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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획

2020년 KNU 현장실습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 경험은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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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인재개발원에서는 학생들이 재학 중 일정 기간 동안 기업과 기관에서 현장실습(근무)을 하고 학점을 인정받는 현장실습교육과정 사업을 운영한다. 현장실습을 통해 학생들은 졸업 전 자신의 진로를 먼저 체험해보기도 하고, 관심은 있었지만 도전하지 못했던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어 보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학생들이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2020년 KNU 현장실습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자들의 현장실습은 어땠을까?●



최우수상) 현실과 이상 그 언저리에서 - 이현정(생환대 축산 16)


24살의 목표는 내가 살아갈 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동물원 사육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제게 동물은 사랑하고 돌보고 제가 희생하여 편하게 해주고 싶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동물을 훈련하는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사육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많고 동물원은 티오가 잘 나지 않으며 적은 연봉에 동물원 존폐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라 사육사는 어려운 길이었고 그래서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는 없다고, 취미로만 동물을 사랑하자는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사육사가 된다는 것은 제 이상일뿐이었습니다. 반대로 보다 취업할 수 있는 직업군이 다양하고 높은 연봉을 받을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인간과 축산은 뗄 수 없는 관계라 환경을 덜 파괴하며 만드는 인조 고기, 배양육 등 미래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축산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동물을 가축으로 대하고 인간에게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좋은 고기를 얻을 수 있게 공부하는 곳이라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전공에 애정이 생겼고 동물복지농장에 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연구소나 농장컨설팅회사에 취직을 목표로 마음먹고 공부를 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말/특수동물학과로 부전공을 하고 있는, 제 이상인 사육사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한 애매한 마음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경북대학교의 현장실습시스템을 알게 되었고 백문이불여일견 실무경험을 해보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3학년 2학기 겨울방학엔 동물사료에 들어가는 첨가제의 오염검사를 하면서 연구실 진바이오텍에서 실습했고 4학년 1학기 여름방학엔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실습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아쿠아리움에 취직한 선배님께 연락해 롯데 아쿠아리움에서 실습할 수 있게 부탁드렸고 그 결과 저는 월급과 숙소 없이 오직 열정으로 실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정말 손바닥만 한 고시원에서 잠도 자보고 저녁값을 아끼기 위해 컵라면 하나만 먹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가슴 뛰는 일을 해보니 모든 열악한 상황은 신기하게도 저와 상관이 없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도심 속 바다 롯데 아쿠아리움입니다!]


▲사진제공: 이현정(생환대 축산 16)


실습이 확정되고 경찰서에 가서 필수서류인 성범죄 경력 및 아동학대 관련 범죄 전력 조회신청서를 떼었습니다. 서류를 받으며 경찰분께서 실습 갈 수 있겠네요. 축하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실습 가는 게 실감 났었던 것 같습니다.

출근 당일 오전에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하고 교육 개체들이니 함부로 만지지 말고 실습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교육을 받고 오후에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일하게 된 곳은 훔볼트 펭귄 33마리와 작은발톱수달 6마리가 있는 펭귄/수달사였습니다. 직접적으로 개체들을 맞이했을 때는 기쁨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온종일 동물들과 함께 있는 것은 좋지만 저의 실수로 개체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고 회사에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첫날 다짐했습니다.

나는 실습생일 뿐이지만 여긴 선배님들의 소중한 직장이니 실수하지 말자!’.

