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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

금속활자에 담은 빛나는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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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나 책상 위를 보면 책장마다 똑같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오늘날의 발달된 인쇄 기술 덕분이다. 과거에는 활자를 통해 인쇄를 했다. 훈민정음이 창제 전까지 주로 한자 활자가 사용됐으며, 훈민정음 창제 이후 세종은 훈민정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글로 활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쓰고 있는 한글이 당시에는 어떻게 활자에 담겼을까? 이번에 소개할 활자는 한글활자로 지난 9일 한글날을 맞이하여 인사동에서 발견된 한글금속활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아는만큼 보인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인류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 끝에 발명한 것으로 인류문화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일일이 책을 베끼는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목판 인쇄술이 등장했지만 책판을 만드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며, 한종의 책만 펴낼수있는다는 점에 있어 큰 불편함을 야기했다. 이에 고안해낸 것이 바로 쇠붙이를 녹여서 만든 금속활자가 출현했다. 고려시대의 금속활자의 출판은 서적점(書籍店), 서적포(書籍鋪), 서적원(書籍院)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세계에서 처음 창안된 만큼 활자의 주조에 있어서 활자의 크기와 모양이 고르지 않고 자획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았으며, 부분적으로 획이 나타나지 않아 인쇄상태가 깨끗하지 못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도 고려시대(1377년)에 제작된 금속활자본임을 ‘주자인시(금속을 녹여 만든 활자)’라는 문구 덕분에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금속활자의 수준이 급속도로 발전됐다. 조선시대의 금속활자 제작은 국가기관인 주자소에서 전담했다. 조선 금속활자의 첫 시작은 1403년(태종 3년)에 제작된 ‘계미자’이다. 당시 ‘계미자’의 서체 크기와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많은 개량의 필요성을 느낀 세종대왕은 왕위에 오른 직후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개량했다. 이후 1420년에 ‘경자자’, 1434년에 ‘갑인자’가 만들어졌다. 특히 갑인자는 활자의 모양이 바르고 분명해 ‘활자의 백미’로도 꼽힌다. ‘갑인자’는 조선 후기까지 사용됐으며, 1450년(세종 32)에 안평대군의 글자체를 바탕으로 한 ‘경오자’, 1455년(세조 1) 을해자, 조선 후기 명나라에서 유입된 ‘인서체’ 등 많은 글자체가 사용됐다.

인사동의 활자가 품은 속내

현재 보관중인 인쇄본과 실물활자의 경우 조선후기에 주조된 것으로, 조선전기(임진왜란 이전)의 금속활자로 전해진 것은 30여점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서울 인사동의 한 항아리 속에서 1600여 점의 금속활자(1000점의 한자와 600점의 한글)가 발견됨으로써 지금껏 우리가 가졌던 ‘금속활자의 나라’라는 명칭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실물 활자본이 나온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가 발견됐다는 점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진다. 1434년 제작된 갑인자(甲寅字)를 비롯해 1465년에 제작된 을유자(乙酉字) 활자들이 포함돼 있다. 만약 갑인자임이 정확하게 밝혀지게 된다면 1440년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가 인쇄된 시기보다 앞서 만들어진 실물 활자이다. 또한 <42행 성서>와 이를 제작한 인쇄 도구 및 활자의 제작 시기가 약 100년 정도 차이가 나는 반면, 이번에 발견된 유물은 인쇄 도구인 활자는 물론 인쇄물까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것임이 밝혀졌다.
이번 발견에서는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모두 출토된 점, 인쇄본에서만 볼수있었던 연주활자등 과거 책이 어느 시기에 간행됐는가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대거 출토됐다.

연주활자(連鑄活字)

▲인사동에서 발굴된 연주활자(連鑄活字)
 (출처 : 문화재청)

지난 6월 인사동에서 발견된 금속활자에는 연속으로 주조된 활자도 10여 점 정도 출토됐다. 개수가 많지는 않으나 연주활자는 책의 간행 연대를 아는 증거로 활용가능하며, 국어 문자 한글 표기의 변천을 살피는데 중요한 사료가 될 수있다. 연주활자는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표기해 연결하는 어조사(‘하며’, ‘하고’)의 역할을 했으며, 당시엔 한문 사이에 자주 쓰는 한글토씨를 인쇄 편의상 한번에 주조했다. 이는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자동완성기능과 유사하다. 연주활자에 사용된 글자체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조선 금속활자 글자체인 세조의 ‘을해자(1455년)’보다 20년 이른 세종의 ‘갑인자(1434년)’로 추정된다. 연주활자는 과거 활자로 달력을 만들 때 절기나 날짜 등을 나타내는 데에도 사용됐다.

