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6 (금)

  • 맑음동두천 11.6℃
  • 흐림강릉 16.0℃
  • 황사서울 12.2℃
  • 구름조금대전 12.3℃
  • 구름많음대구 18.0℃
  • 흐림울산 16.9℃
  • 흐림광주 14.9℃
  • 흐림부산 15.4℃
  • 흐림고창 11.9℃
  • 흐림제주 15.3℃
  • 구름많음강화 9.5℃
  • 구름많음보은 11.7℃
  • 구름많음금산 12.5℃
  • 흐림강진군 16.2℃
  • 구름많음경주시 17.9℃
  • 흐림거제 16.0℃
기상청 제공

대학시론

대학에서 '교육'의 의미와 교수·학생의 역할

URL복사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곳이다. 그런데 학문이 삶과 분리될 수 없듯이 대학 역시 사회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학문이 삶을 성찰하여 우리를 참된 길로 인도해야 하듯, 대학도 이런 학문 활동으로 사회 전체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 학문과 삶, 대학과 사회가 분리될 수 없다면, 대학의 연구와 교육도 이런 바탕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대학의 연구와 교육도 삶과 학문 사이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이루어내야 한다. 우리는 이 같은 정신을 일찍이 철학자 칸트로부터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철학을 ‘학문으로서의 철학’과 ‘삶으로서의 철학’으로 구별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학문의 엄정성을 포기한 채 부당한 삶에 매몰되거나 삶의 현실을 외면한 채 학문의 공허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였다. 그는 사유의 엄밀함을 추구하는 ‘학문으로서의 철학’과 현실의 다양성에 참여하는 ‘삶으로서의 철학’ 사이의 조화를 모색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늘을 나는 비둘기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공기를 외면한 채 날 수 없듯이 인간의 사유도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감각이 없이는 생명력을 지닐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우리의 학문 연구와 교육도 이처럼 사유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부단히 감각을 통해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교육에는 삶과 학문이 분리되어 겉돈 면이 없지 않다. 학교 공부가 재미없는 것도 그 공부가 삶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학 무용론도 대학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문하기와 세상살이가 분리될 수 없듯이, 대학교육 역시 이들의 소통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학문하기로서의 교육과 세상살이로서의 교육이 분리될 때, 학문도 세상도 그 존재 가치를 잃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 양자의 소통은 교육의 기본 과제여야 한다. 그런데 이 소통은 보편적 사유와 개별적 사태를 이어주는 ‘실례 들기’를 통해서 가능하다. ‘실례를 든다.’는 것은 사유와 현실, 학문과 삶, 대학과 사회를 이어주는 매개 활동이다. 그러나 이 실례를 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실례를 들기 위해서는 삶의 현실과 학문적 이론 모두를 잘 알아야할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판단의 부담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례를 통한 학문하기와 교육하기를 포기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학문도 무력해지고 삶도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수업은 실례를 매개로 교수의 학문적 전문성과 학생의 삶의 다양한 경험들이 서로 소통하는 마당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마당에서 학문적 전문성을 갖춘 교수는 현실에서 고뇌하는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반면에 학생은 자신이 경험한 현실을 진지하게 표현하되 교수의 학문적 엄밀성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양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서로 아포리아(aporia)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이론의 한계와 현실의 빈곤을 메워나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대학교육은 기존의 지식 축적 중심의 교육을 넘어 지식을 반성하고 창조하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AI교육이 확장되고 로봇교육사가 출현하는 이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제 더 이상 많은 지식을 축적하는 데 목표를 두는 기억 의존 교육은 지탱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는 지식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상상력을 길러내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는 서로에 대한 근원적 질문하기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 시대는 답을 전하는 교수가 아니라 좋은 질문을 건네는 교수, 답을 암기하는 학생이 아니라 부단히 물음을 제기하는 학생을 요구한다. 학생과 교수가 서로 질문하며 자신들의 생각 틀을 깨어나가는 바로 그 자리에 상상력이 자리하며, 이 상상력이 서로에게 창조의 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물음의 교육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게 만든다. 그 한계의 자각은 우리로 하여금 타자를 잡아 쥐어(greifen) 소유하고 지배하는 개념(Begriff)의 차원을 넘어서도록 요구한다. 이는 곧 타자를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맞이하도록 요구한다. 타자를 주체로 맞이함은 곧 타자를 인격으로 예우함이다. 내가 타자를 개념화하면 타자 역시 나를 개념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개념의 틀 속에 갇히게 된다. 교육은 개념을 획득하는 능력도 길러주어야 하지만, 이를 넘어서는 능력도 길러주어야 한다. 우리는 전자에서 전문지식을 획득하고, 후자에서 교양지식을 얻는다. 교양지식 없이 전문지식만 갖추면 개념의 폭력을 횡사하게 될 것이며, 전문지식 없이 교양지식만 쌓는다면 개념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교수와 학생은 이 양자를 잘 조화시켜내는 교육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교육을 통해서만 학문다운 학문, 삶다운 삶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김석수 교수
(인문대 철학)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