처음 하게 된 일은 펭귄 부화실 청소였습니다. 펭귄은 환경이 나쁘면 발이 썩는 범블풋이라는 피부병에 걸리기 쉬워 특히나 청소에 신경 써야 했습니다. 염소를 소량 섞은 물을 시설물과 둥지에 뿌리고 스펀지로 바닥 깔판을 청소하고 물을 뿌린 뒤 펭귄이 수영하는 수중부에 해수를 다시 가득 채워놓으면 청소가 끝이 납니다. 바닥 깔판이나 둥지를 청소하고 있으면 펭귄이 한 번씩 머리나 팔을 쪼곤 했습니다. 첫날에는 당했지만, 나중에는 쪼이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청소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생각보다 아팠습니다) 청소가 끝난 뒤에는 펭귄의 먹이인 양미리와 열빙어를 씻으며 상태를 확인하고 그날의 영양제를 추가하며 먹이 준비를 합니다. 선배님이 급이하는 동안 옆에서 펭귄의 체중, 누가 어떤 생선을 몇 마리 먹는지 표시하고 털갈이하는 펭귄의 사진을 찍는 등 보조했습니다. 매일 섭이의욕을 체크했는데 제가 갔을 때는 펭귄의 털갈이 시즌이라 섭이의욕이 점점 떨어질 때였습니다. 이유로는 펭귄은 털갈이를 하기 전 몸에 영양분을 축적하기 위해 많이 먹지만 정작 털갈이를 시작하고 나서는 스트레스로 인해 섭이량이 줄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처음 알게 되는 지식들이 쌓여갈수록 일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수달사에서는 수달의 정형 행동을 방지할 행동 풍부화 장난감을 만들었습니다. 첫째. 행동 풍부화가 이루어지는 장난감인지, 둘째. 개체가 삼키거나 사용하며 다칠 가능성이 있는지, 셋째. 재료가 물에서 부서지거나 부식되지 않는지 등 꼼꼼하게 안정성, 용도, 재료의 재질 등을 고려하여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물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 마감처리를 꼼꼼하게 해야 했고 직접 만든 장난감을 소독하고 수조에 넣어주니 너무나 좋아하는 수달들을 보고 뿌듯하고 개체들에게 도움이 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펭귄/수달사에서 2주를 보낸 뒤 벨루가/바다사자사에 가서는 주로 먹이 준비를 중점으로 했습니다. 먹이 준비실에서 참물범 6마리, 물개 3마리, 바다사자 3마리의 먹이를 차례대로 준비하고 선배님들께 드리면 첫 번째 할 일이 끝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관람객석에 서서 플래시를 터트리는 손님이 있으면 주의를 주고 바다사자의 체중을 기록했는데 개체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훈련을 하는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 멋있고 존경스러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기에 서고 싶다.’라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었고, 매일 같이 좋은 자극을 받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가장 잘했던 실습생]

경북대학교 실습생은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제 이름을 모르는 직원분들께서는 저를 경북대 실습생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저는 제가 경북대의 얼굴이고 제 행동이 경북대학교를 대표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시키는 일에만 연연하지 않고 도와드릴 일은 없는지 내가 시간이 남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항상 생각하고 솔선수범해서 일을 도와드렸습니다. 같이 실습했던 대경대학교 실습생들도 저는 언니만큼은 열심히 못 할 것 같아요.”, “누나가 있어서 든든해요.”, ”너랑 있으면 같이 열심히 하게 돼서 좋아.” 등 제가 열심히 하는 것을 알아주고 같이 노력해주었습니다. 선배님들 사이에서 제 별명은 실습생 리더’, ‘에이스였습니다.

한가지 기억나는 일은 실습 중에 학과장님께서 방문지도자로 오셨는데 아쿠아리움 대표님과 자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표님께서 경북대학교를 좋게 봐주시고 저희 학과장님께 경북대학교와 정식으로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맺고 정기적으로 실습생을 받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기회가 학교가 대기업과 꾸준히 교류할 수 있고 저와 같이 동물사육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은 너무 좋은 곳인 걸 알기에 기뻤습니다. 실습지에서 좋게 봐주시고 경북대학교와 MOU 체결을 맺고 싶다고 하니 제가 열심히 일 한 것이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작년 연구실 실습 때도 줄곧 들었던 말이지만 현정씨 좀 쉬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적성에 맞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정말 쉬지 않아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배우는 게 즐겁고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웠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어딜가나 힘들고 어려울 거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힘든 게 낫지 않을까?’ 저 스스로가 진심으로 배움을 갈구하고 성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좋았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살면서 저의 열정을 처음 보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요령 부리지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항상 귀를 열고 선배님들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담았습니다. 그 결과 선배님들께서 역대 실습생 중 가장 열심히 잘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동물원 동물들이 불쌍해?]


▲사진제공: 이현정(생환대 축산 16)


2018년 대전동물원 오월드의 퓨마 사건을 아십니까? 저는 대전사람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대전 오월드에 추억이 있었고 사건 당일에도 그곳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또한 사육사를 꿈꾸던 학생으로서 그 누구보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와 눈을 마주쳤던 퓨마가 사살된 소식을 들었을 때 분노했고 저는 동물원이 꼭 있어야 할까? 사육사라는 직업은 어쩌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 아닐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질감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습을 하며 선배님들과 많은 얘기를 나눠보고 직접 경험하며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게 됐습니다.

