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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진리도 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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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이 ‘진리는 프로세스’가 아니라 ‘진리도 프로세스’인 이유는 지난 5월호에 ‘인생은 프로세스’를 썼기 때문이다. 삶뿐만 아니라 진리(眞理, truth)도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過程, process)임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사실’과 ‘진리’라는 용어를 정리해보자. 사실은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어떤 것’이다. 가령 “해가 동쪽에서 뜬다.”와 같은 것은 한 가지 사실이다. 사실을 헤아릴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두 가지 사실들’, ‘열 가지 사실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의 덩어리’를 ‘진리’라고 부를 것이며, ‘진리’를 영어의 family와 같은 집합명사로 쓸 것이다. 어떤 한 가족의 구성원이 열 명이라도 ‘가족’이라고 부르듯이 비록 내가 지닌 사실들의 덩어리가 여러 개의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을지라도 ‘진리’라고 부를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내가 참이라 믿는 사실들과 상대가 참이라고 믿는 사실들이 다를 수가 있다. 즉 나의 진리가 상대의 진리와 같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지구엔 사람의 숫자만큼 많은 진리들이 공존할 수 있으며,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개인의 존재가 이렇게 귀하고 독특하므로 개인을 소우주(小宇宙)에까지 비교한다고 본다.

그리고 진리는 고정된 상태(狀態, state)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해간다. 우리의 인식과 생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어제 믿었던 사실이 오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따라서 어제의 진실, 즉 사실들의 덩어리가 오늘의 진실과 같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정의하는 진리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어떤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영어로 다시 정의하면 Truth is ‘not a fixed state but a process, in which we are trying to find something that, we believe, is true.’이다. 이렇게 진리를 정의하면 다음의 장점이 있다.

첫째, 진리가 먼 나라의 것도 아니고, 특수계층의 전유물은 더욱 아니다. 우리 모두는 ‘사실들의 덩어리’, 즉 진리와 더불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들의 덩어리’, 즉 진리를 매일 새롭게 바꿈으로써 우리 모두는 진리를 추구하는 학생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진리와 더불어, 진리를 찾는 학생으로서, 당당하게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째, 공부 방법과 교수법에 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 책이나 논문엔 당분간 또는 특정 시기에 특정인이 참이라 믿는 사실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들이 진정 참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책이나 논문이 진리를 담고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되며 그것들의 내용을 암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좋은 공부 방법은 책 속에 있는 주장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하고, 그 과정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옳다고 판단되더라도 그것을 확고한 사실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주장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 도출되었다는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주장과 관련된 다른 자료들이 확인되면 처음의 주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학문의 세계에서 그러한 수정은 매일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공부 방법의 변화는 그에 상응하는 교수법의 변화를 불러온다. 수업과 강의가 ‘맞는지 그른지도 모르는 지식’의 전달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수업과 강의는 학생들에게 어떤 주장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 과정이 옳거나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예술이며 교수와 학생은 다 같이 진리를 찾아가는 동반자들이다.

셋째, 진리가 과정이라면 진리추구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면서 죽기 전까지 좇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면 평생교육, 독서의 생활화 등도 자연히 실현되며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진리 추구를 멈추는 것, 그것을 필자는 ‘정신적 죽음’이라 부른다.

끝으로, ‘진리’라는 말이 때로는 격이 너무 높아져서 신성(神性)을 얻은 소수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하며, 보통 사람들은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진리에 미신적·종교적·이념적 색채가 더해지면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수단으로 타락할 수도 있다. 진리를 과정으로 이해하면 우리를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헛소리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을 수 있으며 생의 당당한 주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을 니체 철학으로 바꿔 표현하면 위버멘쉬(bermensch)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 된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고양시키고, 존재의미를 충실하게 구현하며, 주인의식을 갖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진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찾는가?’를 설명하지 않았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지면 ‘진리는 말과 글 속에?’를 쓸 것이다.






김노주 교수

(인문대 영어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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