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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제주4·3, 아픔을 넘어 과거사 해결의 모범으로

지금으로부터 74년 전, 1948년 4월 3일 한라산과 인근 오름들에서 봉화가 올랐다. 그러나 제주4·3의 시작은 1948년 4월 3일이 아니라 1947년 3월 1일이다. 4·3은 그날부터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의 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기호이기도 하다. 제주4·3특별법도 “‘제주4·3사건’이라 함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4·3의 시작을 1947년 3월 1일로 규정한 것은, 4·3 발발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주도 3·1절 기념대회가 끝난 직후 경찰의 발포에 의해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은 이후의 미군정의 살인적인 탄압으로 이어져 봉기가 일어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중요한 지점은 단독선거를 저지하고 통일정부를 이루고자 했던 대중적 투쟁이었다는 점이다. 1948년 5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는 김구를 비롯한 일부 민족지도자들도 분단을 앞둔 단독선거라 하여 반대했고 전국에서 선거반대투쟁이 일어났다. 제주도에서는 과반수에도 못 미치는 선거 결과로 인해 3개의 선거구 중 2개구의 선거구가 무효화되었다. 이로써 제주도는 단독선거를 저지한 유일한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제주도민 10분의 1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되었고 40여년에 걸친 금기의 시간이 이어졌다. 2022년 3월 현재, 특별법에 의해 인정된 희생자만 해도 14,539명이다. 희생자 신고를 통해서 이루어진 공식적인 수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4·3 당시 제주 섬은 고립된 채 피와 눈물과 시체의 삼다도(三多島)가 되어 갔다. 
반공이데올로기 속에서 1950년대에는 제주4·3을 말할 수 없었다. 4·3에 대한 기억이 표출되기 위해서는 4·19라는 혁명적 상황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진상규명 논의는 중단됐고, 오랜 세월 금기시됐다. 4·3을 다시 이야기한 것은 1978년 북촌리 학살사건을 그린 소설 현기영의 <순이삼촌>이다. 작가 또한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받는 등 필화사건을 겪었다. 이후 4·3의 조직적인 진상규명운동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같이 해나갔다. 1988년에는 사건 발생 40주년을 맞아 추모모임과 학술세미나가 열렸고, 1989년에는 처음으로 공개적인 추모제가 거행됐다. 제주4·3연구소가 조직되어 구술채록이 시작되었고, 제민일보4·3취재반의 『4·3은 말한다』가 연재되면서 진상규명이 활기를 띠었다.
1998년 4·3 50주년을 전후해서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를 위해 “제주4·3특별법 제정” 운동이 제주와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그 결과 1999년 12월 16일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서 2000년 1월 12일 제주4·3특별법이 제정·공포됐다. 2003년 10월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인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됨에 따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10월 31일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또한 2006년 4·3추념식에 대통령으로는 처음 참석해서 유족들을 위로했다.  
2018년 4·3 70주년은 피해자와 유족들이 생존해 있는 어쩌면 마지막 기억투쟁일지 모른다는 인식 아래 기념사업을 민·관 협동으로 대대적으로 준비했고, 전국화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4·3아카이브 전시회, 광화문 국민문화제,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20여개 도시 분향소 운영과 추모제로 진행되었다. 또한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릴레이 캠페인과 영상 콘텐츠 제작, 소설미디어를 통해 4·3 알리기를 해나갔다. 지난 2021년 2월 26일 유족들의 오랜 소망인, “보상, 불법적인 군사재판에 대한 직권재심, 추가진상조사” 조항 등이 들어간 제주4·3특별법 전부개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제주4·3은 이제 국가추념의 1단계에서 피해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배상 등 2단계 해결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특별법 개정안은 희생자 보상, 직권재심 등 국가의 책임과 희생자 유족의 피해회복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또한 추가진상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 2000년 특별법 제정과 2021년 전부개정안 통과로 4·3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피해자 중심의 해결을 동시에 이루어가면서 과거사 해결의 세계적 모범을 만들어가고 있다. 


양정심 조사연구실장(제주4·3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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