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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기록의 역사와 미래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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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지금도 계속해서 일상의 발자국을 남기고 있으며,  생각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종이, 손에 들린 휴대폰, 가방 속의 필기구가 없다면 어떨까? 널리 퍼져있는 수많은 정보들이 기록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예로부터 한 개인의 생각과 집단의 시행착오가 쌓이고, 인간의 발자취가 기록되고 전달됐기 때문에 사회는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지금까지 기록을 이어오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왜 기록하려 하는가?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현대인들이 SNS를 통해 그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까지, 인간은 기록하려는 욕구와 함께 진화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자신의 생각, 감정과 같은 것들을 기록하려 했을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개인적 욕구에 의한 것이며, 둘째는 공익을 위한 목적이다.
개인적인 욕구에 의한 기록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생인 우리는 강의 내용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메모한다. 또한 SNS를 통해 우리의 자취를 남기기도 한다. 과거 선사시대 사람들은 개인적 소원이나 바람을 새기곤 했으며, 예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일기를 쓰곤 했다.
앞서 언급된 개인적인 욕구와는 달리, 인간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도 기록해왔다. 독자들이 지금 읽고 있는 이 신문만 해도, 그것을 증명해준다. 인간은 신문이라는 종이 매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소식을 전달하고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

한편, 인간은 왜 기록 매체를 필요로 했을까? 이에 대해 국립 중앙 박물관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최초의 기록 매체는 인간의 두뇌였다. 정보와 지식은 두뇌의 해마(海馬)에 기록되어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왜곡되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바위, 점토판과 같은 외부 매체에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기록수단의 변천사

지금부터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발전시켜온 각 기록매체에 대해 알아보겠다.

종이 이전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인간은 주변 자연환경을 이용해 기록을 이어왔다. 익히 알고 있듯 최초의 기록은 돌이나 동물의 껍데기에 새긴 갑골문부터 시작됐다. 앞으로 소개될 기록 매체들은 종이가 발명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기원, 죽간

돌에 그림을 새기던 시대를 지나 거북이의 등껍질에 ‘글’을 새기며 선조들은 문명을 이뤄왔다. 책의 시도 격인 ‘죽간’은 불에 구워 잘게 나눈 대나무 위에 글씨를 쓰고 그것들을 서로 엮은 것이다. 불에 굽는 과정은 대나무에 있는 유성 성분을 없애 글씨를 더 쉽게 쓰이도록 했고, 충해 방지를 통해 오랫동안 기록물이 보존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중국 현지에서 죽간의 재료인 대나무는 언제든 조달 가능한 물자였으며 값 또한 저렴해 종이의 발명 이후에도 사람들은 죽간목독을 찾았다고 한다. 한편, 죽간은 책의 기원이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죽간은 단순한 낱개의 그림 차원을 넘어,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엮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죽간목독의 모양을 보고 만든 문자가 바로 ‘책(冊)’인데, 이를 통해 책의 전신이 죽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편리할것만 같은 죽간이지만 무게가 상당해 학자들 사이에서는 책을 전부 외우고 다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죽간에 들어가는 글의 양이 적기도 했지만, 여러 개로 엮인 죽간들은 휴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몫했다. 당시 유명 학자들의 책들이 현대의 책보다 더 짧은 문장과 핵심내용으로만 이뤄져 있는 것 또한 이러한 점들이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사치스런 기록매체, 겸백

