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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초록색인 채로 시들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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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인간이 공익과 최소한 타협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 중에서도 가장 입문하기 쉬운 것은 바로 산책이다. 그저 사는 아파트 근처를 맴도는 것뿐이지만 루쉰의 작품 <고향>의 마지막 문장인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길이 되는 것이다’ 에서 알 수 있듯, 본래부터 길이라고 정해진 길은 없다. 그저 수많은 일상의 용도로 트인 모든 공간이 어떤 의도를 품은 발과 맞닿을 때 비로소 그 의도대로의 길이 되는 것이기에, 나는 산책을 하기로 했다.

코로나 시대의 첫 여름을 떠올려 보니, 나는 많이도 걸었고, 또 참 많은 것들을 봤다. 이를테면 충영으로 뒤덮인 앵두나무 잎. 그 얼룩덜룩한 흔적과 뒤틀린 모양은 어느 이름 모를 곤충이 기생하여 생긴 흉터이다. 이들은 온전해 보이진 않지만 아주 시들지도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그 아픔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게 태연하게 서 있는 모습이 다. 이것을 보고 생각했다. 초록색인 그대로 시들어가는 것들도 있구나. 아직 젊고 어린 학생들 또한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비상 상황에서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흉이 있다곤 하지만 시들었다기엔 아직 너무 푸른 잎처럼, 그들 중 너무 많은 이들이 오늘까지는 어찌저찌 꿋꿋했다가도 당장 내일 소리 없이 져버리곤 하지 않았던가. 어쩌다 이 모든 게 당연해졌단 말인가.

다들 말은 않지만, 우리의 기분은 하루만 해도 몇 번을 치솟았다가 이내 곤두박질치곤 한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집 안에 틀어박히니 내 방 안엔 오직 나뿐이고, 사방이 조용한 와중에 내 머릿속에서만 두런두런 말이 많다. 이러한 고립의 이점도 물론 있었다. 나는 타인과 단절된 이 시간 속에서 남들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명명백백히 알 수 있는 나날들을 보냈다. 나는 요리를 했고, 영화와 책을 봤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여러 가지 도전을 했다. 분명히 이 모든 것은 내 삶의 자산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일뿐이었다고 일축하기가 젊음의 당사자로서 참 힘이 든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잎사귀는 활짝 펴야 제맛인 것을, 억지로 안으로 뒤틀려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 우린 아무리 몸을 움츠려도 감출 수 없는 푸르름을 품고도 가까이서 보면 충영이 든 앵두나무 잎처럼 상처투성이다. 조금 우울해질 때마다 간단히 해내던 기분전환이 이젠 어떤 시험을 치르는 것보다도 어려워졌다. 전에 알던 ‘그냥 당장 차려입고 나가서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기’란 정답이 아닌 다른 답을 찾아보려고 좁은 방 안에서 갖은 애를 써야만 했다. 코로나 시대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선 인적 드문 집 근처에서의 산책조차 두려웠고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너무 답답한 순간엔 죽든 살든 나갈 것이라며 일단 집 밖으로 뛰쳐 나갔다. 하지만 집 앞을 서성이는 것 외에 맘 편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 이내 귀가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외출도 운동이랍시고 몸이 뻐근하게 아파질 땐 아까의 배짱은 어디로 가고 혹시 그새 감염된 것은 아닌지만 온종일 생각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러 학교에 갔다 오는 날은 특히 최악이었다. 그게 아닌 걸 알아도 여전히 넓고 예전 모습 그대로인 학교에 작은 몸을 이끌고 들어가면, 꼭 나만 어딘가에 멈춰 있다가 온 것 같은 기분에 스스로 더 막막하고 못난 존재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우울로 점철된 시기는 참으로 길었지만, 그 시절을 헤아려보는 지금은 집 근처에서 나름의 산책도 하며, 그때의 우울을 추월해 겨우겨우 나의 길을 달리고 있다. 충영이 든 잎이 다 떨어지고 빈 가지만 남은 겨울의 앵두나무 앞에서 난 아주 작은 해결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있었으니, 이를테면, 이 세상의 어떤 존재가 그저 태연하게만 보이더라도 못내 다정하게 굴어야겠다는 생각 같은 것들 말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바쁘게 흘 러가는 일상 속에서 타인의 아픔을 알아채기란 절대 쉽지 않겠지만, 바쁨이 곧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고자 하는 나쁨이 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니 괴로운 이 시대, 우리는 다정한 마음을 내보여야만 한다. 내가 네게 다정한데 네가 그걸 모르면 되겠냐는 식의 억울함보다도 그런 마음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당신이 세상에 아주 홀로 남겨진 듯 추위에 떨게 될 일이 괴롭다. 그러니 매년 새로 돋아나는 잎마다 매년 같은 깊이의 마음을 쏟아야겠다. 올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여름은 성큼 다가올 텐데, 내 앞의 나무도 이번엔 창백하게 매달린 열매에 붉은 혈기를 나눌 수 있을까? 지금은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부디 결실을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단히 다정할 것이다.

지난 겨울에는 산책을 해도 딱히 화려한 볼거리가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봤다. 산책, 사실은 아주 평화로운 마음만으로 하기 힘든 일이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어쨌든 마음이 조금 답답할 때 산책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최근엔 코로나 이후 발생한 여러 상황이 우릴 걷게 했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우리는 각자의 고민을 안고 참 자주, 오래도 걸어왔었다. 그래서 바라본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코로나가 걷히고, 그 이후에도 우리가 여전히 걷고 있길 말이다. 걷다 보면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앞서 내가 본 앵두 나무의 병든 잎. 우리의 인생을 애써 들여다보려 할 때는 차마 투명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었던 만사의 것들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들 을 통해 바라보면 보인다. 우리의 현실이 생각보다 아팠다는 점에서 나아가 길 위의 우리가 마냥 혼자는 아니었다는 점까지 말이다. 코로나 이전 우리가 함께 걷던 때엔 각자의 고민에 갇혀 바로 곁의 사람도 보지 못했었다. 코로나 이후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은 우린 이제야말로 정말 혼자가 돼버린 것이라며 눈물짓는다. 하지만 이제 난 당신을 닮은 앵두 나무의 잎을 보며 나와 같은 나뭇가지에 달린 당신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산책할 것이다. 언젠가 우연히 스치게 될 당신에게 당신은 몰랐겠지만 우린 늘 같은 길 위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게, 활짝 펴야 할 청춘 속에서 초록색인 채로 시들지 않게.



조희수 

(사회대 문헌정보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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