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6 (목)

  • 구름조금동두천 29.1℃
  • 맑음강릉 25.2℃
  • 구름많음서울 29.4℃
  • 맑음대전 27.7℃
  • 구름조금대구 27.7℃
  • 맑음울산 22.3℃
  • 맑음광주 27.5℃
  • 맑음부산 23.0℃
  • 구름조금고창 24.8℃
  • 구름조금제주 23.5℃
  • 구름조금강화 24.9℃
  • 맑음보은 27.8℃
  • 맑음금산 27.4℃
  • 맑음강진군 26.5℃
  • 맑음경주시 26.1℃
  • 맑음거제 23.9℃
기상청 제공

사회기획

민주화의 불씨, 40주년 맞은 5.18민주화운동의 족적

‘당신의 한 표가 세상을 바꿉니다.’ 선거철만 되면 늘 들려오는 말이다. 2020년 4월 15일 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각자가 가진 한 표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됐다. ‘한 표를 행사하는 민주적인 권리’ 지금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느껴지겠지만 이 권리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의지가 담겨 있다.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는 민주적 권리, 이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다. 곧 다가올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은 그 과정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얻어낸 것을 떠올리고 그 과정에서 흘린 피와 땀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하는 날 중 하나다. 특히 올해는 1980년 일어났던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인 만큼 그 발자취를 함께 되짚어보자.●

서울의 봄이 광주에 오기까지
5.18민주화운동이지만 1980년 5월 18일 당시 하루 만에 모든 일이 전개된 것은 아니었다. 사건의 시작은 짧게는 1979년 부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10월 16일,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유신체제에 견디다 못한 시민들은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부마항쟁을 일으켰다. 항쟁은 부산에서 시작돼 마산, 창원으로 번져나가면서 약 4일간 전개됐고 정부가 *비상계엄령과 *위수령을 선포하면서 무장공수부대를 투입해 종결됐다. 약 10일 후인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에 사망하며 그의 장기집권도 함께 끝을 맺었다.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이 시민들 사이에서 피어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12월 12일, 군부 쿠데타로 실질적인 권력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에게 넘어갔다.
1980년, 유신체제에 저항하다 해직되거나 제적됐던 교수와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이들을 중심으로 학생자치기구들이 부활했고 그해 4월, 학원 민주화운동이 전국 대학에서 활발하게 전개됐다. 5월에 이르자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절정에 달했다. 학생들은 시위와 집회를 열면서 본격적으로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고(1980년 5월 14일에서 17일 사이에 광주에서 열린 ‘민족민주화성회’가 그 대표적 예다), 재야세력과 야당도 ‘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학원민주화’, ‘비상계엄해제’, ‘유신잔당 퇴진’, ‘정치일정 확정’ 등이었다. 전국 대학의 총학생회장단들은 대규모합동시위를 계획했고 5월 15일 서울역 앞에서 대학생과 시민 약 1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시위가 벌어졌다. 이 서울역 시위는 계속해서 진행할 경우 군이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다는 주장에 서울역 회군으로 종결됐다. 다음 날 16일, 광주를 제외한 전국의 대학교에서 정상수업이 실시됐다.

*비상계엄: 국가 비상사태로 행정·사법 기능의 수행이 곤란할 때 대통령이 선포. 선포와 동시에 계엄 사령관이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사법 사무를 관리함.
*위수령: 군대가 계속적으로 일정한 지역에 주둔해 해당 지역의 경비, 질서 유지 등의 활동을 하도록 규정한 대통령령.

