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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무너진 지점에서 만나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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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2020년 5월 Pandemic!: COVID-19 Shakes the World, 2021년 1월 Pandemic 2: Chronicles of a Time Lost라는 두 권의 저서를 연이어 발간하면서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호흡기 감염 질환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무거운 경고를 반복했다. 라캉(Jaques Lacan), 마르크스(Karl H. Marx), 헤겔(Georg W. F. Hegel)을 접목한 사유로 ‘동유럽의 기적’, ‘라캉 정신분석학의 전도사’, ‘서구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불리는 지젝은 이 두 권의 저서를 통해서 ‘두려움을 넘어서는 더 심각한 무언가’에 대해 피력한다. 그는 이제 더는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젝은 ‘사회적 삶 전체를 새로운 형태로 발명해야 한다’고 간절한 웅변을 토해낸다. 
왜, 우리는 팬데믹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바이러스만 통제하고 나면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아포리즘을 되뇌며 늘 그랬듯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걸까? 지젝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미 팬데믹이라는 실재의 사막을 통과하면서 나와 나의 주변을 아우르고 있는 삶의 모습 자체가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팬데믹이라는 현재 상황은 실재다. 이 상황을 도외시하고 일상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조우해야 하는 실재를 폐제(foreclosure)하겠다는 말이다. 지금은 바이러스의 확산이나 그로 인한 죽음과 고통을 두려워하는 상태를 넘어 우울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바이러스의 전염이 종식된다 해도 일상으로의 복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남는다. 이미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리고 있던 환상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우리의 일상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그래도 되고 말아도 되었던 하루, 늘 같은 반복이 불쾌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요된 거리두기와 통제는 우리가 지금껏 무엇에 의존하고 살았는지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저 그런 상황 속에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정도였다면 그 일상이 통제당한다고 해서 우울해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늘 그랬듯 혼자인 시간을 선택했다고 여겼으면 그뿐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와 통제의 지속은 우리가 선택했던 것들이 실은 선택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의존이었으며, 그 의존은 우리가 홀로 잘 서 있다는 것에 대한 버팀목이 되어준 환상이었다. 환상의 도움 없이는 현실도 없다. 환상이 깨어질 때 현실도 깨어진다. 인간의 삶은 홀로 고고(孤高)할 수 없다는 것을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이다. 
대학의 실정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19의 확산과 치료제 개발의 지연, 백신의 불완전성 등은 교육과정의 정상화를 더 요원한 곳으로 몰고 간다. 이 사태를 받아들이고 대학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당국은 비대면수업체제의 안정화, 미네르바대학과 같이 이미 성공적인 비대면 교육과정을 갖고 있는 국제대학들과의 교섭, 교수자들의 적극적이고 심도 있는 비대면 수업방식 개발, 공정성 있는 평가를 위한 시스템 구축 등과 같은 당면 과제들을 더는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양질의 수업을 들을 학생들의 당연한 권리가 더는 침해당하지 않도록 현 상황에 대한 철저하고 냉철한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 
이미 2년이 넘어가고 있는 이런 상황을 코로나-19란 바이러스만 사라지면 모두 회복되리라는 안일한 태도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미 우리가 일상이라고 믿었던 것, 너무나 당연하던 공적 환경들은 무너졌다. 공적 환경, 다시 말해서 관습이 만들어준 기반이 무너진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 사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지금껏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환상이 제공하는 틀 안에서 만들어졌던 것임을 수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팬데믹 사태에 사로잡혀 학교 당국의 처분만 기다리며 모든 것은 코로나-19때문이라는 또 다른 환상 뒤에 숨어 눈을 가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가 그 자신으로 드러나게 하는 방식으로 그가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을 학생들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스무 해 이상을 살아오면서 다듬어진 일상이라는 환상의 틀이 있었듯, 이제 학생들은 스스로 윤리적 주체(Ethic Subject)로서 이 상황을 가로지르며 완전히 새로운 사회의 틀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껏 스스로가 의존해 온 환상이 무엇이었는지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쩌면 팬데믹의 시대에 이십대 청춘이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 환상을 발견하고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길을 찾는 철학적 사유가 아닐까? 
모든 것이 암울한 이때에 자기를 드러낼 수 있기 위해 그저 자기였다고 믿었던 환상의 틀을 파괴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이 팬데믹을 지나 새로운 길을 내는 희망이 되리라 믿어본다.

배선윤 강사
(교육혁신본부 교양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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