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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34. 경북대학교의 상징 일청담(一淸潭)

저수지(貯水池)의 분수탑
기록관에서 현재의 “일청담” 모습과 전혀 다른 사진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1963년 3월 21일 발행 “경북대학보”(현재의 “경북대신문” 이하 “학보”로 표기) 1면에 물보라를 분출하고 있는 분수탑 사진과 “자유·정의·진리의 표상=분수탑”! 이라는 사진 설명도 찾아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사진 1) 재학시절 가끔 쳐다보던 “분수탑” 모습이었다. 지금의 일청담의 분수대는 5개 단과대학이 쏟아지는 물벼락을 맞고 있는 모습이다. 
일청담은 경북대의 상징적 수경시설이다. 일청담 표지석에 일청 하영수(河泳洙) 씨의 찬조로 준공하였다고 음각되어 있다. 당시 “학보”에는 “일청담”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기사가 없다. 장기간에 걸친 공사 후, 하영수 씨의 찬조로 일청담을 만들었다는 표지석을 세운 것 같 같다. “학보” 기사(1962.6.14.)는, 지금의 일청담 위치에 이미 있던 웅덩이의 지하수(地下水)가 부족하여 실습용 논(테니스장 농구장 지역) 관리에 어려움이 있어서, 웅덩이를 더 깊이 파서, 경북대 모표(감꽃 첨성대) 형태의 저수지(貯水池)를 만들고 분수탑도 세운다고 하였다. 서울대는 분수탑을 설치한 적이 없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면학 분위기 조성 명분으로, 부산대 전남대 경상대 등 주요 국립대학에 강요하여 인공분수를 설치한 적이 있으나, 민주화 이후 모두 잔디밭으로 바뀌었다. 일청담은 빗물과 지하수를 이용하게 된 연못이라 수질관리나 운영비용도 신경을 쓸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힘찬 잉어도 아름다운 금붕어도 노닐고. 
미국의 유명 대학의 몇몇 분수는 솟구쳐 오르는 물줄기가 없다. 하버드 대학의 “Tanner 분수”는 안개만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분수다. 이후 다른 분수들은 잔디밭으로 바뀌거나 쓰레기 창고가 되었다. UCLA의 “Inverted Fountain 분수”는 분수구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수조 중심의 소형 폭포로 모여 아래도 떨어지도록 한 새로운 모습의 역(逆) 분수다. “Fountain of Women’s Table” 분수는 예일대학이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한 역사를 조각한 분수이다. 분수구에서 흘러나온 물이 주변으로 스며나가게 한 분수 예술품이다. 
일청담의 감꽃의 꽃잎이 5개(?)
1952년 개교기념식에서 백낙준 문교부 장관이 누런 감(枾) 홍시 색 바탕에 사과(능금)색인 자(紫)색 글씨로 “慶北大學校”란 교명을 쓴 소형 삼각형 페넌트를 고병간 총장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백 장관의 축사 내용에 “감꽃” 언급은 없다. 아마도 고 총장이 감(枾)색을 “감꽃”으로 바꾼 것 같다. 이후 감꽃이 교화라는 주장이 확고부동한 전설이 되었다. 감꽃을 경북대 교화로 만든 당시의 기록은 없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다본 일청담과 교기(校旗)에 그려진 감꽃의 잎이 능금(사과) 꽃처럼 꽃잎이 5장(사진 2)이다. 감꽃은 (사진 3)처럼 초롱꽃과 비슷하나 끝부분이 4갈래로 갈라지고 약간 뒤로 말려 들어가 보이지도 않는다. (사진 4) 감꽃의 잎이 5장으로 늘어난 이유가 궁금하다. 돌연변이인가?
첨성대(瞻星臺) “신라문화의 정수”(?) 
고 총장 당시에 제정한(1954년 5월) 교기(校旗)에 첨성대를 상징하는 도안이 있고, 고 총장 자신이 작사한(1958년 5월) 교가(校歌)에도 “첨성대” 단어가 들어가 있다. 일청담의 분수대의 모습도 첨성대다. 최근 첨성대를 모티브로 첨성인(尖省人) 개념을 설정하고, 첨성관, 첨성광장과 첨성 상징탑을 세우고, 첨성 광장에 거대한 바닥분수도 설치하였다.
