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5 (목)

  • 맑음동두천 18.3℃
  • 구름조금강릉 18.1℃
  • 구름조금서울 17.7℃
  • 맑음대전 19.0℃
  • 구름많음대구 17.7℃
  • 흐림울산 14.8℃
  • 구름조금광주 18.9℃
  • 흐림부산 15.1℃
  • 맑음고창 18.5℃
  • 구름많음제주 16.2℃
  • 구름조금강화 12.4℃
  • 맑음보은 17.2℃
  • 맑음금산 18.4℃
  • 구름많음강진군 16.9℃
  • 흐림경주시 18.2℃
  • 흐림거제 16.1℃
기상청 제공

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6. 김대중과 경북대

URL복사
2020년 말 「이웃사촌」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국가정보기관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한 제1야당 총재와 그를 감시하는 정보 요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요즘과 같은 상황이라면 ‘영화 속의 가택연금이 실제로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법도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 불법 가택연금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독재정권 혹은 군사정권 아래서 사법적 절차와 재판의 과정 없이, 정치적 반대자나 사회적 지도자의 사회활동을 금지하기 위해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강제력을 동원해 가택에 감금하는 경우는 흔했다. 
가택연금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중들로부터 정치지도자를 고립시키기 위한 정치공작의 일종으로, 그 자체가 바로 독재정권의 정치적 억압의 상징이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에서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이 다시 무기한 가택연금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독재정권 하에서 시민의 정치적 권리는 공공연하게 침해를 당했다. 그래서 민주화를 요구하지 않았던가.
「이웃사촌」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이다. 당시 실제로 가택연금을 당했고, 영화의 결말처럼 나중에 대통령이 된 인물은 김영삼과 김대중이다. 물론 실화를 다룬 영화는 아니고 그것을 모티브로 삼았을 뿐이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김대중이다. 그는 1997년 12월 18일 대통령 선거에서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정권교체였다.
서두에서 영화 「이웃사촌」을 꺼낸 것은 가택연금이라는 정치적 억압이나 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영화의 모티브가 된 김대중과 우리 학교의 인연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김대중과 경북대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그가 우리나라 대통령이었고, 우리 학교가 국립대이니 교육적 차원에서 뭔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기 쉽다. 아니면 당시 우리 학교도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있었으니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인연이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인연은 없다. 어쩌면 우리 학교와 특별한 인연이 없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그가 우리 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나 그 이후에도 우리 학교를 방문했거나 특별히 언급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 학교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우리 학교 기록관에 그의 친필 휘호 액자가 한 점 있다. 휘호의 내용은 5행으로 되어 있다. 맨 윗줄에 한자로 쓴 큰 글씨로 실사구시(實事求是)가, 둘째 줄에는 한자로 쓴 축 발전이, 셋째 줄에는 1997년 12월 5일, 넷째 줄에는 한글로 쓴 새정치국민회의가,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 줄에는 한자로 쓴 총재 김대중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흔히 휘호는 서예 붓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휘호는 서예 붓이 아니라 붓펜으로 쓴 듯하다. 아마 방명록이었을 것이다.
우리 학교 기록관에 보관된 이 친필 휘호는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우리 학교를 직접 방문해 남긴 것이다. 그는 우리 학교에 왜 왔을까? 왜 하필 ‘축 발전’이라는 휘호를 남겼을까?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우리 학교를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두 차례 모두 1997년이었다. 그가 세 번째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그는 1987년 대통령 선거,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연이어 출마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 패배한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1995년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여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세 번째의 대통령 도전이었다. 
그해 9월에 우리 학교 농대 시험장을 찾아 ‘슈퍼 옥수수’를 개발한 김순권 교수팀과 북한 식량문제에 대한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다시 12월 5일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식선거운동 이후 첫 지방유세로 대구를 방문하면서 우리 학교에 들렀다. 도서관을 방문해 휘호를 남기고 취업준비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휘호의 ‘축 발전’은 도서관의 발전을 기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해 우리 학교 중앙도서관의 장서가 100만 권을 달성하였다는 사실을 듣고 더 발전하라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어쩌면 경북대의 발전을 기원했을지도 모른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김대중이 평소 즐겨 쓴 휘호의 하나이다. 실사구시는 실질적인 것에 나아가 옳음을 구한다는 의미다. 공리공론이 아니라 실생활과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김대중은 대통령 시절 특정 이념에 얽매여 정책을 세우거나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원칙과 철학은 분명히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을 특정한 이념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정의와 같은 자신의 원칙과 철학을 성공적으로 관철해 나가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정치 역정은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일관되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정치적 성향이 다른 자민련의 김종필 의원과 DJP연대를 성사시켰고, 임기 중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IMF 외환위기도 극복하였다. 또 한반도 평화와 인권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대학기록관을 방문해 직접 친필 휘호를 한 번 감상해 보길 추천한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확고한 자기 철학을 가졌지만,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유연한 정치를 펼친 분이다. 여러분들도 좋은 기운을 받아 확고한 삶의 철학을 가지고 유연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게 될지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확고한 삶의 철학과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유연한 대처가 아닌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

최병덕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