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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황제의 곤충이야기

뇌보다 다리가 더 빠른 벌레 길앞잡이

날씨가 더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방에 벌레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마지않는 계절이 돌아온 것입니다. 끔찍한 추위와 겨울은 다시 오려면 한참을 기다려야겠죠. 4월 말부터 시작되는 초봄에는 화려하고 멋진 벌레들이 나타나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봄 시작을 알리는 대표벌레, 길앞잡이에 대해 소개합니다.
길앞잡이는 도심에서 살지 않습니다. 산기슭 주변이나 숲과 가까운 곳에서 서식하는 벌레입니다. 20mm 남짓의 아담한 크기를 가졌고 대부분 색이나 무늬가 화려하며, 그중 비단길앞잡이는 무지갯빛 몸과 화려한 무늬를 수놓은 아름다운 벌레입니다. 햇빛과 더위를 좋아해서 산기슭의 오솔길이나 숲 주변 도로에서 돌아다니거나 날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이 벌레는 독특한 습성을 가졌습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땅의 울림을 감지하고 큰 포식자가 나타났다 생각해 짧게 앞으로 날아가서 앉습니다. 다시 가까이 가면 또 앞으로 짧게 날아가서 앉습니다. 가까이 가면 또 그럽니다. 이런 습성이 마치 길을 안내하는 것 같다고 하여 ‘길/앞잡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길앞잡이는 우스꽝스러운 습성과 이름을 가졌지만, 그와 정반대로 성충과 유충 모두 아주 사나운 사냥꾼입니다. 길앞잡이는 작은 곤충을 잡아먹고 살아갑니다. 유충은 1자 모양의 땅굴을 파고 숨어 기다리다가, 땅굴에서 튀어나오며 주변에 지나가는 벌레를 잡아먹습니다. 게임 속 괴물과도 같죠. 성충은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는데, 커다란 눈으로 주변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쫓아갑니다. 그리고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거대하고 날카로운 큰턱으로 먹이를 산 채로 씹고 잘라 먹습니다. 큰턱은 무는 힘이 약한 편에다가 얇아서 잘 부러지기 때문에, 개미나 거미, 나방 애벌레 따위의 작고 야들야들한 벌레를 선호합니다. 길앞잡이는 뛰는 속도가 매우 빨라 먹이를 잘 쫓아갈 수 있는데, 얼마나 빠른지 감이 안 잡힐테니까 한번 생각해봅시다. 
호주에 서식하는 길앞잡이 종류는 시속 9km, 초속 2.5m의 속도로 달릴 수 있습니다. 길앞잡이의 몸길이가 20mm 남짓한 작은 크기인 걸 감안하면, 자기 몸길이의 약 125배나 되는 거리를 1초만에 이동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맹수인 치타가 초당 자기 몸길이의 고작 16배의 거리를 이동하는 것을 감안하면, 평균 시속 약 100km의 치타보다 8배나 빠른 셈이며 길앞잡이가 치타 크기였다면 시속 800km로 달릴 수 있는 셈입니다. 여객기의 평균 비행 속도가 시속 800km인데, 비행기의 속도로 달려오는 동물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빠른지 상상이 가십니까? 길앞잡이의 놀라운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항상 앞으로 뻗어두는 더듬이 덕분에 주변 지형지물이나 장애물을 확인하고 요리조리 피해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길앞잡이는 장애물에 부딪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길앞잡이의 뇌는 달리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신체부위를 놓치게 되는데, 뇌신호가 다리로만 가는 바람에 눈이나 큰턱 등 다른 기관이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쉽게 비유하면, 달리다가 갑자기 눈이 깜깜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고 입이나 날개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소위 뇌정지가 온 것입니다. 때문에 길앞잡이는 치타마냥 오랜 시간 동안 달릴 수 없습니다. 뛰다가 뇌정지가 오면, 제자리에 굳게 선 채로 시간을 보내면서 뇌가 다시 작동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뇌가 휴식하며 다른 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그제서야 다시 활동을 재개합니다. 뇌보다 빠른 다리라니, 가히 상식을 초월하는 생물입니다.


김건우
(생환대 생물응용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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