고려의 승려 일연이 저술한 야사 「삼국유사」(1281년)에서 신라 선덕여왕(632∼647) 때 첨성대를 축조하였다고 하였으나, 김부식을 포함한 11명이 편찬한 정사 「삼국사기」(1145년)에 “첨성대”가 없다. 일연은 내물왕의 왕릉 위치를 이야기하면서 첨성대를 점성대(占星臺)로 기록하였다. 「일본서기」(720)에도 “점성대” 기록이 있다. 일연은 선덕여왕이 “여근곡(女根谷)에 백제군이 숨을 것이라 예언하였고, 자신의 사망도 예언”하는 등 점(占)치는 신기(神氣) 있는 여왕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대과학에 의하면 점(占)치는 신기는 병적 상태이거니, 신격화(神格化)를 위한 인위적인 조작이다. 
조선 시대의 「세종실록 지리지」 등에는 일연의 기록을 근거로 첨성대의 용도는 천체관측이라고 하였다. 첨성대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일제 강점기에 처음 나타난다. 1904년부터 기상관측소에서 근무하던 와다유지(和田雄治)가 첨성대가 동양 최고의 천문대라고 주장하자, 연세대의 루퍼스(W. C. Rufus) 교수가 동의하였고, 「조선과학사」를 정리했던 연세대 출신 홍이섭 교수도 동조하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첨성대는 종교적 제단 또는 수미산(須彌山) 혹은 점(占)치는 장소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지금도 일부 연구자들은 첨성대가 천문대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원사료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국민교육헌장”과 “진리 긍지 봉사”
1963년 6월 21일 “학보”는 첨성대를 닮은 분수대에서 분출하는 물보라를 보고 “자유·정의·진리”의 표상이라고 표현하였다. (사진 1), 이 세 단어는 경북대 “교시”가 아니었다. 자유 베를린대학교의 로고이고 고려대학교 교시(Libertas, Justitia, Veritas)다. 지금의 경북대 교시는 민족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던 박 대통령이 임명한, 박정기 총장 시대인 1969년 8월 11일 “학보”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이 공표된 이듬해부터 우리 대학의 “교시”를 “진리·긍지·봉사”로 결정한 것 같다. 한국적(韓國的) 민주주의와 한글전용을 주창한, 유신 시대의 박 대통령이 임명한 김영희 총장(1972.1.1)은 정문 입구에 한글 “교시 탑”도 세웠다. (1972년)
그런데 “진리·긍지·봉사” 교시는, 1937년 일제가 암송을 강요한, “황국신민맹세”의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천황폐하께 충의를 다 하겠습니다….”라는 섬뜩한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박 대통령이 암송을 요구한 “국민교육헌장”의 “봉사하는 국민정신….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 새 역사를 창조하자.”의 단어들이다. 
교시의 “진리”란 단어는 하버드, 예일 등 미국 명문대학들의 로고에 들어있다. 성직자 양성을 목표로 시작한 사립대학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Veritas(진리)”라는 라틴어는 기독교 배경을 가진 용어였다. 서울대 로고에도 “Veritas”가 들어가 있다. 서울대 초대 총장이 된 군목(軍牧) 엔스테드(Harry B. Ansted) 해군 대위가 하버드 대학교 문장의 “Veritas”를 빌려 서울대 로고로 만든 것이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달리기만 하였던 우리도 이제 뒤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사진 1) 경북대학보(1963. 3. 21.)


▲(사진 2) 잎이 5장인 능금꽃


▲(사진 3) 초롱꽃 모양 감꽃


▲(사진 4) 꽃잎이 4개인 감꽃


김종길 명예교수(인문대학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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