1980년 5월 18일, 광주
1980년 5월 17일 밤 11시 40분, 정부는 5월 18일 0시를 기준으로 전국적 비상계엄령 확대를 발표했다. 이와 함께 시위를 주도했던 대학생 및 재야인사들이 전국에서 연행됐다. 18일 오전 10시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계엄해제’와 ‘휴교령철폐’를 요구하는 학생 시위가 열렸다. 그리고 이 작은 외침은 5.18민주화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공수부대는 해산하라는 경고방송과 함께 무력으로 학생들을 진압했고 주변 시민에게도 무차별적 진압이 이어졌다. 
시위대 학생들은 도심인 금남로로 진출해 시위를 이어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위대의 규모는 커졌고 동시에 공수부대의 폭행과 연행도 계속됐다. 시위대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엄사령부는 통행금지 시간을 오후 9시로 앞당겼다. 
19일, 전날 무력진압으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무력진압에 분노한 시민들은 공수부대와 투석전을 벌였고,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 아래 계엄군의 무리한 진압작전이 전개됐다. 시민들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계엄군의 첫 발포가 이루어졌고 고등학생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 계엄군은 시위대를 폭도로 몰며 대검, 총, 화염방사기, 장갑차까지 동원해서 진압을 시도했다.
20일, 중고등학교까지 휴교령이 내려졌다. 공수부대는 금남로 카톨릭센터 앞에서 시민 30여명을 속옷만 입게 한 채 구타했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의 분노도 점점 커졌다.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르며 공수부대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오후 6시 경에는 무등경기장에서 차량시위가 벌어졌다. 광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계엄군의 만행을 목격한 택시, 버스 운전기사들은 함께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렸다. 이들의 참여로 시위대의 사기도 한층 높아졌다. 그날 밤, 언론에서는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왜곡 보도했고 계엄군의 과잉진압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에 대한 군부의 검열 때문이었다. 광주시민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언론에 거세게 항의하며 광주MBC 건물을 방화했다. 광주역 광장에서는 가장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계엄군은 비무장한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고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애국가와 함께 시작된 발포
21일, 시위를 위해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오후 1시 금남로에 애국가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이뤄졌다. 이때의 발포는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졌으며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시민들까지도 목숨을 잃었다. 시민들은 무장할 필요성을 느꼈고 시민군을 결성했다. 그들은 경찰서와 예비군 본부 등에서 총기와 장갑차 등을 확보했으며 무력으로 계엄군에 맞서기 시작했다. 계엄군 본부는 시외전화를 차단해 광주를 고립시켰다.
23일,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광주시민들은 서로를 돕기 시작했다. 총상환자가 많아 혈액이 부족해지자 줄지어 헌혈했고 시내를 정돈했다. 주먹밥을 만들고 빵과 음료수를 모아 시민군에게 공급하기도 했다. 또한 범시민 궐기대회를 열어 함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다. 경찰도 없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광주 시내에 강도피해를 입은 은행은 한 곳도 없었다.

5.18민주화운동의 종결
24일과 25일, 계엄군은 계속해서 시민군의 무장해제를 종용했다. 계엄군과의 협상이 결렬됐고 시민군은 투항파와 투쟁파로 갈렸다. 투항파는 도청을 떠났고 투쟁파는 최후의 싸움을 준비했다.
26일, 시민군 진압을 위해 계엄군들이 대거 도심으로 진입했다. 이에 대항해 항쟁지도부는 계엄군의 진입을 맨몸으로 막는 죽음의 행진을 감행했다. 오후 3시 마지막 범시민 궐기대회가 열렸고 시민들은 민주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계엄군은 진압계획을 통보했고 끝까지 싸울 시민군을 제외하고는 모두 귀가했다. 24시 경 시내전화가 두절됐다.
27일 새벽,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차량 확성 마이크를 통해 거리거리에 들릴 즈음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했다. 전남도청을 완전히 포위한 계엄군과 시민군의 마지막 시가전이 금남로에서 벌어졌다. 공수부대는 도청 안의 시민군에 집단 발포했고 다수의 시민군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으며 체포됐다. 1시간 10분 후인 5시 10분, 모든 진압작전이 종료됐다.

시민사회의 힘이 된 5.18민주화운동
5.18민주화운동은 다수의 희생자를 남기며 종결됐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민중의 자발적인 저항은 사람들의 마음에 민주화를 향한 불씨를 심어줬으며 1987년 6월 항쟁의 원동력이 됐다. 5.18민주화운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한 성과였다. 2011년, 5.18민주화운동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냉전체제를 해체하고 민주화를 이뤄나가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 점을 인정받아 그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5.18민주화운동은 과거 광주 폭도들이 일으킨 소요사태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지만 1993년 국가차원에서 재검토됐고 이를 둘러싼 진상규명운동이 이어졌다. 1997년에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 철저한 과거사 청산을 위해 지금까지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더 알아보고 싶다면…

더 생생한 감각으로 접해보고 싶다면 영화나 웹툰, 소설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폭도가 아니야. <화려한 휴가>(2007) 

‘화려한 휴가’라는 제목은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의 작전명에서 따온 것으로, 이 영화는 광주시민인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다. 당시 계엄군의 무력제압과 참혹했던 실상, 시민군의 대응 등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전개되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겪어낸 광주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26년 뒤, <26년>(강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지나 26년 뒤를 그린 작품. 5.18민주화운동 희생자의 2세들이 모여 모든 사건의 주범 전두환 암살을 계획하는 내용으로, 26년 뒤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12년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개봉했다.

