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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놀이터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가족으로 견디는 상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낚시를 나간 평화로운 가족들의 모습으로 문을 연다. 두 형제와 아들, 세 명의 따스하고도 일상적인 풍경. 그런데 감독은 이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이 장면은 계속 롱숏으로 멀리서 찍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아름다운 순간이 지금의 리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멀리서 보는 듯한 희미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다음 현재의 리 플레처가 나타난다. 그의 직업은 아파트 관리인, 무덤덤하고 무기력해 보이지만 갑자기 화를 내는 평범해 보이는 인간. 하지만 그는 반지하인 자기 집처럼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존재이다. 눈이 덮은 그의 창처럼 그의 맘에는 차가운 상처로 가득 차 있으며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그런 그에게 형의 부고를 알리는 소식이 온다. 그리고 리는 어쩔 수 없이 마을로 돌아간다.
이 영화에서 과거의 플래시백과 현재는 쉽게 구별할 수 없다. 영화는 과거 장면임을 알리는 표식을 삽입하지 않았다. 리에게 그 과거의 상처는 현재형이며 그가 과거와 현재가 무의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리가 형의 유언에 대해 아는 순간, 당연히 그는 끔찍한 밤을 떠올린다. 그때 영화는 리의 얼굴과 과거에 발생한 그의 실수 그리고 창밖의 풍경을 교차시킨다. 창밖의 황량한 모습은 리의 마음이며 볼 수는 있지만 닿을 수 없는 창문처럼 회상할 수 있지만 수정이 불가능한 과거다. 리의 상처를 드러내는 과거 연출에서 리가 맥주를 사기 위해 걷는 장면을 길게 보여준다. 왜 감독은 별다른 일도 없는 이 장면을 트래킹쇼트로 따라가며 길게 찍었을까? 리가 걷는 시간은 곧 리가 하는 후회의 시간이다. 그는 걸었던 그 길과 시간을 얼마나 후회하고 고통스러워했을까. 리가 불에 탄 집을 목격했을 때 그동안 절제된 카메라워크를 사용하던 영화는 가장 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그리고 감독은 클로즈업을 쓰지 않고 리와 카메라 사이에 장애물을 두거나 뒷모습을 찍는다. 이때까지 리는 이 거대한 비극을 마주하지 못했다. 그리고 리가 실수를 자백하는 경찰서 장면에서 천천히 카메라는 리에게 줌인하고 그때 리는 본인의 멍청한 실수를 응시한다. 그리고 본인의 자식들이 가장 아프게 떠났음을 알아차린다. 그다음에 리가 자살을 시도하는 이유는 그제야 그 상흔을 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을 인서트샷으로 자주 보여준다. 리의 함몰된 마음과 반대되는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리의 슬픔을 묘사하는 동시에 리와의 거리감을 표현한다. 장면과 이질적으로 쓰인 클래식 곡들도 같은 의도이다. 영화는 관객이 리에게 완전히 마음을 몰입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이유는 관객을 포함한 그 누구도 리의 고통을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의 슬픔은 온전히 리만의 것으로 두는 사려 깊음이다. 다 알고 있다는 오만한 공감이 아니라 그저 단단히 옆에서 같이 견디는 애정이 어린 응원이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태도이다.
리는 형의 선물을 발견하고 아주 잠시 웃는다. 그때 우리는 여기서 끝나기를 염원한다. 그토록 아팠던 리가 희망을 발견하고 나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리는 전 부인을 만나고 우리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벗어날 수 없는 과거를, 극복할 수 없는 고통을 본다. 가장 내밀하고 용기 있는 대화를 하는 둘 사이에도 벽이 만든 수직선이 있다. 그 용기조차도 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리가 패트릭에게 한 말, 버틸 수가 없어는 가장 진실하고 정확한 대사이다. 쿨해 보이던 패트릭이 냉동고기를 보자 무너지던 것처럼 리는 그 마을의 사소함조차 견딜 수 없다. 마을의 풍경을 촬영할 때 사람을 찍지 않고 롱숏으로 건물들만 담은 이유이다. 리는 관찰자처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나 겨우 견딜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장례식 날이다. 형이 떠났고 전 부인의 자식이 삶에 도착했다. 겨울은 끝나가고 봄은 오고 있다.  리가 미래를 이야기하고 사랑하는 조카 패트릭과 남자들이 하는 바보 같은 이야기들을 한다. 그리고 그가 바다를 바라보며 패트릭과 내밀한 대화를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겨울이 끝나가는 장면으로 끝났지만, 영화의 엔딩은 희망이 아니다. 결국 영화에는 겨울만이 있다는 뜻이니까. 이 영화에서 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마 앞으로도 리의 인생에 봄은 올 수 없다. 봄이 올 수 없는 시리고 냉혹하고 긴 겨울을 그는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땅은 조금 녹았다.


손유탁(사범대 영어교육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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