죽간 이후 대나무보다 훨씬 부드럽고 가벼운 겸백이 등장했다. 겸백은 글자를 기록하기 위해 사용된 비단으로 기록과 휴대가 편리했으며 보관기간도 길었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겸백의 값이었다. 현대에서도 비단은 고급소재이니 당연히 고대의 기록수단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귀한 것이었다. 후에는 삼베와 마 같은 천으로 서사용 겸백을 따로 만들기도 했지만, 많은 양을 기록하기에는 여전히 값이 많이 들었다. 이 때문에 공급이 원활했던 죽간목독을 초고 작성에 사용했고, 겸백은 최종적인 기록을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기록매체로서의 겸백의 사용은 왕실수준에서도 상당한 사치였고, 이는 이후 중국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는 배경이 됐다.
한편 겸백은 잘 구부러지는 특성이 있어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하곤 했는데, 이것은 이후 책을 헤아리는 단위로 ‘권’을 쓰게 된 것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의도치 않게 후대에 전해진 점토판
점토판은 우리가 미술시간에 흔히 봐왔던 물렁한 흙덩이로, 뾰족한 물체를 가져다 대면 자유자재로 원하는 것을 적고 표현할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주로 발견된 점토판은 유프라테스 강과 같이 문명의 필수 요소인 큰 물줄기에서 흙을 구해 제작됐다. 불에 굽거나 말리면 단단해지는 흙의 성질은 기록의 보관 기간을 향상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기록자 자의로 점토판을 굽는 경우는 적었다. 대부분의 점토판은 가벼운 편지나 기록의 역할을 했기에 구울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어마어마한 무게로 인해 휴대성이 현저히 떨어졌고, 마르면 글씨를 쓰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현대까지 파편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전쟁으로 인한 불이었다. 의도치 않게 불에 구워진 점토판은 역경의 상황에서 더 단단히 구워져 다른 기록수단과 다르게 후대에 전해졌던 것이다.

현대 종이의 기원, 파피루스
파피루스는 나일강변에서 자라던 갈대의 일종으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의 줄기를 이용해 문서를 기록했다. 파피루스를 기록매체로 만들기 위해서 줄기 속의 부드러운 부분을 얇게 찢어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겹쳐 무거운 것으로 눌러 건조시켰다. 이 때문에 파피루스에서 삼베와 같은 무늬를 볼 수 있다.
내구성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앞선 점토판에 비해 무게가 월등히 가벼웠고 가격 또한 저렴했기에 문서를 대량으로 기록하는데 애용됐다.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와 함께 묻혔던 사자의 서를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갈릴레오 갈릴레이처럼 유명인의 저작물 원본도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파피루스의 학명 ‘cyper papyrus’에서 오늘날 쓰고 있는 ‘paper’란 단어가 비롯됐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현대 종이에 가장 가까울 정도로 가볍고 필사하기도 편리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특산품이었기 때문에 그 외 지역에서는 값이 비쌌고, 습기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파피루스의 대용품, 양피지
양피지는 양, 염소, 소의 가죽으로 만든 기록매체다. 이러한 양피지의 등장은 앞서 언급된 파피루스의 수출이 금지되며 시작됐다. 기원전 2세기경 소아시아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 2세는 페르가몬에 도서관을 설립하고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집트의 프롤레미 왕은 이 도서관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보다 발전할 것을 염려해 당시 기록매체로 널리 사용됐던 파피루스의 수출을 금했다. 이후 페르가몬에서 파피루스 대용으로 양피지를 사용한 것이 양피지의 시작이었다.
가죽으로 된 양피지는 내구성과 보존성이 뛰어났고, 글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전 유럽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무게와 상당한 가격으로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다. 가축을 도축해야만 양피지를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양 한 마리를 기준으로 양피지가 A4 2장에서 4장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양피지로 만든 책은 집 한 채 값에 달해 유럽에서는 부유층의 상징이기도 했다.

테블릿pc의 전신, 왁스타블렛

왁스타블렛(wax tablet)이란 테두리가 있는 목판에 왁스를 채워서 굳힌 것이다. 이 위에 침펜을 이용해 글자를 새겼다. 앞서 등장한 점토판과 사용법이 비슷하지만, 왁스를 50도 정도의 열로 녹여 재활용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왁스를 녹여 다시 재활용하는 것을 ‘슬레이트’라고 하는데, 이러한 장점 때문에 이 매체는 고대에서 중세까지 폭넓게 사용됐다.
현재 타블렛이라고 하면 아이패드처럼 전자기기가 떠오르지만 바로 이 테블렛(tablet)의 어원이 왁스타블렛이다. 더불어 컴퓨터에 쓰이는 스타일러스 펜 역시, 왁스판에 글자를 쓰는 침펜을 뜻한다고 한다. 현재 사용되는 스타일러스 펜의 뒷부분에 글자나 그림을 지우는 지우개 기능이 있는데, 왁스 타블렛의 침펜도 넓적한 칼날이 있어 글자를 도려낼 수 있었다.