롯데 아쿠아리움에는 21년도에 바다로 방생할 벨루가, 벨라가 있습니다. 작년 아쿠아리움에서 벨루가 두 마리가 폐사한 기사를 다들 접해보셨을 텐데 처음에 퓨마 사건을 겪고 벨루가의 기사와 뉴스를 접하면서 아쿠아리움에서 얼마나 관리를 못 하면 개체가 폐사하나?’, ‘역시 동물원 동물들은 불쌍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일해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벨루가는 하루 다섯 번 등 푸른 생선, 흰 살 생선을 혼합 급여해 체계적으로 개체에게 영양소를 맞춘 먹이를 먹습니다. 1타임에는 가장 적은 양, 5타임에는 가장 많은 양을 먹고 있습니다. 이유는 사람도 아침에 밥을 과하게 먹으면 탈이 일어나듯이 벨루가도 공복 시간이 길었던 1타임에는 소화기관의 안정을 위해 가장 적게 급이하고, 2타임, 3타임 점점 양을 늘려 공복 시간이 가장 길어질 5타임에는 가장 많은 먹이를 급이합니다. 개체를 위해 아쿠아리움에서는 직접 생선을 손질하고 가장 최상의 상태의 생선만 사용합니다. 수분 보충을 위한 젤라틴과 영양제도 매일 준비합니다. 아쿠아리움의 모든 개체들을 위해 아쿠아 리스트와 수의사가 매일매일 건강을 점검하고 정형행동을 방지하는 행동 풍부화를 해주고 매주 해수, 담수의 용존산소량, pH, 염도, 대장균 수치 등 전문기기를 이용하여 수질을 점검합니다. 이처럼 모든 아쿠아리움 직원들은 세심한 것 하나하나 모두 해양생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사랑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최선을 다해 돌보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개체들을 돌보는 그들을 보며 적어도 제가 본 동물들은 불쌍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동물원이 사라질 가능성은 가까운 미래에는 적고 없어진다고 해도 동물원에서 번식하고 태어난 동물들은 야생성이 부족해 쉽게 자연으로 되돌려 보낼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뭘까?’ 생각해보니 주어진 환경에서 혹은 주어진 환경 이상으로 정성으로 사랑으로 그들이 있는 곳에서 돌봐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들의 환경을 책임지고 끝까지 함께하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야]

제가 축산학과로서 준비하던 자격증은 컴퓨터활용자격증, 토익, 축산기사였다면 지금은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 동물보건사, 그 외 민간자격증들입니다. 이미 취득한 축산기사 자격증을 제외하면 제가 이제 공부할 방향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저는 4학년 2학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겁고 공부하는 제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실습은 4주뿐이었지만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을 선물해줬습니다. 너무나 막막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갈등의 연속이었던 제 학교생활 중 이렇게 머리가 맑고 뭘 하기 위해 의지가 넘치는 건 처음입니다. 저는 이제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경북대학교 현장실습을 후배들에게 소개해 후배들에게도 발전을 고무시킬 수 있는 기회를 알려 줄 것입니다.

장마 기간 때 빗속을 뚫고 상주에서 서울까지 와주셔서 기 살려주고 가신 축산학과 학과장 김은중 교수님께 너무나 감사드리고 저의 실습을 위해 회사에 어필하고 도와준 실크로드 13학번 임규성 선배님께 감사합니다. 실습 기간 중 같이 의지하며 열심히 으쌰으쌰 해준 대경대학교 동물조련이벤트학과 동생들, 친구들한테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장실습이란 프로그램으로 실무경험도 쌓고 학점도 부여해줘 4학년 2학기 때 보다 저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경북대학교 현장실습시스템에 너무 감사합니다. 참 감사했던 4주를 보냈습니다.



우수상) 내가 가는 곳으로 길이 생긴다. - 김효선(IT대 전자 16)


나의 전공은 전자공학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2020 하계 현장실습에서 나는 전자공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디자인·마케팅 분야에서 근무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두었다. 조금은 특이한 이 경험을 진로를 고민하는 많은 학생에게 소개해주고 싶다.



▲사진제공: 김효선(IT대 전자 16)


[방황하던 내게 다가온 기회] 

고등학교 때 수학과 물리를 좋아해서, 또 취업이 잘 된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전자공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입학 후, 해를 거듭할수록 나의 앞날은 의심으로 가득 찰 뿐이었다. 공과대학 학생들이 취업을 무난하게 하는 건 사실이었으나 당연히 우수한학생, 적어도 평범하게’, ‘어느 정도는학습하는 학생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나는 우수한학생은커녕 수업조차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설명을 한 번에 알아듣지도 못하는 데다가 넉넉하지 않은 경제 사정으로 저녁도, 주말도 없이 아르바이트하느라 다른 학생들과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나의 모습을 비관하며 전과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전과도 학점이 좋아야 한다. 이제 와서 다른 분야로 가기에는 늦었다고만 생각했다.

