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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17. 대구경북 시도민의 기부와 후원을 통해 국립 경북대학교를 만든 것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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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도움으로 전 세계 가장 취약하고 소외된 환자에게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용기로 또 하나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아동 노동으로 고통받는 아이를 학교로 보냅시다.” “더 이상 굶주리고 배고픈 아이들이 없도록 따뜻한 밥 한 끼를 선물해주세요!” 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는 기부와 후원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 기부라는 것은 어려운 사람을 위해 혹은 대의를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가진 재산이나 재능을 내어주는 것이다. 기부가 사회 공동체의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능사가 아니지만, 기부가 없으면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 점이 있다. 국립 종합대학인 경북대학교의 태동의 역사가 바로 그러하다. 
경북대인이여! 우리가 꿈을 꾸면서, 타인들을 사랑하면서, 진리, 긍지, 봉사의 정신에 맞게 각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경북대학교가 설립 당시 오로지 대구 경북 시도민들의 기부와 후원으로 만들어진 사실을 알고 있는가? 중앙도서관 5층에 있는 대학기록관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해방 후인 1945년 11월 대구 경북지역의 유지들이 ‘종합대학교기성회’를 조직한 후에 설립기금을 조성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기부로 조성된 설립자금이 부족하다고 해서 미군정에 의해 설립이 무산되었다. 그 대신에 1946년 미군정이 해방 전에 있었던 세 개 학교의 명칭을 바꾸고 형식적으로 국립대학으로 개편하여 대구농과대학, 대구사범대학, 대구의과대학의 단과대학 체제가 성립되었다. 
6·25 한국전쟁 이후 교육시설의 파괴와 인재양성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대구 경북지역에서 국립 종합대학교의 설립 움직임이 재개되어 1951년 4월에 ‘국립종합 경북대학교 건설위원회’가 조직되어 활동하여 마침내 같은 해 10월 6일에 국립 경북대학교의 설립을 인가받았다. 이 ‘건설위원회’에서 경북대학교 캠퍼스 부지를 처음에 10만여평 매입할 계획이었으나, 당시 문교부장관이 현지답사 때에 현재 본관 뒤 현 중앙도서관 구릉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서 지팡이로 복현오거리 너머 배자못까지 원으로 가리키면서 향후 웅장한 종합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캠퍼스는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해서, 후에 경북대 부지가 총349,699평으로 확정되었다. 1952년 토지측량을 하여 토지 소유자 318명으로부터 캠퍼스 부지 총35만여평에 대한 사용 승인과 학교 측에 매도할 계약을 하였고, 대구 경북 시도민의 헌신적인 기부와 후원을 통해 총 예정부지 35만여평 중에 일단 17만평을 매입하여 정부에 기부채납하여 1952년 국립 종합대학으로서 경북대학교가 개교되었다.
1951년 국가의 재정이 없었던 어려운 시기에 경북대학교 건설위원회에서는 부지매입을 지역 자체에서 부담하라는 정부의 지시에 따라 눈물겨운 경북대 건설기금 모금이 있었다. 대구경북 독지가들에게 기부를 요청하였고, 대구지역 5개 극장 입장료에서 1매당 백원씩 1년간 후원을 받았고, 달력을 인쇄하여 시도민 가구당 1매씩 배분하고 그 달력 대금조로 600원씩 징수하였고, 초중등학교에 학습시간표를 배당하여 그 시간표 대금 등으로 건설비용을 충당하였다. 그 당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발적인 후원과 기부를 요청하였지만, 캠퍼스 총 전체 35만여 평을 매입하기에 상당히 부족하여 17만평을 매입하는 비용만 조성되었다. 따라서 캠퍼스 17만평만으로 개교하였던 것이다. 또한 경북대 캠퍼스 내 교사 및 교실 마련 자금 마련에도 대구 경북지역의 독지가의 도움과 의료업계, 요식업계, 이발업계, 양조업계 등 각 업체에 후원과 기부가 있었다. 이처럼 지금과 같은 자랑스런 경북대학교는 대구 경북 시도민들의 기부와 후원이라는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경북대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개교 당시까지 매입하지 못한 캠퍼스 토지 매입 등에 관한 문제는 ‘건설위원회’에서 향후에 1956년 설립인가된 ‘재단법인 경북대학교 후원재단’에 그 임무를 이관하였다.
대학기록관에서 어렵게 찾은 자료를 살펴보자. 사진에서 보는 자료는 대학기록관에서 생산년도를 알 수 없다고 표기된 ‘후원재단 재산취득현황’이라는 문서이다. 대학기록관에 2명의 직원만이 고군분투하고 있기에 정확하게 생산년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하나는 1955년 경북대학교 건설위원장에게 총장이 개교 당시 미매입한 신암동 토지를 사용하고자 매입금액을 지불해 줄 것을 요청하는 서류이고, 또 하나는 1956년 ‘경북대학교 후원재단’ 설립 후에 1958년도에 후원재단 이사장이 총장에게 표시된 부지에 대해 이전등기를 완료하였다고 보고하는 건이다. 그 후에 착실하게 경북대 캠퍼스 35만평을 매입하였으면, 복현오거리 근처에 현재 아파트 촌으로 둘러싸인 모든 곳이 현재 경북대학교 캠퍼스가 되었을 것인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경북대 대구캠퍼스 총면적은 25만여평이다. 경북대 설립 당시의 계획대로 추진하였으면, 건물 들어갈 틈이 없고 녹지가 사라지는 현재 복현캠퍼스가 되지 않았을 텐데. 기부와 후원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 후 경북대학교 후원재단의 활동은 흐지부지했던 것 같고, 1992년 경북대학교 발전기금재단이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선진국 반열에 올라간 대한민국에서 국가재정이 부족했던 가난한 시절과 같은 기부와 후원의 방식으로 국립대학을 운영할 수는 없다. 모든 국립대학교 기본적인 운영의 재정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제 국립대학에서 등록금도 국가에서 부담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대한민국이 가난할 때, 학교시설의 설립과 운영을 돕기 위해 학부모와 기부와 후원자를 중심으로 만들었던 대학 기성회조차도 2015년도에 법적으로 폐지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에 걸맞게 국립대학의 고등교육재정은 모두 정부로부터 나와야 할 것이고, 그 외 정부에서 책임질 수 없는 부분의 문제는 경북대 설립의 역사처럼 자발적인 기부와 후원으로 충당해야 할 것이다. 경북대인이여! 자발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기부와 후원을 일상적으로 실천하자.



▲고병간 초대 총장이 건설위원회에 토지 매입을 요청한 문서(1955)


▲경북대학교 후원재단이 총장에게 토지 이전 완료를보고하는 문서(1958)


이시활 연구원(영남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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