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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인생은 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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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사람들이 꼭 같이 바라는 것은 ‘행복’이다. 하지만 러셀이 ‘행복의 정복’에서 말했듯이 ‘행복’ 그 자체는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즉, “지금부터 나는 행복해야지.”라고 굳게 결심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의 결과물, 즉 인생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생은 정(靜)적인 상태(狀態)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 즉 프로세스(process)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변해가듯이 우리네 인생도 변해가고 있다. 변하는 것을 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제대로 보는 것이다. 변하는 것을 고정된 것으로 보는 것은 인식의 오류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고정된 그 무엇’에서 찾는다면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잘못된 방법으로 얻는 답은 결국 “알 수 없어요.”라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인생의 의미를 누가 아나?”라고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고정된 그 무엇에서 해답을 찾는 우(愚)를 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이 프로세스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째, ‘현재’를 즐겨야 한다. 현재가 괴롭다면 그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전환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취업이 어려운 상태에서 공부하는 것이 괴로운가? 학창시절 공부할 때가 생의 황금기였음은 취직을 해보면 안다. 사랑 때문에, 이별 때문에 괴로운가? 걱정하지 마라. 버스가 떠나면 택시가 온다. 실직해서 괴로운가? 오히려 더 좋은 직장을 얻을 기회가 아닌가? 다윗 왕과 솔로몬의 반지 이야기에 나오는 “This, too, shall pass!(= 이 또한 지나가리라!)”도 슬픔과 기쁨이 짧은 한순간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둘째,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매일 매일을 새롭게 맞이하라. 여기서 ‘새롭게’는 ‘변화된’이라는 뜻이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이 같은 것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어제 본 나무, 어제 본 꽃, 어제 만난 사람이 오늘도 꼭 같다고 보는가? 모든 것은 변화된 새것이니, 새것을 보는데 어찌 기쁘고 반갑지 않을 수 있는가? 앞에 있는 대상이 내일이면 변해버릴 것인데 어찌 오늘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렇듯 일신우일신하는 생에는 권태가 없다. 다시 말해 프로세스로 인식하는 생에는 모든 것이 새롭다. 새로운 것들은 심장을 뛰게 하고, 뛰는 심장은 행복을 준다.
셋째,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물질적 수입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어제보다 더 많은 정신적 경험, 정신적 자산을 얻지 않았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자산을 헤아리지 못하면 생이 서글퍼진다. 물질만 카운트하지 말길 바란다. 그래서 어제보다 좀 더 나 자신을 상승시키는 것, 이것을 니체 철학으로 바꿔 표현하면, 위버멘쉬(bermensch)가 되는 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되는 것이다. ‘위버멘쉬’는 자신의 힘 또는 능력을 최대로 고양시켰을 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고, 인간존재의 의미를 충실하게 구현하면서 주인의식을 갖춘 삶을 사는 경지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위버멘쉬라는 이상에 다가가도록 노력하는 삶이 건강한 삶이다. 50대, 60대 사람들, 심지어는 40대 사람 중에서도 “내 전성기는 지나갔다. 다 살았다.”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걸 종종 본다. “아, 생을 잘못 보고 계시는군요.”라고 속으로 되뇐다. 위버멘쉬를 추구하는 삶에서 전성기는 ‘죽기 직전’이다.
이처럼 생이 프로세스이고 끊임없이 변한다면, 그래서 변치 않는 우정, 사랑, 신의, 정직 등과 같은 사회 내의 기본 미덕은 사라지고,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인간들이 판을 치는 황량한 세상이 되고 말면 어떡할 것인가? 행복을 추구하고 정신적 자산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사회 내의 기본 미덕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에 언급된 것들과 같은 미덕을 갖추지 않고는 타인으로부터 존경받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자산을 늘리며 행복지수를 높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정신적 자산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은 어떡하는가? 다시 니체 철학으로 돌아가면 그런 이들은 존재의 의미를 구현하는 것을 포기한 병리적 ‘말종 인간(der letzte Mensch, the last man)’이다. 사람답고자 한다면 사회 내의 기본 미덕들을 지켜야만 한다. 인생은 프로세스다. 오늘을 즐기되, 어제보다 자신을 더 상승시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오늘이 되도록 힘쓰자! 
<이 글을 쓰는데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도움을 준 교우 박해식 변호사, 류종환 원장, 권택성 및 김헌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노주 교수
(인문대 영어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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