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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42. 인문대학 70년의 자취

경북대학교 인문대학이 70년이 되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일곱 번을 지나는 시간이다. 나이 일흔을 ‘예로부터 이렇게 오래 산 사람은 드물다’는 뜻으로 고희(古稀)라고 부른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오늘날에도 일흔은 상당한 고령이듯,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장구한 역사를 지닌 인문대학은 많지 않다. 국립대학으로 한정하면 더욱 드물다.
인문대의 역사는 1952년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경북대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45년 광복 직후 대구에 종합대학 설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1946년부터 그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단과대학과 건물 등 구비조건 미비로 종합대학은 허가되지 않고 대구사범대학, 대구의과대학, 대구농과대학이 국립대학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문과 계열 학과로 구성된 사립 대구대학이 인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대구지역의 교육열은 더욱 뜨거워져 1951년 봄부터 국립종합대학 설립을 추진하였다. 경북도지사가 위원장을 맡고 대구지역 대학의 학장과 기관장이 추진위원으로 활동하였고, 특히 대구대학 이사장 등이 위원회에 참가하여 민관 합동으로 노력한 결과 마침내 10월 6일에 국립경북대학교가 정식 인가를 받아 1952년 봄 4월에 복현 동산에서 첫 입학식을 열었다.
전북대가 두 달 뒤 6월에 개교하고 부산대가 1953년에 개교하였으니, 국립경북대는 명실공히 국내 최초 지방 종합국립대학이었다. 처음 5개 단과대학은 사범대학, 의과대학, 농과대학, 문리과대학(인문대의 전신), 법정대학이었다. 이듬해 53년 대학원대학이 설립되었다. 경북대 교기에 그려진 여섯 개의 별은 이 6개 단과대학을 뜻한다. 말하자면 인문대의 역사는 곧 종합국립대로서의 경북대 역사와 그 출발을 같이 한다.
1952년 4월 첫 입학생을 받은 문리과대학은 문과(국문학과·영문학과·사학과·철학과)와 이과(수학과·물리학과·화학과) 총 7개 학과로 구성되었다. 신입생과 함께 사립 대구대학 재학생들의 전입을 허용하여 이듬해 1953년 3월에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해 생물학과를 신설하고, 의학과의 기초교양과정인 의예과가 문리대로 배속되었다. 이어 1954년에 사회학과를 신설함으로써 기초학문대학으로서의 기본 면모를 갖추었다.
지역적으로 지방이라는 근원적 한계에도 이를 극복하고 전국 규모의 학회의 창설에 앞장서 우리나라 기초학문을 주도하였고, 1974년에는 도서관학과를, 1976년에는 불문학과와 통계학과를, 1978년에는 독문학과, 1979년에는 중문학과, 1980년 고고인류학과를 잇달아 설립하여 우리나라 국립대에서 드물게 기초학문 분야를 거의 온전히 갖추게 되었다.
시대적 책무에도 소홀하지 않아 4.19 항쟁을 비롯하여 6~70년대 군사독재 시절 유신반대와 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다. 1975년 유신체제 옹호를 위해 시행한 교수재임용제도에서 문리과대학 교수가 가장 많이 탈락하였고, 1979년에는 양지바른 매화동산 자리에서 현재의 북쪽 응달로 옮겨지는 핍박도 받았다. 그럼에도 조금의 굴함 없이 문리대 정신을 실천하며 사회 변혁을 주도하였다.
1980년 신군부의 대학교육혁신책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학졸업정원제에 따라 정원 외 30%의 학생을 더 모집하자 대학교는 그 규모가 급격히 확장되었다. 이에 따라 1981년 3월, 자연과학 계열이 분리되어 나가고 인문사회과학대학이 되었다. 이어 1982년에 사회과학대학이 분리되어 나감에 따라 인문학 계열 9개 학과로 이루어진 인문과학대학이 탄생하였다. 이후 1984년에 인문대학으로 확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0년대는 인문대의 형식을 온전히 갖추기 시작한 시기이다. 인문관을 건립하고 옥상 둘레를 왕관 형태로 만들어 인문관이 모든 학문의 중심 전당임을 천명하였다. 또 1985년에 일어일문학과, 1988년에 한문학과, 89년에 노어노문학과를 신설하였다. 이렇게 동양어문학 4개 학과(국문·중문·일문·한문)와 서양어문학(영문·독문·불문·노문) 4개 학과, 그리고 인문학 일반 3개 학과(사학과·철학과·고고인류학과)를 갖추어 그 체제를 완성하였다.
