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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21. 도서관! 지금의 모습이 되기 전에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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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가을에 우리 도서관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 전, 진리 탐구의 초석이 되고, 새로운 시대를 열던 그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려고 한다.
 
우리 도서관은 1952년 10월 농과대학, 사범대학, 의과대학에서 보유하고 있던 자료 8,866권을 인수하여 발족하였고 그 이듬해인 1953년 5월 현 출판부 자리에 있었던 130평 목조건물에서 정식으로 개관하였다. 1952년은 6·25전쟁 중이었기에 본교 가교사 신축에 도서관이 포함된 것은 도서관이 대학의 핵심적인 시설이라는 것을 당시 학교 당국자들도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리라.
1954년 재학생이 4,296명에 이르자 도서관은 항상 시설 부족에 시달렸고, 이에 학교 당국에서 도서관 신축의 시급함을 인식하고 1955년 하버드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권위자 조자용(趙子庸, 1926-2000) 건축가에게 신축 도서관의 설계를 위탁하여 같은 해 10월 도서관 신축공사에 들어갔다. 조자용 건축가의 원설계도에 도서관은 3층 ‘W’자형으로 설계되어 마치 제트기가 웅비하는 기상과 같았으며, 날아가는 새의 형상과 같아 행운을 상징한다고도 하고 혹자는 책을 펼친 형상과도 같다고 한다.
1956년 현 박물관 위치에 자리 잡은 도서관은 총 50만권의 장서와 2천 명의 이용자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으나, 이 때 완성된 건물은 1, 2층(건평 700평) 동체뿐이었고, 3층과 양 날개 부분은 1961년과 1967년 두 번의 증축을 거쳐 완성되었다.
처음 준공되었을 때 도서관 내부 공간 구성 중 재미있는 부분은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미국인 강사실과 여학생 열람실, 자연계 학생 열람실, 인문계 학생 열람실로 명명된 공간이며, 도서관 1층에 방송시설을 완비하여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그날의 뉴스, 음악, 회화 등을 방송하기도 했다.

1962년 9월 시청각실에는 60석의 좌석과 443매의 레코드 및 기기가 비치되어 있어 음악과 문화영화, 슬라이드, 영어회화 등을 시간에 따라 교대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런데 1974년 학생처로 관리부서가 이관되었다가 후에 사범대학 내의 시청각실과 병합되면서 명칭이 시청각교육관으로 변경되어 분리되었는데 당시 도서관 입장에서는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1970년대 들어 문교부가 추진했던 대학교육개혁사업의 기본 원칙에 대학이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념이 있었다. 이러한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 도서관에서는 1972년 5월 40개의 열람석을 구비한 20평 규모의 시민열람실을 마련하고 일반시민뿐만 아니라 타교생들에게도 우리 대학 교수의 보증과 추천이 있으면 대출까지 해주었다. 어찌 보면 현재 활성화되어 있는 상호대차·원문복사 서비스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1976년에 설치된 음향도서실은 방송통신대 교재와 녹음테이프를 비치하고 있었으며, 외국어회화, 연설문, 명곡 녹음테이프 등도 비치하고 있었는데, 계속 진화 발전하여 도서관의 전자자원과 U-Lounge로 완성되었다.

도약의 1980년대를 향한 복현골은 분주하였다. 대학본부는 캠퍼스의 확장과 내실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는데 그중 획기적인 사업이 도서관의 신축이었다. 1970년대 이후 대학의 대형화에 따른 학문 인구의 급진적인 팽창과 연구·면학 분위기 성숙으로 이용자가 급격히 늘어나 우리 대학 초창기에는 전국 굴지의 규모와 시설을 자랑하던 현재의 박물관 건물도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이 한계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이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신축한 것이 현재의 도서관 건물이다. 
신축 도서관의 규모는 25억 2천만 원을 투입하여 지하1층 지상5층, 연건평 14,586㎡(4,413평)의 면모를 갖추고 구조는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으로 웅장하게 설계하였다. 1979년에 착공하여 1982년 3월 3일 신축 건물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갔다. 개관식에서 한명수 총장은 “대학의 도서관은 그 대학의 심장이요, 동맥이다.”라고 언급하면서 중앙도서관의 중요성과 미래를 강조하며 웅비하는 대학 도서관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 이후 1988년부터 시도된 중앙도서관 개혁운동이 하나의 동기가 되어 1990년 신관 일반열람실을 개관하게 되었다. 이 개혁운동은 중앙도서관의 보다 나은 기능 발휘를 위해 총학생회와 사회대 도서관학과(현 문헌정보학과) 중심으로 중앙도서관 개혁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전개되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도서관 증축, 1.3% 도서구입비를 2%로 상향 책정, 개가제 운영 그리고 시설면에서 소음방지, 휴게실과 환기 장치 설치 등이었다. 이 운동 결과 신관 개관으로 총 열람석이 4,485석으로 늘어나 「대학설치기준령」에 따른 열람석 수를 넘어서게 되었으며, 그동안 시험기간만 되면 열람석을 잡기 위해 새벽부터 중앙도서관에서 인근 인문대학 건물까지 장사진을 이루었던 학생들의 줄서기 모습이 다소 사라지게 되었다. 2000년 2017년 두 번의 구관 증축과 2019년 2월 대구·경북 거점 도서관 선포 및 새 단장 오픈을 알리며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개관 당시 소장 도서가 8,866권에서 현재 3,487,478권으로 390배 증가했고, 429㎡(130평)에 불과했던 공간은 41,434.41㎡(12,533.9평)로 96배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 우리 도서관의 위상에 걸맞는 미래 도서관으로 다시 뜨겁게·다시 자랑스럽게 성큼성큼 나아가야 하리라.


▲도서관 건물 설립 당시 현장사진(1960)


김영수 디지털서비스 팀장
(도서관 학술정보 운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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