입학 직후로 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기소개서에 쓸만한 활동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뭐라도 해보고자 3학년 때 친구가 소개해 준 현장실습 설명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지원해보았으나 면접 후에 죄다 불합격하기 일쑤였다. 사실은 오히려 잘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합격하더라도 기업에서 1인분을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전공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나도 전자과 학생이니까.’, ‘전공은 살려야 하니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관련 직종에 지원했었다.

그렇게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어느새 마지막 학기가 다가왔다. 여전히 진로는 고민 중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를뿐더러 무엇보다 이 전공을 이제부터라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서 살려야 하는지, 그냥 깨끗하게 포기해야 하는지부터 고민이었다. 포기하기에는 4년이라는 시간과 그동안 든 돈이 너무나 아까웠으니까. 그렇지만 이번에는 용기 있게 관심만 가지고 있던 아예 새로운 분야-디자인-에 지원해보았다. 분명히 즐겁기는 할 테지만 한 번도 배워 본 적이 없어서 잘할 수 있을지 매우 걱정되었다.

운이 좋게도 면접장에서 매니저님은 나에게서 가능성이 보인다고 해주셨고, 그렇게 7주간 더박스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다. 뜻밖에 적성에 아주 잘 맞았고, 즐거웠고, 지식의 습득도 빨랐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기란] 

더박스는 대구 중구에 있는 어학원이다. 주로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영어 회화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찾아온다. 나는 더박스 안에 있는 1인 출판사 팝콘에서 근무했으며 오전에는 주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SNS와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오후에는 서적, 교구 제작부터 앱 검수, 출간 도서 홍보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

질문 카드 팩을 만들었는데, 주제별로 질문이 50개씩 있는 카드를 이용하여 서로 대화하며 친해지고, 영어나 한국어 실력을 키울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언어치료도 할 수 있는 교구다. 내용은 기존에 틀이 있어서 그것에 맞게 추가하면 됐지만, 문제는 패키지와 카드 등 실물의 디자인이었다. ‘파스텔 톤’, ‘발랄한’, ‘포근한등의 분위기만 알려주고 크기부터 색깔, 모양까지 모두 정하라고 하셔서 당황스럽기도 했고 막막하기도 했다. 관련 자료를 최대한 많이 찾으며 새로운 디자인을 해보려고 했으나 모방하기는 쉬워도 완전히 새로운 것을 꺼내기는 절대 쉽지 않았다. 그동안 각종 제품에 적힌 문구나 사진, 그림 배치 등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으나 누군가가 몇 날 며칠을 골몰해서 새롭게 내놓은 것임을 알게 된 이후로 눈여겨보게 되었다. 어쨌거나 내 마음에는 썩 들지 않는 평범한 디자인이 완성되었지만, 매니저님은 아주 만족하셨다.

TOPIC 23, 미쿡썰.zip등 다양한 교재를 검수했다. 맞춤법이 잘 맞는지, 번역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면 된다. 평소에 오탈자를 찾는 것, , 영어를 모두 좋아해서 아주 재미있게 작업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책을 내가 먼저 읽는다니 참으로 두근거렸다. 꼼꼼하게 검수하기 위해 200쪽 정도 되는 책을 20번도 더 넘게 정독한 것 같다. 그래도 매우 재미있었다. 이를 통해서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는데 얼마 안 있어 곧 익숙해졌다.

그렇게 그 프로그램의 숙련가가 될 즈음, 매니저님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셨다. 바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위해 단계별로 읽는 어린 왕자를 만들자는 것이다. 내용은 제공되지만, 표지부터 내지까지 모든 것을 디자인해야 했다. 심지어 책을 펼치면 맨 앞에 나오는 들어가는 글’, ‘이 책의 활용법등도 작성해야 했다. 책 뒤표지에 흔히 있는 소개 글도 새롭게 작성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책등의 높이가 몇 cm나 될지 이번 작업이 아니었다면 평생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날개에 들어갈 그림과 내용은 물론이고 책이 출간되면 바코드를 발급받아서 뒷면에 실어야 하니 바코드가 들어갈 위치도 고민해보았다. 시중에 수많은 책이 쏟아지지만 그중 단 하나도 대충 나온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수많은 책을 참고하며 대강 틀을 잡아낸 뒤, 나만의 삽화도 새롭게 그려서 집어넣었다. 매니저님은 이번에도 아주 만족하셨다.

