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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13. 축제와 대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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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노동하면서 놀이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놀이를 흔히 심심풀이, 오락 혹은 노동의 고통에 대한 보상물 등의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곰곰이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따져보면 우리의 판단이 얼마나 피상적인가를 알 수 있다. 세계 모든 언어에는 놀이에 관한 고대어가 존재하고, 놀이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축제가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았다. 노동은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에서 비롯되었고, 노동은 결과물의 유용성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놀이를 움직이는 힘은 생존 또는 외적 유용성이 아니다. 
그릇이 음식과 술을 담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라면, 우리 조상은 청자를 빚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만을 생각했다면 월계관이 전부인 올림피아에 참가하여 42.195km를 달리지 않을 것이다. 피라미드, 타지마할, 앙코르 와트, 모아이 군상, 콜로세움 등도 도무지 유용성의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건축물이다. 왜 인간은 무용하기까지 보이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일까? 네덜란드 문화사학자인 하위징아(J. Huizinga 1872 - 1845)가 내린 결론은 놀이의 정신이 그런 행위를 가능하게 했다. 그는 이것을 근거로 “문명이 놀이 속에서, 그리고 놀이로서 생겨나고 또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하이징아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1938)에서 놀이의 특성을 ‘자발성’, ‘일상성에서 벗어난 행위’, ‘시간과 공간의 제약성’, ‘질서와 규칙의 창조와 준수’ 그리고 ‘경쟁’ 등에서 찾는다. 이러한 놀이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고 집약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바로 축제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에는 고유한 축제가 있으며, 매년 특정한 시기, 그것도 대부분 인간이 활동하기 가장 좋은 시기에 개최된다.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제례의식, 춤, 경기, 공연 등이다. 우리의 조상은 왜 태양이 가장 오랫동안 대지를 비추는 5월에 단오제를 열었을까? 문명이 생존의 차원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문화 속에서도 확인한다. 
경북대의 개교일은 1952년 5월 28일이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복현골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은 시대별로 차이가 있다. 1980년대까지 통상 개교기념이 있는 주간 전체가 축제 기간이었다. 1990년 이후 축제 기간이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축제의 명칭은 ‘복현제’, ‘복현축제’, ‘대동제’ 등 다양하다. 앞의 두 명칭은 1980년대까지 쓰였고, 1980년 중반 이후 대동제라는 명칭이 쓰이고 있다. 이러한 명칭 변경에는 1980년 중반이후 대학가를 휩쓸었던 민주화의 열풍이 있다. 명칭이 어떻게 되었던 경북대학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축제는 경북대만의 잔치가 아니라 대구시민 전체의 축제였다. 대학기록관의 자료에 따르면 제1회 개교기념일을 축하하는 잔치 날에 3천 명의 경북대 학생과 5만 명의 시민들이 복현골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경북대학의 제1회 개교기념일과 축제는 전쟁의 와중에도 성대하게 치러졌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1951년 전란을 피해 대구는 피란민으로 넘쳐났다. 한 외신기자가 당시의 향촌동 거리를 전 세계에 이렇게 타전했다. “폐허에서 바흐의 음악이 흐른다.”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니 1952년 경북대의 첫 축제의 열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아쉽게도 대학기록관에 남아있는 1950년대 축제와 관련된 자료는 전무하여 축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길은 없다. 다만 1951년의 개교기념식을 기념하는 축제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1960년대의 축제는 4.19 혁명으로 쟁취한 학생 자치기구인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대학축제는 체계적이고 다양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것은 군사정권의 대학정책이 70년대에 비해 덜 폭압적이었다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개교 10주년이 되는 1962년의 축제를 보자. 총학생회, 단대학생회 그리고 서클(동아리)이 주최가 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총학 주최의 ‘체육대회’, 문리대 주최의 ‘전국대학생학술토론대회’ 법대 주최의 ‘모의재판’, 농대 주최의 ‘농악연주’, 의대 주최의 ‘가든파티’ 사대 여학생회의 ‘마스게임’, 서클 주최의 각종 발표회 그리고 거의 모든 단대가 주최한 ‘등반대회’도 눈에 띈다. 개교 15주년이 되는 1967년부터 야간 축제가 허용되어 분위기를 한껏 고무시켰다. 대학 밖의 엄혹한 현실에도 축제 기간 캠퍼스는 일상성의 일탈을 허용하는 청춘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상성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제한된 축제의 시간마저 종신형 대통령을 꿈꾸던 통치자는 허용하지 않았다. 1972년 유신 선포와 교육부의 ‘학풍쇄신운동’으로 대학은 병영이 되었다. 총학생회는 해체되고, 군사직제를 차용한 학도호국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축제의 본질이랄 수 있는 일상성 벗어나기는 그들에게는 일소해야 할 퇴폐행위일 뿐이었다. 학도호국단 주체의 1978년 개교 32주년 기념 복현축제 팜플랫을 보자. 복현제 준비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정권이 어떻게 대학을 병영화했는지를 알 수 있다. 총학생회장은 사단장, 그리고 각 단대 회장은 연대장으로, 그리고 총장은 학도호국단장으로 표시하고 있다. 축제의 행사내용도 체육대회가 일색이고, 사격대회가 교내 사격장에서 열린다는 안내도 있다. 팜플랫 뒷 표지는 이렇게 되어있다. “유신속에 나라발전 면학속에 나의 발전”. 축제 역시 유신의 선전장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질식할 듯한 분위기 속에도 합창대회와 연극 공연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종신형 대통령을 꿈꾸던 독재자가 1970년 마지막 해 부하의 손에 암살되었다. 민주화의 열망을 처절히 배반한 독재자의 후예가 다시 권력을 장악한다. 신군부는 자신들의 권력에 최대 방해물인 대학을 억압하기 위해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 한다는 ‘졸업정원제’를 도입하여 학생들을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대학생이 늘어난 만큼 군부에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세력이 커져 갔다. 1985년 총학생회가 부활되었고, 복현축제는 복현대동제로 다시 태어났다. 축제기간 대학은 말 그대로 해방구가 되었다. 밤을 밝힌 주막거리에는 노래가 넘쳐 흘렀고, 술이 오른 학생들은 공동체와 실존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밤을 지샜다. 1980년의 축제에서 특징적인 것은 탈춤과 마당극 등 우리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축제를 풍성하게 했다는 것이다. 놀이와 축제가 문화의 계승과 창조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1980년대 축제에서 보여준 전통문화의 계승은 이후 학문의 영역에서 국학이 자리잡는 출발이 된다. 
1990년대 제도로서 민주주의가 불가역적인 것으로 정착되었다. 대학에서만 그리고 축제에서만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던 자유가 일상의 권리가 되었다. 축제는 더욱 풍성해졌고, 세련된 형태를 보여준다. 그런데 축제가 정치에 의해 훼손되었던 과거와 달리 자본에 의해 점령되는 경향을 강하게 보여준다. 대학의 축제는 대학 밖의 전문 기획사가 기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축제의 시작과 끝은 유명 인기가수의 공연으로 이루어진다. 또 기업들은 축제를 미래의 소비자를 잡기 위한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자발적 문화 창조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문화의 단순 소비자로 전락할 위험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럼에도 축제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시대를 역행해서 새로운 질서와 규칙을 만들려는 실험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노동할 뿐만 아니라 놀이하는 존재이고, 놀이하는 존재가 될 때 인간은 완전해질 수 있다. 내년의 축제를 손꼽아 기다린다.  


▲1978년 개교 32주년 기념 복현축제 팜플릿 표지


정낙림 교수
(인문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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