종이의 발명과 인쇄술

희대의 발명품, 종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종이는 중국에서 처음 발명됐다. 중국 후한의 환관 채륜이 기원후 105년경 중국의 제지 기술을 개량, 체계화하고 공정 방식을 표준화해 만든 채륜지를 현대 종이의 직계로 보고 있다.
종이는 앞서 언급된 껍질, 찰흙, 양장피, 파피루스 등의 기록매체가 지닌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발명됐다. 당시 중국에서는 죽간목독이나 비단에 글을 쓰곤 했는데 죽간목독은 부피가 너무 크고 불편했으며 고급 소재인 비단은 한두 번 쓰고 버려야 해 재정적 부담이 컸다. 이에 왕실재정을 담당하던 채륜이 전국의 장인과 기술을 동원해 만든 것이 채륜지, 곧 현대의 종이다.
종이의 발명 후 종이의 생산과 쓰임은 크게 늘었지만, 이후 종이는 관청이나 상류층만이 사용할 수 있는 비싼 물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송나라는 관청의 폐지를 팔아 회식비용으로 쓰기도 했으며, 청의 옹정제는 이면지 사용을 관리들에게 권고하는 등 종이는 여전히 비싸고 귀한 것이었다.
종이 제작법은 중국에서 이슬람 문화권을 거쳐 13세기경 유럽으로 전파됐고, 유럽인은 물레방아를 이용해 제지 공장을 건설했다. 종이의 사용이 보편화 되자 먹과 잉크 등 다양한 도구도 함께 개발됐고, 인쇄술로 이어져 인간이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인쇄술 이야기

중국의 종이 제지법이 전해지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 ‘한지’와 ‘인쇄술’이 발전하게 됐다. 첫 인쇄술은 목판 인쇄였다. 우리나라에서 목판 인쇄가 발달한 것은 방대한 양의 불경을 일일이 손으로 필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판의 등장으로 인해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고(最古) 목판인쇄물인 신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목판 인쇄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대량의 책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지만, 쉽게 갈라지고 부서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단점을 보완하고자 외부환경에 더 강한 금속 활자가 발명됐다. 금속 활자란 말 그대로 놋쇠, 납, 무쇠 따위를 녹인 후 거푸집에서 굳혀 만든 활자로,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은 1377년 청주목의 흥덕사에서 만들어진 ‘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이다.
우리나라의 금속 활자는 독일의 쿠텐베르크 활판 인쇄기 발명보다 약 100여 년을 앞서 개발됐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가 우수한 기술을 먼저 발명했음에도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진, 획기적 발명품이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록도구의 존재 목적에서 찾을 수 있다. 인쇄술이 발전됐던 당시 고려에서는 기록 도구가 상류층만이 가질 수 있는 전유물로 사용이 제한됐던 반면, 독일에서는 성경책을 대중들에게 팔기 위한 상업적 목적으로 인쇄술을 이용했다. 인쇄술의 사용 목적의 차이로 인해 사용빈도에서도 차이가 났던 것이다. 둘째는 우리나라와 구텐베르크 활자 제조방법 차이점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한자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기존 거푸집을 재활용할 수 없는 활자 제조 방법은 새로운 내용의 인쇄를 할 때마다 활자를 다시 제조해야 했다. 반면 독일에서는 표음 문자인 알파벳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한 번에 활자를 대량으로 만들어 놓기만 하면 글자 배열만 바꿔 다른 내용의 인쇄도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한 것은 우리나라임에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더 큰 영향력을 지닌 발명이 됐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도서관-기록매체박물관(기록의 역사)
김민철.(2018). 구텐베르크 이후 유럽의 인쇄술과 ‘계몽의 시대’의 출판 전략. 지식의 지평, 25(1): 1-9

'역사의 쓸모'-최태성

국립중앙도서관-기록매체박물관(기록의 역사)
김민철.(2018). 구텐베르크 이후 유럽의 인쇄술과 ‘계몽의 시대’의 출판 전략. 지식의 지평, 25(1): 1-9

'역사의 쓸모'-최태성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현재, 기록에 있어 디지털 아카이빙은 필수 요소로 우리 삶에 자리잡았다. 디지털 아카이빙이란 종이 문서로 존재했던 지식과 자료를 데이터화 시키고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변환, 압축하고 저장, 분류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디지털 아카이빙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으며 인간의 기록과 기록매체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형태 없이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까지 발달한 현 디지털 시대와 그 미래에 대해 본교 문헌정보학과 양기덕 교수님과 알아보도록 하겠다. 


