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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

하와이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초기 한인 이주자들의 역사


한인 이민 120주년을 맞았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현재 약 750만명으로 중국과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제3대 디아스포라 보유국이다. 국내 인구의 10%에 가까운 이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재미 한인들. 재미 한인들의 뿌리인 초기 하와이 이민자들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하와이 한인 공동묘지의 비문들을 분석한 이채문 교수의 조사를 살펴봤다●


▲묘지 비문을 분석 중인 이채문 교수

지난 13일 본교 사회과학대학 424-1호에서 「하와이 초기 한인 이주자들의 생활사 재구성-한인 공동묘지 비문 분석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이채문 교수(사회과학연구원 원장)의 강연이 열렸다.


하와이 공동묘지에 방문하다


이번 강연은 이 교수의 하와이 현지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올해 6월 29일부터 7월 10일까지 진행됐던 조사로 6월 29일부터 7월 2일까지는 빅아일랜드에서, 7월 3일부터 9일까지는 오아후섬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첫 번째 조사 지역은 1920년에서 1963년에 주로 조성된 빅아일랜드 힐로 지역에 위치한 알라에 공동묘지로, 156기의 한인 묘지 중 134기를 확인했다. 두 번째 조사 지역은 1844년에 처음 조성된 오아후 공동묘지로, 호놀룰루 시 경계밖에 위치해 있으며 약 72,843㎡(축구장 10배크기)이다. 무덤 수는 총 25,000기 중 조사한 한인 무덤 수는 119기이다.
미국 하와이 초기 이민자들은 사탕수수 공장 노동자로 이주해왔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한인들은 오늘날 전세계에 분포된 750만명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중 가장 많은 숫자인 재미 한인(263만명)들의 조상이다. 이후 일부는 조선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남아있으며, 일부는 1910년 샌프라시스코로 가 미국으로 흩어지기도 했다. 현재 재외한인들 중 한국에 영향력이 가장 큰 집단으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 지난 2021년 창원대박물관에서 「죽은자의 트랜스내셔널 공간; 하와이 빅아일랜드 초기 한인 이민자 묘비」를 주제로 1세대 하와이 이민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록이 담긴 묘비를 전문적으로 조사해서 발표했던 적이 있었으나 하와이의 빅아일랜드의 묘지만 분석했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빅아일랜드 뿐만 아니라 오아후섬의 한인공동묘지 또한 다루고 있어 빅아일랜드와 오아후섬의 한인공동묘지에 대한 유사점과 차이점을 규명할 수 있게 됐다.


▲강연 중인 이채문 교수


▲오아후 섬, nuuanu cem (공동묘지)


▲빅아일랜드에 위치한 알라에 공동묘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1896년에 하와이 정부는 한국 노동자 도입을 결정하며, 1902년에 알렌 공사가 고종황제에게 한국 노동자의 하와이 이민 사업을 건의했다.
1902년 12월 22일 한국인 하와이 노동이민자 102명이 제물포항에서 출발해 1903년 1월 13일에 하와이 오아후섬 호놀룰루항에 도착하게 된다. 1903년부터 1905년까지 하와이 한인이주자수는 약 7,500명으로 대부분 20대 독신남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1910년 11월 한국에서 하와이로 사진신부(사진만으로 선을 보고 결혼을 하는 문화) 이민이 시작되며, 1924년 미국이 일본인 입국금지법을 통과시키기 전까지 약 1,000명 정도의 한인 여성들이 하와이로 입국하였다. 하와이로 이주한 이들 중 상당수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 서부로 이주하였고, 오늘날 미국 서부에 한인들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1910년부터 1940년까지 총 891명의 유학생이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뿐만 아니라 해외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알라에 공동묘지에 위치한 한인 공동묘지 전경


공동묘지의 비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①하와이 비석 비문의 표기방식
조선시대는 비문을 한문으로 작성했으나, 하와이 비문은 이와 다르게 한자, 영어, 한글 등의 개별 혹은 혼용 상태로 작성됐다. 또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좀 더 단순한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②복식
묘지에 있는 사진을 통해 초기 한인 이주자들의 복식 연구가 이뤄질 수 있었다. 알라에 묘지 비문에는 사진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사진이 있는 경우는 오아후 섬의 공동묘지였다. 남성의 경우에는 주로 양복과 작업복을 착용했으며, 여성은 한국에서 가져온 한복 혹은 자기가 직접 만든 개량한복을 착용했다.

③성씨
빅아일랜드 알라에 묘지의 경우 남편의 성을 따르는 부인의 이름이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오아후 섬의 누아누 묘지의 경우 아내는 남편의 성을 사용했으며, 남편의 성과 처녀 때의 성으로 구성된 영어식 이름(예. 김조메리)을 확인할 수 있었다. 

④한인의 정체성 표현
비문에 자신의 출신 고향을 새기고, 조선인·대한·한국 등과 같은 문구를 새기며 한인으로서의 애국심과 소속감을 비문에서 볼 수 있었다. 또한 비문의 한글 글씨형태는 구한말 한글 고어체임을 살펴 볼 수 있었다.

⑤종교
하와이 이민자들은 기독교가 대다수였으며, 장로교가 아닌 감리교가 대부분이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의 감리교회 목사(존스 목사)들이 하와이 이민을 적근 권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 정착과정, 독립운동 및 민족교육에 감리교회는 큰 영향을 끼쳤다. 초기 이민자 102명 중 50명은 이미 신자였으며 1903년부터 교회 예배를 시작했다.

한자로 된 묘비 비문의 분석을 통해서 볼 때 빅아일랜드 묘지는 오아후섬의 묘지와는 달리 좀 더 초기에 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가족의 묘지, 집단의 성격을 띄는 묘지는 대부분 오아후섬에서만 발견됐다. 이외에도 비문을 통해 소속단체, 가족, 사망일자, 애도의 표현들, 본관 등을 분석할 수 있었다. 도착 일시 또는 자녀상황 등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한 특이한 비문들의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아후 공동묘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교수


▲알라에 공동묘지에 위치한 한국이민조상기념비


하와이 조사의 함의와 향후의 과제


이 교수는 강연에서  “아직도 분석되지 않은 묘지 비문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더 필요하다” 며 “이러한 초기 하와이섬의 사탕수수 농장으로의 이민자 묘비가 타지역, 특히 구소련 지역 고려인 묘지와 비교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주 당시 상황이 녹록치 않았음에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정착에 성공했고, 항일독립운동또한 지원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있지 않은 재외동포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그들의 발자취를 찾는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이다.


김홍영 기자 mongnyoung@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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