자 병원에 가서 치료해야 했다. 그 이후에도 안전에 관한 아무런 조치 없이 그대로 기계는 돌아갔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법대로 사랑하라>의 김유리 변호사(이세영분)가 산재 관련 공익 소송을 위해 현장 근로자들 앞에서 “세상에는 일하다가 죽는 게 당연하지 않은 나라도 많다!”고 외치는 장면은 19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전태일 열사의 그 간절한 외침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한 우리, 대한민국 산업현장 근로자들의 현 실태를 향한 일침이다. 
최저시급이 오르고,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있으니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현장에서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목숨이 담보되어서는 안 된다.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어 몸뚱이 하나가 오로지 생계를 위한 자원이어야 하는 현실이 목숨을 저당 잡도록 떠미는 사회가 되어서는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수 없다. 
SPL 제빵공장은 하루 12시간 맞교대에 2인 1조의 근무 수칙이 있었지만, 12시간이라는 근로 시간은 안전교육을 꼼꼼히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았고, 작업의 강도와 위험성은 2인 1조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3인 1조여야 했다. 사람보다 이윤이 먼저인 게 당연했던 기업윤리는 근로자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도 갖추어 주지 않았다. 근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켜야 하는 안전수칙도 기업에서 실행하는 철저한 교육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 외치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다.
위험한 일을 해도 죽지 않는 나라, 근로자가 기업의 도구가 아니라 기업 이윤 추구를 위해 함께 일하는 동반자가 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곧 사회의 주역이 될 상아탑의 젊은이들이 이런 사고들을 “우리”의 일로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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