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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10. 1967년, 그 때 그 시절의 물리화학교실 그리고 2021년의 대학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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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이나 교실에서의 일지는 공간 안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출입기록, 공간의 청소, 정비 상황 등을 기록하여 공간의 현황을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점검, 정비하는데 바탕이 된다. 개인으로 보자면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보며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 감정 등을 기록하는 일기와 같은 것이다.
경북대학교 대학기록관에도 몇몇의 일지가 보존되어있다. 그 중에서 물리화학교실일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물리화학교실일지를 살펴보니, 당시 연구실의 상황, 학교 내에서 발생한 사건, 연구실의 환경, 학사일정, 연구원들의 사소한 일정 등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간략하고 짧은 문장으로 작성된 일지다보니 자세한 내막을 알기는 어려웠다. 기록된 전반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추측하여 읽다 보니 “물리화학교실은 현 시점에서는 어떤 장소를 의미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경북대학교에서는 물리화학교실이라는 명칭을 찾을 수가 없다. 추측하건데 1967년 당시의 경북대학교 물리화학교실은 지금의 물리화학연구실이 아닐까 한다.
1967년의 물리화학교실일지에는 1967년 당시 경북대학교의 행사들이 몇몇 기록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1967년 5월 26일 금요일 개교기념행사 관계로 수업 전폐”라는 기록이다. 아마 1967년의 경북대학교에서는 개교기념행사를 거행하여, 경북대학교의 개교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장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경북대학교는 개교기념행사를 진행하는 대신, 개교기념일을 휴무일로 지정하여 학생과 교직원이 휴업하는 날로 받아들여지는데, 다시금 개교기념행사를 진행하여 경북대학교의 개교를 축하하고, 경북대학교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1967년 당시 물리화학교실은 아마도 오늘날의 물리화학연구실로 주로 석사, 박사과정의 대학원생들이 교수와 함께 연구하는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학사를 졸업하는 실원도 있었으나, 이것은 오늘날의 학부연구생과 같은 역할이었을 것이다(1967년 2월 24일 토요일 전영주(석사), 황금소(학사) 졸업). 당시의 물리화학교실은 오늘날의 어느 연구실과 마찬가지로 대학원생들이 밤을 새워가며 연구에 매진했던 것으로 보인다(1967년 5월 25일 목요일 황선생님 연구실에서 취침; 1967년 5월 26일 금요일 황선생님 연구실에서 취침). 오늘날에도 연구실에서 잠을 청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하고 불편한 일인데,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이었을 1967년에 연구실에서 취침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금보다 더 높은 학구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1967년 7월에는 경북대학교 내에서 진행된 학생들의 데모로 수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시험 진행이 어려웠으며, 방학을 일찍이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1967년 7월 5일 수요일 학생들 데모함; 1967년 7월 6일 목요일 시험 시작(데모 관계로 애로); 1967년 7월 6일 목요일 방학 시작). 당시 상황을 기사에서 찾아보니 1967년 7월 1일 제6대 대통령 박정희 취임이후 1967년 7월 3일 서울에서는 대학생들이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하고, 기말 시험을 거부하였다. 이후 7월 4일에는 연세대, 고려대생 등 5천명의 대학생이 시위를 벌였고, 전국 20여개 대학이 시위로 인해 조기 방학을 했다고 한다. 7월 5일에는 부산대, 경북대, 성균관대생 시위를 진행하였다는 보도자료가 있다. 이 데모는 1967년 6월 8일 진행된 제7대 국회의원 선거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인데, 경북대학교의 학생들은 성실한 학구열뿐만 아니라, 부정을 규탄하고 올바름을 향하는 긍지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67년의 물리화학교실은 상, 하수도 사정이 열악하였던 것 같다. 1967년 1월 21일 토요일 하수도고장(要(요) 수리) 아마, 1967년 1월 21일 즈음에는 경북대학교는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추위가 계속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날씨에 열악한 하수도가 얼어터져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후로 며칠 뒤 1967년 1월 25일 수요일 午前(오전)중에 수돗물이 나오지 않음. 1967년 1월 26일 목요일 PM 1시경 수돗물이 중단됨.
“수돗물이 나오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수도시설이 날씨가 추워 얼어터진 것일까? 아니면 수돗물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 수돗물 공급을 중단해버렸던 것일까? 이어 한동안은 수돗물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1967년 6월 29일 다시 전기와 수도 사정에 관한 기록이 발견된다(1967년 6월 29일 목요일 전기, 수도 사정이 나빠서 실험 계속치 못함.). 이 또한 자세한 상황의 설명은 없어 정확히 추측하긴 어렵다. 다만, 1967년의 경북대학교 물리화학교실은 상, 하수도 사정이 열악하여 수시로 전기와 수도 공급이 중단되었고, 그로 인해 학생들은 실험을 진행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연구와 학업에 매진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1967년의 물리화학교실일지를 보면서 당시의 물리화학교실의 분위기와 환경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보존된 일지가 없었다면 간접적인 체험은 고사하고 당시의 환경과 상황을 생각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였을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경북대학교의 구성원은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듯 바뀌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 누구도 당시의 상황과 환경을 온전히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경북대학교는 사람이 아닌 사물과 같은 것이기에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지나간 시간을 기억해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이 기록된 일지나 기록물들이 남아 있어야 만이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고 추론할 수 있다.
경북대학교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과 다양한 기록들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경북대학교 대학기록관이다. 경북대학교의 역사를 반추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늘 살펴본 1967년의 경북대학교 물리화학교실일지는 당시 연구실의 상황과 학교의 상황을 간략하지만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소한 자료들이 잘 수집되고 보존된다면, 경북대학교를 거쳐 간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경북대학교의 역사를 기록하고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경북대학교 구성원들이 대학기록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많은 자료를 기증하여 더욱 풍부한 기록이 모여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물리화학교실 일지 표지


▲물리화학교실 일지 첫 페이지

박현우
(대학원 과학교육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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