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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젊은이들의 ‘탈선’과 대학교육

소위 비인기 학과라고 불리는 철학과의 전공 수업에도 다양한 전공의 타 학과 학생들이 제법 많이 찾아와 수강한다. 자신의 전공 공부에도 바쁠 텐데 기특하고 반가운 일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철학과 전공 수업 몇 개를 동시에 수강하고 있는 이공계열 학생이 찾아와서 고민을 토로했다. 철학 수업이 재미도 있고 진짜 대학 공부를 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끼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취업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데 자신만 딴짓을 하다가 뒤처질까 염려된다고 한다. 자신의 순수한 학문적 관심이 일종의 ‘탈선’처럼 여겨지는가 보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독배를 마셨다는 소크라테스가 생각났다.
우리 대학에서 교과과정개편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이런 논의가 있을 때마다, 혹시 대학 경쟁력 강화와 취업률 제고라는 명분으로 철학을 비롯한 순수 학문 분야를 축소 또는 변질시키려 하지는 않을까 신경이 곤두선다. 많은 대학에서 기초학문 분야 학과들이 실제로 이런 운명을 겪었으니 노파심만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이 유례없는 위기에 봉착했다고 하니 걱정은 더해진다. ‘탈선’을 염려했던 학생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탈선’을 걱정했던 그 학생에게 못다 했던 이야기를 해주면서 대학 교육에 대해서 몇 마디 해볼까 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학은 사실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어야 한다. 사회에 나가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직무 역량을 갖추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한 집단의 리더가 되면, 공식과 매뉴얼로는 풀 수 없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에 부딪히게 될 수밖에 없다. 비근한 예로 코로나-19를 생각해 보라. 대학은 이런 문제들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리더를 키워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사회의 리더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 대학의 학생들 모두가 사회에서 크고 작은 집단에서 리더가 될 자질을 가진 학생들임에 틀림없다.  
대학의 이념은, 젊은이들을 순수학문의 세계에 노출시켜 자유롭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런 독창적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인재를 양성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아이디어에 기반한다. 당장은 쓸 데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우주의 기원이라는 심원한 문제를 탐구해 보는 것도, 무한 집합의 기수(基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인식적 회의주의에서 벗어나려 노력해 보는 것도, 도덕의 본성에 대해 생각에 잠겨 보는 것도, 모두 독자적인 방식으로 이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기여한다. 어찌 보면 세상과 먼 문제일수록 이런 역량을 기르는 데 더 좋을지 모른다. 
어떻게 이런 식의 교육이 독창적 리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정량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지도 못하다. (그리 증명하기가 쉽다면 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셨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서구의 유수의 대학들이 이런 이념에 기반해 있고, 그 대학들이 세계를 이끄는 인물들을 배출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이를 입증한다.  
그래서 ‘탈선’을 고민했던 그 학생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절대로 탈선이 아니라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다시 자신의 전공으로 돌아갔을 때 지적으로 한층 더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사회에 나갔을 때 이런 공부를 해 본 경험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우리 대학의 여러 시도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국내의 많은 대학들이 대학 본연의 모습을 저버리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는 꿋꿋이 대학 본연의 모습을 강화해 그것을 우리만의 경쟁력으로 만드는 발상도 해봄직하다. 어쨌거나 기초학문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대학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일일 것이다.  


권홍우 교수
(인문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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