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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27. 나리(Lily)의 화신(化神) 고 손진호 교수를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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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대학기록관
아코디언 선율의 나그네 설움이 은은히 귓전을 울려온다.
1982년 11월 1일 밤 갑자기 비보가 들려왔다. 늘 콧노래로 나그네의 노래를 즐겨 부르시던 본교 생물교육과의 손진호(孫珍鎬) 교수님(사진 1, 당시 51세)께서 갑자기 서거하셨다는 전갈이었다. 서울 출장가셨던 손 교수님께서 한국 유전학회 이사회에서의 회식 도중 의식을 잃으셔서 병원으로 급송되었다. 급성 심근 경색으로 진단되었지만 잠시 의식을 차렸기에 안심하였는데 결국 입원 3일 만에 생을 마감하셨다. 돌이켜 보건데 어언 40년 전의 일이다. 아슴푸레 그날을 더듬으며 대학장례식의 모습과 손 교수님의 삶에 대한 회고담을 펼쳐본다.


▲고 손진호 교수 영정 사진


손 교수님은 사범대학 생물교육과에서 세포생물학, 유전학을 강의하셨으며, 주로 한국산 나리속(Lilium) 식물의 핵형분석을 통한 종간 유연관계를 연구하셨다. 식물의 염색체 수, 염색체 형태, 염색체의 banding pattern 등을 비교 분석하여 종간의 근연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본 생물교육과 4회 졸업생(1955.3)으로 대학원 석사과정을 이수한 후 중등학교 교사로 잠시 봉직하시다가 1965년경에 본 학과의 교수로 임명되셨다. 1981년 부산대에서 ‘한국산 나리(Lilium)속 식물의 유연관계’란 제하의 논문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하셨다. 필자는 1977년 4월 본 학과에 발령을 받았으나 동경대학에서 연구하였던 탓에 자리를 많이 비웠기에, 실제는 80년도부터 본 학과에서 근무하면서 손 교수님과는 약 2년간의 짧은 기간 동안만 동고동락할 수 있었다. 당시 정오가 되면 학과 교수님들이 같이 모여서 중식을 즐기곤 하였다. 그때 손 선생님께서 자주 트림을 하시면서 늘 소화불량으로 인한 위장에 약한 통증을 느끼시는 것을 종종 보아 왔지만, 그 질환이 심장의 통증과 연관되어 있었음은 주변의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사인이 ‘급성 심근경색’이란 병명으로 판정되었지만 한 번도 심장질환으로 병원에 가셨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요즈음 같이 병원을 쉽게 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학회 이사회에서 갑자기 돌아가셨고 또 공직 수행 중의 사고였기 때문에 ‘순직’으로 인정되어 ‘경북대 학교장’(사범대학장)으로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고 이학박사 손진호 교수 영결식’이란 현판이 본관 동편 끝자락 여백에 세워졌다. 유해가 안치되고 그 앞의 병풍과 생화, 영정 사진, 화환, 향로 등이 나란히 배치되었다. 장례식은 개식사, 국민의례, 고인의 약력소개, 조사, 헌화, 폐식사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헌화에는 가족을 우선으로 교수, 내빈, 본 생물교육과 졸업생 및 재학생들이 줄을 이었으며, 70여 명의 사범대 및 생물관련학과 교수님들을 중심으로 많은 분들이 줄을 이으면서 장시간에 걸쳐 하얀색 국화나 분향으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추모하였다(사진 2). 영결식이 끝난 후 영구차는 사범대학 본관과 생물관을 답사한 후 정문을 거쳐 고향인 의성군 안계면 비안리의 선산에서 영면하시게 되었다. 장지까지의 전 과정에 경찰의 에스코트가 수행된 점이 대학장의 특이점으로 부각되기도 하였다. 이 모든 장례절차가 대학장으로 시행되었던 것은 ‘순직’하셨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재직시절 사진클럽을 창설하셔서 취미활동으로 수련시킨 학생들의 전문적인 사진작품들이 오늘 제시된 장례식 모습들을 간직하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고 손진호 교수 영결식


연구실의 문하생으로 가장 수제자였던 송남희 박사는 박사과정 3년차에 교수님을 여의신 후 학위논문 제출과정에서 지도교수 결손에 의한 어려움으로 방황하였다. 마침 지도교수와 친분이 가까웠던 일본 Osaka Kakuin(大阪學院) 대학 Noda(野田) 교수님의 부르심으로 도일하여 연구를 지속하게 되었다. 그 후 ‘C-banding Pattern에 의한 일본산 나리속 식물의 유연관계’를 확립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구교육대학 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하셨다. 교육학 석사로는 김원석 장학사(포항 경북교육청) 외 다수의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사모님 김자득(85세) 여사와의 슬하에는 2남 1녀가 믿음직스럽게 자라서 장남은 진주 산업대 교수로서 학장까지 역임하셨고, 따님은 대전 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 사위와 다복한 가정을 꾸리셨다. 막내 아드님은 서울 수출입은행에서 활약하셨다고 전해진다. 아버지가 먼 하늘나라에서 자녀들을 항상 지속적으로 지켜주시는 것 같았다.
40년 전의 갑작스런 청천벽력 같은 타계였지만 사후에도 계속 가족들, 제자들을 돌보시면서 생물학자로서의 가르침을 전해주시는 교수님의 영전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하고 명복을 빌면서 ‘나그네의 설움’의 잔잔한 음율을 재음미하여 본다. 
본고의 집필에 많은 도움을 주신 송남희 교수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송방호 명예교수
(사범대 생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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