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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사람은 왜 화물차에 타나?

지난 11월 21일, 프랑스에서 아일랜드로 가는 화물 컨테이너 안에서 16명의 이주민이 살아 발견됐다는 말에, 필자는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 달 전 벨기에 제브뤼헤에서 영국 에섹스로 이송된 냉동고에서 사체로 발견된 39명의 베트남인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발 뉴스를 찾아보면, 지난 한 달 “대형화물차(lorry)에서 발견된 이주민”에 대한 소식이 예사롭지 않다. 19일에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가는 컨테이너에서 25명이, 6일에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가는 컨테이너에서 아동을 포함한 20명이, 4일에는 그리스 냉동차에서 41명이, 지난 10월 30일에는 벨기에를 지나는 냉동차에서 12명의 이주민이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다. 출신 국가도 이란, 수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베트남 등 다양하다. 이들은 왜 화물차에서 발견되는 것인가?
전쟁과 빈곤으로 난민과 이주민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1951년 UN 난민협약을 기초로 한 거버넌스 시스템은, 빈곤에 쫓기는 “경제난민”을 난민의 법적 정의에서 제외하고도 늘어나는 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난민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10개국 중, OECD 가입국은 터키(1위)와 독일(8위) 단 두 나라이고(20위로 확대한다고 해도 미국, 프랑스 두 나라가 추가될 뿐이다), 대부분의 난민은 경제, 사회적 상황이 열악한 제3세계 주변국가에 불균형하게 몰려있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는 외국인 혐오의 메시지를 퍼뜨리고 반난민 및 반이주민 정서에 의지하는 극우파 정당이 선전하며 정치적인 세력이 됐다. FRONTEX 등을 통해 범유럽 솅겐 국경을 수호하는 데는 아낌없는 재정이 투여되고, 경제 강국으로서 세계 난민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다하자는 의견은 등한시된다.
지난 10월 39명의 비극적인 죽음 후에, 유럽언론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늘어놓았다. 이 사건은 2000년에 제브뤼헤에서 도버해협을 건너는 화물차 안에서 58구의 중국인 사체가 발견된 것과 판박이 사건이고, 지난 19년 동안 유럽행 난민과 이주민의 죽음은 지겹게도 매년 반복되었다. 지옥의 바다라고 불리는 지중해를 건너는 아프리카 출신 난민과 이주민들은 2016년 한 해 4,757명의 죽음이라는 정점을 찍고 나서 이번 해에는 잠시 주춤한 듯 보였는데, 바다에서의 죽음이 육로에서의 죽음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불평등과 빈곤의 악화는 전 세계적 문제가 됐다.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유로운 이동권이 주어지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목숨을 걸어야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이동성의 양극화 또한 세계화의 일면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화물 컨테이너를 타는 사람들을 “박스피플”이라고 부르며, 베트남전쟁 중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넌 “보트피플”의 21세기형 변형으로 이해한다고 한다.
(https://www.nytimes.com/2019/11/01/world/europe/vietnamese-migrants-europe.html)
하지만 “박스피플”과 “보트피플”을 바라보는 전 세계의 시선은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냉전의 논리가 팽배했던 70년대에는 자유와 안전을 찾아 피난을 온 보트피플에게 미국과 호주 등에서 영주권을 부여한 데 비해, 현재 박스피플은 적발되면 감금과 추방되고 만다. 과거 보트피플을 도왔던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비쳤던데 비해, 박스피플의 이동을 돕는 사람들은 밀입국 브로커, 인신매매범, 심지어 살인의 죄목으로 처벌을 받고 대중의 질책을 받는다.
이번 사태를 해석하는 학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나날이 달라지는 브렉시트 정국을 두고, 영국의 국경이 닫힐 것이라는 예상에 많은 수의 이주민이 이동한다는 의견, 지난 10월 39명의 죽음 이후 화물차 검사와 단속이 강화되어 검거 수가 늘었다는 의견 등이 있다. 하지만 필자는 화물차가 난민과 이주민들의 이주 도구로 이용되는 현상과, 그 상징성에 주목하고 싶다. 
EU 국가 내 교역은 1993년 EU 협약 이후로 나날이 증가해, 지난 7월 한 달간 EU 28개 국가 내 수출총액은 2,920억 유로에 달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의 교역에서 대형화물차는 각 나라의 공급망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됐고, 많은 수의 컨테이너를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빈곤에 시달리는 제3세계 이주민과, 고장난 난민 거버넌스 아래, 제3국 난민캠프 등에서 언제 올지 모를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난민들이 절망에서의 탈출을 위해 화물차를 선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1세기 이민정책은 이주민을 값싼 노동으로 상품화했고, 값싼 노동을 고용할 고용주와 전 세계적 경제 불평등이 있는 한, 이주민들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다. 화물차는 이주민에게 더 나은 임금과 생활환경의 장소로 안내하기도 하지만, 죽음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유럽을 가로질러 달리는 화물차만큼 인간을 상품화하는 21세기 세계화의 참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 또 있을까.


이소훈 교수
(사회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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