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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23. 농촌활동과 사회진출준비위원회로 그 시절 학생사회를 들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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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사회와 학생문화는 고정되어 있는 채로 굳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모해 왔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학생운동으로 학생사회가 결집하여 민주화를 위한 목소리와 행동을 내세웠다. 그리고 운동권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학생문화가 형성되어 캠퍼스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현대사회로 접어들어서는 개인주의적 문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학생사회가 형성됐다.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면서 비대면 만남을 기반으로 한 또 다른 모습의 학생사회가 그려지고 있다. 
이와 같은 학생사회의 변화를 느끼기 위해 당대의 학생들이 남긴 자료를 읽는 것만큼 효과적인 간접체험은 없을 것이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의 본교 농과대학 학생회가 농촌활동(이하 농활)과 사회진출준비위원회(이하 사준위)를 논의한 회의 자료를 통해서 그 시절 학우들의 활동과 생각들을 엿보려고 한다. 마치 20여 년 전 학생회의 임원이 되어 회의에 참석한 것처럼 회의 자료를 살펴보면서 당대의 학생사회의 모습이 어땠는지, 지금과 비교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함께 들춰보자.

농촌활동
여름방학을 앞둔 당신은 무더운 날씨를 뚫고 회의장에 도착했다. 이번 회의가 열린 이유는 여름, 바로 농활의 계절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농활은 대학생들이 방학 등의 기간을 이용하여 농촌에서 일손을 거들고, 농민과 교류하면서 농촌의 실정을 체험하는 활동이다. 농활은 1920년대 농촌계몽운동과 1930년대 브나로드 운동에 그 기원을 둔 오랜 역사가 있다. 1960년대에는 향토개척단이라는 이름으로 농활이 이어졌으며, 유신체제 이후로는 계몽과 봉사의 개념을 넘어서 농촌사회의 구조를 변혁하는 사회운동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이러한 성격 변화 속에서 농활을 둘러싸고 학생회, 대학, 정부, 마을 유지 등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농활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전국농민단체연합(전농), 전국대학생대표협의회(전대협) 등 전국 조직이 만들어지면서 이러한 단체들의 연대로 농활의 규모가 크게 확장됐다. 그러나 운동권으로 대표되던 학생사회의 성격이 변화하면서 1990년대 후반 이후로는 농활이 쇠퇴의 시기를 걷게 된다.
쇠퇴의 시기를 맞이하던 농활의 회의 자료 속 목표는 어땠을까? 자료를 펼친 당신은 그 목표를 보고 놀랄지도 모른다. ▲IMF 재협상 ▲농가부채해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회(한총련) 사수 ▲WTO 쌀수입개방반대 투쟁 등이 농활의 목표였다. 현재의 농활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 당시까지도 농활의 사회 운동적 성격이 남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농활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농활 행사의 계획을 들여다 보면 그 성격을 더 면밀히 알 수 있다. 낮에는 농민과 함께 땀 흘리며 농사일을 돕는 근로활동을 실시한다. 저녁부터는 농활의 꽃이라고 표현되는 분반활동이 실시됐다. 분반활동은 농민들이 청장년, 여성, 청소년 아동반 등 연령별, 성별로 나뉘어 대학생들과 교류하고 토의하는 활동이다. 자료에 담긴 분반활동의 주제는 농산물 수입으로 인한 식량 자급과 농촌경제의 위기, 여성학, 학생투쟁의 정당성, 조국 통일 등이었다. 이처럼 당시의 농활은 대학생이 농촌사회와 만나 서로를 이해하는 교류의 장인 동시에 정치적 장의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사회진출준비위원회
‘아니 나 왜 4학년?’ 도저히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이제 마지막 학기에 접어든 당신은 졸업 준비에 한창이다. 학사모와 학위복을 갖춰 입고서 캠퍼스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담는 졸업 사진과 앨범은 놓칠 수 없는 추억이다. 이 앨범 제작을 주관했던 기구가 바로 사준위다. 사준위는 학생회칙 상 복지위원회 산하 기구였다. 각 단과대학별로 한 명씩 위원을 선출하여 졸업앨범 제작 업무를 담당했다. 2004년 농대 학생회의 자료를 보면 사준위는 ▲졸업생 명단 요구▲앨범 제작업체 선정 ▲사진 촬영 ▲앨범 수령 및 배포 등 9월부터 시작해 다음 해 2월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을 통해 학생들의 소중한 추억을 담은 졸업앨범을 제작했다. 그런데 ‘사준위’라는 이름, 당신은 들어본 적 없을 수도 있다. 사준위는 현재 폐지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졸업앨범의 수요가 점차 줄면서 폐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고, 결국 2016년 8월 22일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제48대 ‘SODA’ 총학생회가 폐지를 결정했다. 이후 졸업앨범 제작 업무는 각 단대 학생회로 넘어가게 됐다. 사회가 개인화된 요즘 시대에서 졸업앨범의 필요성이 줄어 자연스레 수요가 감소했다. 결국 학생사회의 역사적 흐름은 졸업앨범이 가진 의미에 변화를 주었고, 사준위라는 학생기구의 존폐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1998년 농촌 활동 기획안


▲2004년 사회진출준비위원회 일정안


김민호(사회대 사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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