소년이 겪은 5월, 『소년이 온다』(한강)

5.18민주화운동 당시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을 다뤘다. 동호라는 중학생 소년을 중심으로 소년과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내면을 그렸으며 이탈리아 문학상인 말라파테르상 수상작으로 선정됐고,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영국 맨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함께 걸어보자, 오월길

직접 ‘오월길’로 추모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겠다. ‘오월길’은 5.18기념재단에서 5.18민주화운동 26개 사적지와 광주 곳곳의 역사, 문화자원을 연계해 개발한 여행코스다. 오월길 홈페이지(518road.518.org)에 접속해보면 코스별 상세 안내를 볼 수 있다. 테마는 인권, 민중, 의향, 예술, 남도 총 5개로 18개의 코스가 있다.

● 오월인권길: 5.18민주화운동의 열망이 담긴 사적지를 찾아가는 길
● 오월민중길: 오월광장에서 뜨겁게 타올랐던 시민들의 발자취를 발견하는 길
● 오월의향길: 오월정신의 역사와 교감하는 길


● 오월예술길: 광주의 오월 문화예술을 만나는 길
● 오월남도길: 오월정신을 따라 새로운 여정을 만나는 길


항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불씨를 따라가는, 횃불코스

항쟁의 불씨가 번져가던 도심의 길
총거리 : 약 6.7km / 소요시간 : 약 1시간 50분
전남대학교 정문<사적 1호>▶ 광주역 광장<사적 2호>
▶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옛터<사적 3호>▶ 5·18 최초발포지<사적 21호>
▶ 광주 MBC 옛터<사적 7호>▶녹두서점 옛터<사적 8호>
▶ 광주 YWCA 옛터<사적 6호>▶ 금남로(5·18기록관)<사적 4호>
▶ 광주YMCA<사적 5-4호>▶ 구 상무관<사적 5-3호>
▶ 5·18민주광장<사적 5-2호>▶ 도청과 5·18민주광장<사적 5-1호>


뜨거웠던 광주를 더 오래 느껴보고 싶다면, 들불코스

오월항쟁 당시 들불열사들의 자취를 따라 걷는 길
*들불열사: 들불야학의 일원인 윤상원, 박기순, 박용준, 박효선, 신영일, 김영철, 박관현 열사를 들불7열사라고 함
총거리 : 약 26.7km / 소요시간 : 약 6시간 43분
5·18자유공원▶ 광천공단 옛터▶ 광천시민아파트▶ 광천동성당<사적 27호>
▶ 전남대학교<사적 1호>▶ 민들레소극장▸녹두서점 옛터<사적 8호>
▶ 광주 YWCA 옛터<사적 6호>▶ 도청과 5·18민주광장<사적 5-1호>
▶ 구 가톨릭센터<사적 4호>▶ 구 광주교도소<사적 22호>▶ 국립5·18민주묘지


민중들의 영혼을 추모하며 걷는, 영혼코스


오월의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5·18묘역으로 가는 길
총거리 : 약 12.5km / 소요시간 : 약 3시간 10분
전남대학교<사적 1호>▶ 광주광역시립 무등도서관▶ 광주교도소<사적 22호>
▶ 5·18구묘지<사적 24호>▶ 국립5·18민주묘지

빠르고 압축적으로 여행하고 싶다면, 민주기사코스


민주주의를 향한 차량 행진을 따라 걷는 길
총거리 : 약 3.7km / 소요시간 : 약 56분
무등경기장 정문<사적 18호>▶ 유동삼거리▶ 금남로(5·18기록관)<사적 4호>
▶ 5·18민주광장<사적 5-2호>


김민진 기자/kmj19@knu.ac.kr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