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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현메아리

잠시, 같이 걸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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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진 듯 비가 오는 날이나 수능을 하루 앞둔 날에도 한 시간씩 걸을 정도로,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친구가 나에게 “넌 왜 그렇게 산책에 집착하냐”며 물었다. 당시엔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와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산책을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는 주로 집 앞 공원을 걸었고, 대학에 입학해 이곳에 온 후로는 학교의 모든 곳을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산책을 하고 있다. 
각 계절마다 산책의 감정이 다르다. 매 순간마다, 떠오르는 기분과 생각 또한 다르다.
봄에 하는 산책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새 학기, 새 친구, 새싹 등 ‘새’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가는 계절인 봄은, 어딜 걸어도 설렘으로 가득 차있다. 3월엔 어린 잎과, 아직은 춥지만 조금씩 피려 하는 꽃이. 4월엔 길가를 뒤덮는 벚꽃이 산책을 풍성하게 채워준다. 한 친구가 봄은 개나리라고 얘기했는데, 그 덕에 이제는 봄에 산책할 때 개나리만 기다릴 것 같다. 
여름의 산책은 느리다. 새벽을 포함한 어느 시간대에 걸어도 사라지지 않는 더움과 습함은,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 걷는 산책을 이내 우울하게도 한다. 장마철에 하는 산책이 오히려 좋다. 시원한 바람과 어두운 공기, 우산 아래 가만히 서서 나를 제외한 이 지구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느끼고, 바라보는 게 내 오랜 취미이다. 이상하리만치 일찍 시작되는 여름, 몇 차례의 태풍과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 여름, 시원한 커피와 함께 산책하는 여름은 느리게만 흘러간다.
내게 가을은 가장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아침에 길을 나섰을 때, 입김이 불어지는 순간 가을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정문을 지나면, 올해도 이제 끝나간다며 감나무가 감을 내놓고, 센트럴 파크에서는 밤에 놀이를 나온 사람들이 더 이상 돗자리를 펼치지 않는다. 끝이 아닌, 끝을 향해 달려가는 계절이라는 느낌이 드는 가을은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다. 나를 둘러싼 관계들이 우연일지 필연일지 고민하게 되고, 이 관계를 맺음으로써 만나지 못했던, 어쩌면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얕은 관계에는 가짜 웃음을, 깊은 관계에는 진짜 눈물을 보여주는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장 지치는 계절인 가을의 산책도 이제 끝나간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겨울의 산책은 공허하다. 한 해가 다 가버렸다는 아쉬움과, 내년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고민하며 산책하는 일이 잦다. 눈 덮인 세상을 방 창문을 열고 바라보는 것과,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인 들판을 걷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긴 하지만, 더 이상은 20XX년 일기에 내 흔적을 남길 수 없다는, 나이를 말할 때도 숫자를 하나 늘려야 한다는 슬픔도 크다. 볼이 에일 듯한 추위, 패딩을 입어도 들어오는 찬 바람을 느끼며 걷는 겨울 산책은 아쉬움으로 가득하기만 하다. 
산책하며 내게 말을 거는 내 오랜 습관을 계속 갖고 살아가야겠다. 이 습관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좋아해야겠다. 눈 내린 학교를 눈사람을 만들며 걸어봐야겠다. 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오늘도 학교 한 바퀴 산책하며 내게 말을 걸어봐야겠다.


조혜민(IT대 전자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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