어린 왕자 책은 잠시 뒤로 하고, 미쿡썰.zip을 본격적으로 출간하기 위해 와디즈에 펀딩을 하기로 했다. 디자인이나 일러스트는 어떻게든 해냈지만, 마케팅은 정말로 자신이 없었다. 이번에도 홍보 스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써야 했다. 다른 업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참으로 막막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고 깊게 생각하며 꼬박 일주일을 들여서 글 하나를 완성했다. 매니저님이 글을 읽어보시고 아주 좋아하셨다.



▲사진제공: 김효선(IT대 전자 16)


[통섭형 인재의 필요성을 실감한 날]

이런 식으로 칭찬을 날마다 들었다. 그리고 조언이나 충고 등 작업물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솔직히 얼떨떨했다. 내가 그렇게 뛰어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실습생이고 어리니까 칭찬을 많이 해주는 줄 알았다. 어쨌든 전공 공부를 할 때는 하루하루 의욕도 사라지고 정말 우울했는데 다른 분야에서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오묘했다.

처음부터 디자인과에 갈걸’,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교에 입학하지도 말걸4년 동안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공 지식을 전혀 활용한 적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시제품을 만들 때 활용했던 3D Builder가 바로 전공 시간에 배웠던 프로그램이다. 다른 직원들은 그 프로그램을 다룰 줄도 모르고, 활용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3D 프로그램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시제품을 설계했다고 많이 칭찬해주셨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앱 POPKRN을 출시하기 전에 검수할 때, 여기저기 버그를 잡아내자 다들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해주었다. 그동안 개발팀과 디자인팀은 서로 업무 분야가 다르다 보니 서로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불편했다고 했다. 나는 두 분야 모두에서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므로 중간에서 의견을 조율하게 되었다. 나의 애매한 전공 지식이 전혀 쓸모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게 되어 매우 뿌듯했다.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통섭형 인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전공을 살릴지는 불분명하나 전공 공부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서 2학기 들어 다시 코딩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


[현장실습, 인생의 터닝 포인트]

짧은 기간이었지만 현장실습은 내게 꽤 큰 의미를 주었다. 첫째, 7주간 출근하고 업무를 수행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둘째, 여기저기 낙방하던 내게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데다가 나의 디자인 실력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실습이 끝나고 드로잉과 디자인 관련 서적을 몇 권 샀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관련 공부를 시작해 볼 생각이다. 셋째, 사무직 및 디자인 작업 환경에서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만지고 익숙해질 수 있었다. 집에서는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넷째, 다양하고 활기찬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사회성 또한 기를 수 있었다. 나는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여 학교도 혼자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혼자 했다. 취미 생활도 죄다 혼자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더박스에 출근하면 직원들이 살갑게 맞아주었고, 학원에 등록하러 온 학생들에게 안내도 해 주어야 했고, 상담 전화도 받아야 했으므로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다섯째, 평소에는 대부분 상사의 허락을 받고 행동했으나 때로는 상사의 허락 없이 스스로 정확하게 판단하며 융통성, 결단력도 기르게 되었다.


[넓어진 길]

감사하게도 팝콘 및 더박스에서 현장 실습이 끝나고도 함께 질문 카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느냐는 제의를 했다. 그래서 프리랜서처럼 계약을 체결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계약서를 읽고, 내가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고, 협상하고, 간인도 하며 뜻깊은 경험을 했다.

그 외에도 마무리를 덜 지은 단계별로 읽는 어린 왕자의 작업을 계속하고, 나아가서 더박스의 홍보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현장실습과는 별개로 회사가 직접 연락을 주어서 현재 주 4회 출근하고 있다.

하계 현장 실습을 통해서 새로운 분야에 흥미와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사실 하나만으로 섣불리 진로를 결정하기에는 이르다. 다만, 나아갈 길의 범위를 넓힐 수 있게 되었다.


[마치며]

그저 전공을 살려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같은 분야에 지원했으면 발전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는 절대 쉽지 않다. 특히 같은 학과에 입학한 다른 학생들은 전공을 잘 살려서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등에서 실습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볼수록 더욱 불안하고 나만 뒤처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남들이 가는 길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나 같은 사례도 있지 않은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만일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전혀 다른 분야라서 걱정되더라도 한 번쯤 도전해보길 바란다. 자신이 가는 곳으로 길이 생기기 마련이다.


체험수기는 1649호에서 이어집니다.


김민진 기자 kmj19@knu.ac.kr

편집 조현진 기자 jhj20@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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