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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우리가 몰랐던 경북대 이야기

2. 경북대 합격증과 전시학생증, 그 속에 담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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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합격이다. 야, 학교 가자.”

2월이면 고등학생 티가 폴폴 나는 합격생들과 학교 좀 아는 재학생들이 캠퍼스 곳곳을 다니며 웃음소리가 높은 때. 3월이면 신입생들이 강의실에서, 만개하는 벚꽃길 아래서 왁자지끌 자유를 만끽하는 때. 이 당연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았던 2020년. 노멀이 달라졌다고 한다. 대학도 강의실보다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더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다. 이제 캠퍼스는 상주나 대구 그 어느 땅에만 있지 않고 어디에나 있다. 학생들이 있는 곳이 경북대학교가 되었다.

대학에 들어오면 누구나 받는 합격증과 학생증. 이 두 개의 증명서는 고등학교 시절의 노력도 담고 있지만, 사실 내 삶의 미래를 담을 초대장이라고 보는 게 훨씬 정확하다. 누구는 경북대학교 합격증을 받고 환호했을 테고, 누구는 조금 아쉬워했을지도 모른다. 누군 경북대학교 학생증을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 도서관을 들락이면서 자부심을 차곡차곡 담을 테고 누군 그냥 처박아둘지도 모른다. 어떻든 우리들은 합격증을 받았고 학생증을 손에 쥐게 되었다. 여기에 무엇을 담을까.

합격증도 시대와 같이 흘러왔다. 한자가 빼곡한 합격증에서부터 도트프린트 활자가 찍힌 합격증, 그리고 종이증서가 필요 없어진 합격통지까지 다양하다. 경북 대학교 기록관에는 몇 장의 합격통지서가 있다. 그 중 1961학년도 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 합격통지서를 보자. 이 합격통지서를 받아든 정정승은 기분이 어땠을까. “야호” 아니었을까. 1961년에 대학 입학은 참 어려웠다. 1960년 전국 대학생(전문대 포함)이 10만 명이었다. 국공립대학 학생은 3만 명 즈음 됐다. 해방 무렵 만 6천 명에 비해 엄청 늘어났지만 치솟는 교육열에 비해 입시관문은 지독하게 좁았다. 1961년 대학입시 경쟁률은 전국 평균 5:1 정도였고 10:1까지 치솟는 학과도 있었다. 이 합격통지서를 발행한 김상열 총장은 경북대학교 두 번째 총장이다. 1960년 5월부터 1961년 9월까지 총장을 했었기에, 김상열 총장 명의의 합격증은 1961년 단 한 해 발행되었다. “입학식은 3월 31일 오전 10시에 본대학교에서 거행”한다고 알린 건 4월 학기제였기 때문이다. 해방 후 학기 시작 시점은 여러 번 바뀌었다. 1962년 3월 개학이 안착되기 전까지 9월, 4월, 6 월, 게다가 3월설까지……. 해방되고 전쟁 터지고 교과서는 없고 강의실도 덜 지어지다 보니 매년 개학시기가 들쭉날쭉했다. 워낙 혼란스러워 신문은 도대체 이 나라의 개학은 언제인가 한탄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1961년 합격증을 손에 쥐었던 정정승님은 이후 본교 영문과 교수가 되었다.

학생증 또한 곡절이 많았다. 지금이야 학생증이 핸드폰 속에 쏙 들어갔지만, 그 전에는 허술한 종이 학생증이라 유효기간이 1년인 학생증도 있었고, 세월이 한참 흘러 은행칩을 내장한 플라스틱 학생증도 있었다. 대학생이 귀할 때, 학생증 가격이 밥값, 술값은 넉넉히 됐다. 학생증 맡기고 술을 외상으로 마시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때는 가짜 학생증도 기승을 부렸다. 학생증의 힘이 가장 셀 때, 그리고 가짜 학생증이 제일 골칫거리가 된 때는 전쟁 중이었다. 1953년 발행된 ‘전시 학생증’. 이 학생증의 주인공은 경북대학 문리과대학 철학과 손원학. 이 학생증이야말로 목숨을 벌어주는 비싼 놈이었다. 1952년에 국방부와 문교부가 합의해 발행하기 시작한 전시학생증은 대학생들이 전선(戰線)에 나가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도록 허용하는 일종의 징병 유예증이었다. 그래서 손원학의 전시학생증에는 사령부 검열, 제2국민병일련번호, 배속장교날인 같은 칸이 있는 것이다. 학생증 뒷면에는 ‘경북대학교 총장 고병간’이라는 활자가 찍혀 있다. 1952년 5월에 발행된 손원학의 전시학생증에는 없는 활자이다. 왜 그런고 하니 경북대 초대 총장 고병간이 정식 발령 받은 시기는 1952년 9월이기 때문이다. 전선의 군인, 이 어려운 일을 피하게 해 주는 학생증이다 보니 가짜가 등장했었다. 1953년 휴전이 되고, 12월에 정부는 전시학생증 폐지를 결정했다. 

납작한 학생증을 통통하게 살찌우는 건, 이제부터 경북대학교 우리들의 몫이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진리와 긍지를 수북수북 담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도와 주고, 학생들이 서로 함께 학문과 삶을 가꾸는 일을 시작해야 할 3월이다. 경북대학교에 발 디딘 모든 분들, 축하합니다. 그리고 경북대학교 학생증을 평생 가슴에 자부심으로 간직하기를…


이경숙 연구원 

(영남문화연구원)



▲정정승 동문 합격통지서



손원학 동문 전시학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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