서로 다른 네 가지 크기의 활자를 보다


▲왼쪽부터 대자(大字), 중자(中字), 소자(小字)이다.(출처: 문화재청)

한글 금속활자를 이루는 대자(大字), 중자(中字), 주석 등에 사용되는 소자(小字)와 특소자까지 네 가지 크기의 활자가 모두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된 활자의 경우 크기뿐만 아니라 필체도 다르며 다섯 종 정도의 활자가 섞여 있다. 쉽게 말해 다양한 폰트의 글자가 발굴된 것이다. 보통 하나의 문헌에는 두 가지, 많으면 세 가지 정도의 활자가 사용된다. 즉 네 가지의 다른 활자가 한꺼번에 발견됐다는 것은 여러 해에 걸쳐 쓴 활자들을 한데 모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동국정운식 표기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 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을 담은 『동국정운』을 집필했으며, 여기에서 사용된 표기법을 ‘동국정운식 표기’라고 한다. 『동국정운』은 한글자 큰 자와 한자 큰 자를 나무 활자로 조각해 인쇄했다. 학생 때 한 번쯤은 외워봤을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를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문구도 동국정운식 표기이다. 이는 애민 정신으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단순히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국정운식 표기법은 16세기 전에 사라진 15세기의 전유물이며, 3가지 큰 특징으로 ▲이영보래(ㅭ) ▲순경음 미음(ㅱ) ▲반치음(ㅿ) 현상이 있다. 동국정운식 표기는 인쇄된 책으로는 내려왔지만 금속활자로는 전해진 바가 없었다. 그런점에서 이번 인사동에서 실물로 발견된 유물 속의 동국정운식 표기는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 이영보래 현상 : ㄹ받침에 ㆆ(여린히읗)을 더해 ㄷ과 비슷한 소리가 나는 현상으로 닫는 소리를 내는 데 사용됐다.


▲동국정운 표기법이 담긴 『동국정운』원문



같은 한글 다른 서체

조선은 국가의 주도하에 수십차례에 걸쳐 활자를 제작했다. 한문을 공식적인 표기 수단으로 사용했기에, 이들 대부분도 한자로 제작됐다. 하지만 세종즉위(1418년) 28년 후인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되면서 한자 금속활자에 이어 한글 금속활자의 시대가 열렸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세종은 중요 문헌 다섯 권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동국정운』,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을 정음으로 간행했다. 다섯 권의 문헌은 책의 중요도와 의도에 따라 3가지 방법으로 출판됐으며, 『훈민정음』, 『용비어천가』는 목판본으로,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은  한글과 한자 금속활자로 간행했으며,  『동국정운』의 경우 목활자를 새겨 간행했다.
한글금속활자 인쇄본에는 ‘초주갑인자 병용한글자’, ‘을해자 병용 한글자’, ‘을유 한글자’, ‘을해자체경서 한글자’, ‘원종 한글자’, ‘전사자 병용 한글자,’ 재주 정리자 병용 한글자‘로 총 7가지의 다양한 글자체가 고안된 것을 알 수 있다. 한글금속활자의 첫 시작이었던 갑인자와 인사동에서 발굴된 을해자, 그리고 활자의 표기법인 동국정운식 표기에 대해 알아보자.

초주 갑인자 병용 한글자란?


▲갑인자로 인쇄한 석보상절영일본 (출처 : 고인쇄박물관)

초주 갑인자 병용 한글자는 1447년(세종 29)에 만들어진 청동 활자로 월인석보 한글자라고도 한다. 이 활자는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출판에 적용됐다. 이들 서적을 출판하기 위해, 한자 활자는 갑인자의 대자와 소자를 사용하고 정음의 대자와 소자는 새로이 한글 활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한글 활자의 대자의 경우 고딕인서체, 소자는 세필인서체로 돼 있다. 한글 활자의 대자는 한자 활자 소자보다 크고 굵어 압도하는 느낌이 강하다. 이 활자는 세종이 우리 글을 창제하고 최초로 주성한 금속활자인 점에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 『석보상절』은 1446(세종 28)년 3월에 세종비 소현왕후가 돌아가시자 고인의 극락왕생을 위해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엮어 정음으로 번역한 책이다. 
● 『월인천강지곡』은 정치적으로 가장 위상이 높은 인물들과 신앙적으로 존숭받던 부처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을해자 병용 한글자란?


▲능엄경을 한글로 풀이한 『능엄경언해』

을해자 병용 한글자는 1461(세조 7)년에 만들어진 동활자로 능엄한글자라고도 한다. 세조는 한문 불전을 한글로 번역하여 유통시키기 위해 예비과정으로 을해자를 사용해 여러 가지 불교 경전을 출판했다. 츨판 과정에서 을해자의 대자, 중자, 소자를 조화있는 체제로 짜서 기본한역불전을 거의 찍어낸 후, 같은 체제로 번역을 교정하게 했다. 을해자 국역본에 쓰인 한글활자는 을해년에 주성된 것이 아닌 세조의 불서인쇄가 촉진됐을 때 이루어졌으며, 그 시기는 을해자 국역본 『능엄경언해』를 처음 인쇄할 때이다. 이 책에 쓰인 한글활자는 소자들이며, 인서체(정자)에서 필서체(특정인의 피체가 돋보이는 글씨)로 넘어가는 과정의 특징을 보여준다.

*인서체 : 왕실의 의례 기록, 교과서 발행등의 공식적인 문서에 쓰는 정자
*필서체 : 비공식정인 문서에 사용되며, 특정인의 글씨체가 보이는 글자


자문 : 백두현 명예교수(인문대 국어국문)

하채영 기자 citten23@knu.ac.kr
편집 조현진 기자 jhj20@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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