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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유변

비극과 코미디의 경계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

대학전문기자

이동윤기자






온갖 혐오들이 판을 치고 있다. 계층 간의 혐오, 성별 간의 혐오, 인종 간의 혐오, 지역 간의 혐오, 끝을 셀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 내집단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존재는 모두 혐오의 대상이 될까봐 두려워지기도 한다. 혐오로 인한 온라인상의 비방과 욕설도 이제 예삿일은 아니다. 이것이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지지 않으면 다행일 뿐.
과거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의 내면세계를 공감하기 힘들어졌다. 아니, 공감하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상대방이 약자이든 외집단이든 상관없이 공감이 들어서야 할 자리를 비웃음과 조롱 섞인 시선이 차지해 버릴까 무섭다. 문제는 우리에게 혐오라는 것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직면한 주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타인에 대한 혐오가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지는 모르지만, 사태의 본질을 회피하고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 이를 알고 혐오를 멈추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의 생각이나 비극에 공감하고 연민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 만약 누군가의 고통이 나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법한 ‘남의 일’처럼만 느껴진다면 그런 무관심과 혐오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짧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은 바로 상대방의 고통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지에 따라 희비극의 차이가 결정된다는 의미를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다시 말해 가까이서 공감하며 바라보는 타인의 고통은 비극이 되고, 공감하지 못하며 멀리서 바라보는 타인의 고통은 희극, 즉 혐오라는 결말로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비극과 희극이 결정되는 순간은 한 끗 차이에 불과하다.
타인의 내면세계에 공감하기 어렵더라도, 최소한 무차별적인 비난과 혐오는 당장 멈춰야 한다. 자발적으로 개인의 의식을 바꿀 수 없다면 법으로라도 규제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비난을 표현할 때도 신중해야 한다. 결국, 혐오하는 대상은 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이 될 수도 있다. 반론도 수긍과 인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무조건 비판만 앞세우는 행위 또한 타인에 대한 무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구잡이식 혐오가 아닌 타인의 고통을 가슴으로 느끼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정당한 비판을 하는 것만이 이 삭막한 사회를 바꾸는 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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