*아래 인터뷰는 영문을 번역한 것으로, 몇 가지의 개념은 아직까지 한국에 도입되지 않은 추상적인 개념이 포함돼 있음을 알린다.


디지털 시대와 아날로그 시대

Q. 디지털 매체로 정보를 접할 때 아날로그 매체보다 내용이나 깊이 또는 독자의 내면화 등에서 차이점이 있다고 보는가?

A. 사용자와 매체의 범주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매체는 선형적이고 비용효율이 낮아 가질 수 있는 내용 폭이 디지털보다 더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의 세분성과 깊이는 더 미세하고 깊을 수 있다. 디지털 매체는 아날로그 데이터의 전체 스팩트럼 중 샘플만을 저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 예로 오디오가 있다. 아날로그 오디오는 사실상 제한이 없는 재생 저장 공간을 가지고 있는 반면, 디지털 오디오는 소리 스펙트럼의 제한된 부분집합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강화된 내구성을 지니며 접근 및 사용이 쉬운 디지털 매체의 내용이 더 쉽게 소비된다. 주의할 점은 디지털 미디어의 소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자의 선호도에 따라 다른 종류의 기술 플랫폼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Q. 세대가 바뀌어 인간이 느끼는 종이의 필요성이나 선호도가 급감하게 되면 종이매체는 사라지게 될 것인가?

A. 구식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인쇄된 책을 좋아한다. 책이 나타내는 지식의 물리적 표현뿐만 아니라 책의 외향과 촉감, 그리고 냄새를 좋아한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인쇄 매체 콘텐츠의 대부분은 결국 사라지겠지만 지식의 기록, 역사적 수입(import)과 같은 것들은 계속해서 물리적 형태로 남을 것이다.
한국이 계속해서 3통으로 작성하는 행정 기록이나 의료 기록, 사업거래 기록, 뉴스, 교과서와 같은 것들은 결국 더 다루기 쉽고 내구성이 좋으며 이용이 편리한 디지털 형태로 바뀔 것이다. 또한 블록체인 기반의 신뢰성 검증과 같은 것이 디지털 기록으로 통합될 때 인쇄매체의 디지털화가 급격히 활발해질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문학과 고전 문학 ▲개인의 기록과 국가의 역사적 기록 ▲교육 학위 증명서와 같은 인증 문서는 소중히 보관되어질 종이로 계속해서 인쇄될 것이다. 마치 중국에서 차가 단순히 다른 음료로 대체될 수 없듯이 종이는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새겨진 상징이기 때문이다.

Q. 디지털시대로 접어든 후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를 이어주는 아카이빙 방식도 바뀌고 있다. 공공 기록물 등에 관한 아카이빙 방식이나 기준 등에도 변화가 있는가?

A. 물론이다. 디지털 인증 방식에 대한 우려와 옛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태도가 종이기반의 기록에서 전국적인 디지털 기록 보관(DRK, digital record keeping)으로의 전환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의학계에서는 DRK가 전자 의료 기록의 형태로 수년 전 도입됐고, 고등교육에서도 중요 행정 정보를 관리하기 위해 컴퓨터화된 정보 시스템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DRK는 학교와 병원에서 단순히 공공 기록 관리의 한 부분만을 다뤄 여전히 전체 데이터는 분산 및 복제되며 아날로그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현존하는 디지털 아카이빙은 주로 보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데이터 재사용에 관해서는 거의 준비돼 있지 않다. 공공정보관리와 데이터 아카이빙은 한국에서 매우 중요하고 인기 있는 분야이며, 현재 이에 대한 기준과 방식을 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좋은 시작이긴 하지만 이 단계를 넘어 DRK가 현재의 작업 방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한국을 디지털 데이터 큐레이션(data curation)과 아카이빙의 선두에 설 수 있도록 어떻게 “스마트” 디지털 아카이빙과 상호작용할 수 있을지를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기존에 설립된 기록보존 기준과 방식에서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단지 정보 기술을 현재 관행에 접목시킬 새로운 사고방식과 미래를 향한 안목이 필요할 뿐이다.

