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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물가가 오를 때…

미국에서 거주할 때의 일이다. 미국 달러로 물건값을 계산하면서 항상 머릿속에서는 달러 가격에 해당하는 한국 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국 돈으로 계산할 때 미국 생활 물품의 가격이 왜 그렇게 비싼지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생활 물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계산대 앞에 서 있다가 다시 돌아가 슬그머니 물건을 내려놓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 미국 달러 가격을 한국 가격으로 환산하는 버릇은 6개월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그 이유는 비싼 미국 달러 물가에 점차 무덤덤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싼 달러 물가에 스스로 적응하는 데 꼬박 6개월이 걸린 셈이다. 달걀 51%, 시금치 10%, 배 45%, 마늘 28%, 돼지고기 12%, 제빵 5%… 이 숫자는 지난해 4분기에 슈퍼마켓에서 소비자들이 자주 구입하는 생활 물품 가격의 상승률이다. 이것은 일 년 동안 오른 가격이 아니라, 한 분기 동안 오른 가격 상승률이다. 숫자에 둔감한 사람으로서 단순 계산만으로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연평균 목표 물가상승률 2.5%를 훨씬 초과하는 물가 상승률이다. 이렇게 오른 물가 상승률에 적응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다시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물품을 슬그머니 꺼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온 것이다.
  물가가 지속해서 오르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은 보통 사람에게 아주 교묘한 것이다. 왜냐하면 물가상승률은 숫자이기 때문에 상당히 추상적이며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서 민감하게 느끼지 못한다. 아무도 물가가 올랐다는 사실을 모르지만, 물가가 오른 후에 시장에 가서 물품을 살 때 느끼는 것이어서 인플레이션은 항상 사후적이다. 또한 인플레이션은 보통 사람들에게 아주 잔인한 것이다. 매월 받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이전과 동일한 월급으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적어지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의 부담은 잘사는 사람보다는 보통 사람에게 떠넘겨진다. 잘사는 사람은 보유하고 있는 실물자산과 부동산이 많아서 물가가 오르면 보유 자산과 부동산의 가격도 따라서 오르기 때문에 실질소득의 변화가 크지 않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오히려 실질 자산의 가치가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산층이란 보유자산이 살고 있는 집 한 채이며, 그 집도 완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 담보대출을 받아서 구입한 계층이다. 평생 회사에 다니면서 근로소득으로 대출금과 이자를 갚고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내고 나면 여행이나 외식 한 번 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중산층은 돈을 모아서 자산과 물건을 축적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은 잘사는 사람에게 실질 자산 가치의 상승으로 나타나지만, 중산층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인플레이션은 보통 사람들에게 원하지 않는 저축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시중에 있는 화폐는 한국은행이 정부를 대신해서 발행하는 정부의 부채이다. 화폐를 가지고 있는 국민들은 정부의 채권자인 셈이다.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므로 정부가 빌린 채무의 가치는 떨어지고 국민의 채권 가치도 감소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부의 채무를 국민들이 대신 갚게 되는 것이며 이른바 “강요된 저축(enforced saving)”이다.
 지난달 우크라이나 사태로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큰 폭으로 상승하였다. 특히, 감자와 달걀, 돼지고기 등 농축산물과 생활 물품 가격과 원유와 도시가스 등 에너지 관련 공공서비스 요금이 많이 올랐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물가 인상 요인이 감소 요인보다 더 크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붕괴한 세계 공급사슬의 쇼크는 식량과 에너지 가격의 폭등과 원자재 난으로 이어지고, 거의 전 물품의 가격상승으로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식량과 국제 원자재에 대한 수요도 폭등하고 있으나. 세계 공급사슬의 붕괴로 따라 수입 식량과 원자재, 원유 등을 비롯한 국제가격은 급등하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국내 공산품과 생활 물품의 가격도 오르게 되며 인플레이션은 더 빠르게 상승할 것이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수입 원자재가격이 상승하면서 국제수지는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진짜 큰 걱정은 앞으로 세계 공급사슬 쇼크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물가가 오르면 이윤이 증가해서 생산이 증가하고 고용이 늘어나면서 보통 사람들의 소비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경기가 좋아지는 선순환 과정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원자재와 식량 등 필수물품을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 원자재와 식량 공급 가격의 급등은 그대로 우리나라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 인플레이션 충격을 흡수할 만한 경기 호황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 정부의 물가 상승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도 보이지 않는다. 단기적으로 국내 소비는 오히려 위축되고 있으며 미래 경기를 예측할 수 있는 설비투자도 일 년 이상 연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는데 경기가 위축되는 전형적인 스테그플레이션(Stagfla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보통 사람의 실질소득이 줄어들면서 소비도 줄어들고, 경기가 악화되는 물가상승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다. 스테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산설비 감소와 그로 인한 청년들의 실업이 더 큰 걱정이다. 


김희호 교수(경상대 경제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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