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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4.19와 5.16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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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수 교수(인문대 사학)

최근 우리 대학 역사관에 ‘4.19의거’와 ‘5.16혁명’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패널이 설치되어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이 패널을 본 지역의 한 시민이 ‘4.19혁명’과 ‘5.16쿠데타’로 표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이 사실이 지역의 언론에 보도되었다. 대학 박물관 측에선 ‘4.19의거’와 ‘5.16혁명’이라는 표현이 당대의 인식이며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러한 해명은 교내 학생들, 대학원생들, 교수들의 범위를 넘어 교외에서도 더 큰 항의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박물관이 시민사회와 대학 구성원들 및 언론의 문제 제기를 수용하여 ‘4.19혁명’과 ‘5.16쿠데타’로 패널의 표현을 수정하면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어떠한 명칭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결국 이것은 특정한 정치 공동체가 어떠한 미래를 추구하느냐 하는 문제와 연계되어 있다. 역사학에는 ‘편수용어’라는 제도가 있다. 역사 교과서를 집필할 때 특정한 사건에 대해 일정한 명칭과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지침이다. 이것은 역사 교과서 편찬 업무를 주관하는 국사편찬위원회가 학계와 교육계 및 시민사회의 의견을 종합해서 만든다. 5.16 이후 권위주의 시대에는 국정 역사 교과서에서 4.19와 5.16에 의거와 혁명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문민정부 수립 이후에는 검인정 역사 교과서에서 4.19와 5.16에 혁명과 쿠데타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의 변화는 한국 사회라는 정치 공동체가 민주주의를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더욱 소중히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4.19는 혁명이라 부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엄밀한 사회과학적 정의에 의하면 혁명은 지배계급의 교체, 사회체제의 급격한 변화,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4.19는 정권의 담당 주체를 자유당에서 민주당으로 교체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개념에 어울리는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당대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한국 사회라는 정치 공동체는 4.19를 혁명으로 인식하고 기억해 왔다. 4.19는 근현대 한국 민중의 투쟁사에서 민중이 들고일어나 최고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려 정치적 승리를 쟁취한 최초의 사건이다. 민초(民草)들도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혁명의 세례는 장기간에 걸친 민주화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4.19를 통해 표출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반영되어 4.19는 한국 사회의 정초기억(定礎記憶, founding memory)으로 승화되었다. 
5.16은 의심할 여지 없이 쿠데타, 즉 군사정변이다. 제2공화국 장면 정부는 4.19혁명 이후 합법적인 선거에 의해 수립된 정부다. 이 합법적 정부를 정치군인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불법적으로 정권을 탈취한 것이 5.16이다. 이 때문에 5.16은 개념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군사정변, 즉 쿠데타 이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물론 이 쿠데타 주체세력이 자신들 스스로는 ‘조국 근대화’를 위한 혁명을 수행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또 사후에 경제개발에 성공하여 쿠데타에 대한 면죄부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개발독재 시대에는 이러한 인식이 국정 역사 교과서로 포장되어 시민의 역사인식을 주조해 왔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5.16혁명’은 부정되고 ‘5.16쿠데타’가 보편적 역사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국정 역사 교과서로 교체해서 5.16을 혁명으로 되돌리려 했던 박근혜 정부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여 붕괴되고 말았다.
혁명과 쿠데타라는 역사인식은 의거와 혁명이라는 공식기억에 맞서 오랜 기간 대항기억으로 존속해 오다 민주화 이후 공식기억으로 전환되었다. 의거와 혁명이라는 역사인식은 10.26 이후 신군부 세력이 다시 군대를 동원하여 불법적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한국 사회는 5.18의 희생을 딛고 오랜 민주화 투쟁으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종래 대항기억에 머물러 왔던 혁명과 쿠데타라는 역사인식을 한국 사회의 공식기억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역사인식의 변화는 기억을 둘러싼 오랜 투쟁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정치 공동체의 선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의도적인 실수이건 우연한 실수이건 권위주의 시대 역사인식으로의 퇴행을 막은 것은 대학의 학생들과 대학원생들 그리고 평범한 교수들이었다. 그리고 지역 사회의 시민들과 언론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간주하는 수구적 반공적 역사인식이 팽배했던 지역 사회에도 역사인식의 거대한 변화가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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