학내 민주화 성취에도 큰 자취를 남겼다. 1987년 2월에 경북대 교수협의회를 발족, 총장선거 규정안을 통과시켜 전국 최초로 총장직선제를 성취하였다. 이 쾌거를 이어 1988년 10월 인문대 교수회는 단과대학 중 최초로 학장 추천 규정을 제정하고, 1989년 2월 최초로 교수들의 직접 선거를 통한 학장 추천자투표를 시행하였다. 이른바 학장직접선출제의 시작이다.
1990년대부터 사회적 화두와 열망은 세계화로 바뀌었다. 인문대는 이때에도 가장 앞서 세계로의 도약을 준비하였다. 변화에 부응하여 활발한 국제학술교류를 선도하였고 그 결과 일본 시마네현립 국제단기대학, 동경 학습원대학 문학부, 중국 상해 후단대학(復旦大學), 러시아 쿠반주립대(Kuban State University)와 교류 협정을 체결하였다.
세계화의 조류는 약간의 부작용도 따랐다. 인문대는 1996년에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도약’이라는 기치 아래 학부제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물리적 통폐합으로 이루어진 학부제는 학문 분야의 정체성, 학생들의 전공역량, 구성원 간의 교감에 한계를 노정하였다. 인문대 교수협의회는 이 문제를 전격 제기하여 전국 최초로 학과제로 되돌렸다. 전국 대학교 학과제 전환은 우리 인문대에서 그 물꼬를 튼 것이다.
2000년 이후 취업난 가속화로 순수학문 기피 현상이 심해졌고, 급기야 경쟁력이라는 명분으로 국립대 법인화가 거론되었다. 인문대는 학문 중심 대학으로서 후속세대의 체계적인 양성과 학생들의 폭넓은 사회적 국제적 진출을 위해 새로운 흐름을 모색하였다. 또 2007년부터 시대정신을 성찰하기 위해 인문학 콜로키움을 진행하였으며, 2011년부터 인문교양총서 시리즈를 펴내 대중과 소통하고 있고, 2019년부터는 인문 주간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세계의 석학들을 초청하여 시대를 진단하고 있다.
2016년부터 기초학문심화모델과 글로벌지역학 모델을 설계하여 대학 인문 역량 강화 사업에 모든 학과가 참여하고 있으며, 탈경계시대가 요구하는 융합적 지식인 양성을 목표로 문화콘텐츠개발, 인문카운슬링, 중국문화와통상학과를 신설하였다. 또 한문학과를 중심으로 국문학과, 사학과 등이 연계하여 고전번역대학원을 운영,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후속으로 대학혁신지원사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아울러 인문학연구동아리, 취업활동동아리 등을 지원하는 한편 장학금 및 교환학생 등 다양한 학생지원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연구동의 신축은 숙원사업이었는데, 2019년 인문한국진흥관 준공으로 그 결실을 보았다. 현재 이곳에는 인문학술원, 영남문화연구원, 퇴계연구소, 러시아·유라시아 연구소 등 많은 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인문학술원은 2013년에 인문과학연구소, 동서사상연구소, 한중교류연구원, 열린인문학센터 등 관련 4개 기관을 통합하여 설립하였는데, 인문학 전 영역에서 창조적 지식의 생산과 확산을 담당하고 있다. 영남문화연구원은 2000년에 만들어져 신라에서 조선, 역사에서 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분야의 연구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퇴계학연구원과 연계하여 한국고전번역원 주관 거점번역사업을 운영하여 후속 인재들이 고전번역분야에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모색하고 있다.
대학의 책무는 자유와 진리를 수호하고 사회의 변화를 선도하는 것이다. 인문대는 경북대의 중심에서 그 현실적 소임을 온전히 감당하였다.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고 동양과 서양을 통섭하는 넓은 학문의 장에서 인류가 빚어낸 무수한 삶의 무늬를 성찰하고 내일을 진단하였다. 요컨대 고희는 70년 인문대의 나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례없는 그 선도적 역할을 뜻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늘 시대의 맨 앞에서 새로운 문을 열어갈 것이다.


▲문리과대학 가교사(1953년)


▲인문한국진흥관(2021년)

이규필 교수
(인문대 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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