디지털 시대의 기록과 그 영향

Q. 기록수단이 변화함에 따라 인간의 사유 양상이나 방식, 깊이와 같은 것들도 함께 변화한다고 생각하는가?

A. 기록의 보관이나 기록 방법이 추론하는 방식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지는 모르겠다. 기록 과정보다는 접근 자체가 훨씬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 미래에는 데이터베이스의 모든 기록이 중앙 집중화되고, 효과적인 검색 시스템을 통해 어디에서나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짜 뉴스, 공공 기만 등 정보를 억제함으로써 행해지는 부당한 힘과 같은 사회적 오보는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보다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아카이빙에서 나아가 공공 기록 관리뿐만 아니라 컴퓨터, 휴대폰, CCTV, 인터넷 서버 등과 같이 데이터를 생성하고 관리하는 모든 형태의 소스를 통해 ‘마스터 아카이브’가 형성될 것이다. 마스터 아카이브는 근본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다.

디지털 기록의 한계와 그 이후

Q. 문명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기록 매체가 역설적으로 현대에는 너무 많은 기록을 가능하게 해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대의 기록 매체가 문명 축적에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는가?

A. “너무 많은 기록”이란 말에 동의할 수 없다. 현대의 기록은 절대 많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소음이 내일의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상 무한한 디지털 저장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저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를 조직하고 걸러내고 회수하는, ‘정보 관리’가 중요하다. 정보관리는 기술에 의해서만 제한되며, 기술은 천문학적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모든 정보는 점차 최대한으로 활용될 것이다. 우리에게 제한 없는 저장 능력이 있는데 후대를 위해 많이 기록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디지털 형태의 공공기록, 뉴스, TV, 영화, 책 등은 미래 세대에게 유용한 자산이 될 것이다. 유튜브 영상을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기록들을 체계화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Q. 기록 수단의 다양성과 파급력에도 불구하고, 기록 관리 체계에서는 미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기록 수단과 관리에 있어 개선이 필요한 분야는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더 발전돼야 하는가?

A. 여기서 문제는 기술이나 절차가 아닌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IT 국가지만 시스템 자체는 전반적으로 구식이다. 중앙 집중화되고 상호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닌 대부분의 시스템이 독점적인 표준과 절차에 따라 국한된것처럼 보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스템을 구축했다기 보다 생산 기한을 맞추기에 급급한 개발자들이 짜맞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점은 한국 기관들의 단기적 사고방식에 부분적으로 기인한다고 본다. 많은 프로젝트, 연구, 심지어 직무 할당도 2년 주기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는데 2년은 중요한 것을 해내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또 다른 원인은 교육제도에 있다. 우리는 젊은 세대에게 스스로 생각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사고하거나 큰 그림을 보도록 권장하지도 않는다. 젊은 세대에게 무엇을 배우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알려줘 기계처럼 일하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바뀌어야 한다.

Q. 세상은 이동성을 지닌 기록의 시대까지 발전했다. 지금의 디지털을 뛰어넘는 기록의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하는가?

A. 디지털화된 데이터와 인간의 뇌가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인공두뇌학 또는 생체역학 시스템이 다음의 논리적 단계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에서 데이터 조직은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아마 직접 접근하고 횡단할 수 있는 공공데이터와 개념-관계 지식 그래프의 엄청난 네트워크와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우리가 이방원을 조사한다면 지금처럼 검색엔진을 통해 자료 목록을 모으는 것 대신 지식구조를 나타내는 아래의 “개념-관계” 그래프가 나온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조선왕조 제1대 왕인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이라는 것과 그의 셋째 아들이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라는 것까지 알 수 있다. 개념을 클릭하면 우리는 그것과 연관된 모든 종류의 미디어뿐만 아니라 요약된 정보에도 접근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경북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는 데이터 아카이브 프로젝트(인공두뇌학이 아닌)에 활발히 참여 중이기도 하다.

박은겸 기자/peg19@knu.ac.kr
편집 진수별 기자/knun@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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