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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유변

내일의 나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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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일기란 어떤 의미일까. 초등학생 때 늘 밀렸던 방학숙제, 대부분 그쯤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스물두 살인 지금까지 매일 일기장에 일기를 써왔다. 하루를 정리하는 기분으로, 약간은 강박과 습관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 같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거의 매달 챙겨봤으니 적어도 50번은 봤을 것이다. 부끄러워서 누군가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대사마저도 외워버린 그 영화를 보며 내린 결론이 하나 있다. ‘오늘을 살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다’가 그것이다. 내가 살아온 20년 남짓한 시간의 작은 마침표가 오늘인데, 그 작은 점 하나는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살아지는 삶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능동적이어야 할 것 같다. 눈 떴으니 아침이고, 배가 고프니 밥을 먹었고, 들어야 하는 수업이니까 듣고, 걸어야 하는 길이니 걷지는 않았나.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도, 그 안을 잘 들여다 보면 분명히 다르다. 첫눈이 내린 아침일 수 있고, 생일인 친구와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간 점심이었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같이 들었던 수업일 수 있고, 오늘따라 벚꽃이 활짝 예쁘게 펴있는 길일 수 있다.
예전의 일기를 썼던 나는 지금보다 어리다.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도 어리다. 그날의 나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부끄러워지기도 하며, 지금의 나와 생각이 왜 이리 다른지 궁금하기도 하다. 또한 내겐 남들이 하지 못하는 취미가 한 가지 있다. 유난히 힘든 날, 1년 전과 2년 전 일기를 읽어보는 것이다. 그날의 고민과 걱정들을 읽다보면, ‘내가 이런 것도 걱정했나?’싶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문득 ‘지금 힘든 일들도, 1년 뒤에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게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힘들다고 투정부리기에 나는 이미 어른이 되었으니, 미래의 나에게 털어놓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또 일기장을 펴서, 오늘의 나는 투정을 부린다. 오늘은 이런 고민을 했고, 저런 걱정을 했다고. 내년의 나는 그걸 보며 또 웃겠지. 그런 일도 있었냐며.
오늘은 몇 시에 일어났는지, 아침의 기분은 어땠는지. 누구를 만났고 어떤 좋은 일이 있었으며 어떤 걱정을 했는지, 내일은 어떤 일이 기대되는지. 그렇게 고등학교 3년과 재수, 삼수 때의 내 모습이 다섯 권의 공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 삶의 기록을 언제까지 이어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펜을 잡을 수 있는 여력이 있는 한, 꾸준히 이어가지 않을까.
소설가 이광수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내가 일기를 쓰는 데 주안으로 삼는 것은 나의 심중에 일어난 또는 나를 깊이 감동시킨 여러 가지 사건을 가장 확실하게 가장 솔직하게 기입하는 것이다. 나는 일기를 쓰는 목적을 모른다. 다만 쓸 따름이다.”


이순원
(사회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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