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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사상학(事上學)이란 무엇인가

진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어디는 공간이고, 어떻게는 방법이다. 오랜 옛날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가져왔고,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진리를 추구해왔다. 승려들은 산이라는 초세간적 공간으로 들어가, 그들이 만든 방법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고, 선비들은 서당 등 세간공간에서 또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진리를 찾아왔다. 이 과정에서 하학(下學)과 상달(上達)의 문제가 발생한다. 하학은 낮고 쉬운 것을 배운다는 것이고, 상달은 깊고 어려운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달이 목적이니 특별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하학을 통해 상달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날 공자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라며 탄식하였다. 이에 자공(子貢)이 물었다. “어찌하여 선생님께서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까?” 그러자 공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으며 아래에서부터 배워 위로 통달하니 나를 알아주는 이는 하늘뿐인가.”라며 대답했다. 공자가 하학이라 한 것은 수양을 통한 구체적인 실천을 말하고, 상달은 인의(仁義) 등 추상적인 관념을 말한다. 즉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추상적인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공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공간을 바로 진리를 추구해 가는 수도장(修道場)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실을 위대하게 본 것이다. 
그렇다면 실천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인들은 ‘사상학(事上學)’을 제시한 바 있다. 사상학은 용어 그대로 ‘일 위의 학문’이다. 여기에 대하여 조선의 선비 한강 정구는, “성인의 성스러움과 현인의 어짊이 고원(高遠)하고 이상하여 하늘에 올라가고 공중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실로 사람의 도리에 당연하여 마치 남자는 밭을 갈고 여자는 길쌈하는 것과 같아 직분에 떳떳한 일인데, 다만 사람들이 제 스스로 살피지 못하고 스스로 닦지 못하여 아는 자가 이미 드물고 행하는 자는 더욱 드문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사상학이란 남자가 밭 갈고 여자가 길쌈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성껏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상학은 ‘일 위에서 진리 구하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은 특별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상적인 일이 바로 그것이다.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공부가 일이고, 패션 디자이너는 옷 만드는 것이 일이고, 교수는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일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아비의 일이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어린이의 일이다. 그리고 도전정신을 갖고 세계와 부딪히는 것은 청년의 일이다. 그 일 속에 진리가 있고, 일 속에 비로소 삶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퇴계의 제자 학봉 김성일은 “학문은 장구(章句)나 문사(文詞)의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용사물(日用事物) 위에서 구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사상학(事上學)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사상학은 ‘여기-지금’을 존중한다. 지나간 과거에 미련을 갖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현재 영위하는 삶의 시간을 중시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공간을 위대하게 생각한다. ‘여기-지금’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가꾸어가는 소중한 일[事]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교수의 연구실은 무릉도원에 다름이 아니며, 학생들이 공부하는 강의실은 창의적 놀이터가 된다. 일을 수행해 나감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시련마저 축복이며, 아름다운 문장이나 화려한 말로 요설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그 일상은 언제나 진실되다. 사상학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을 들머리, 조금씩 노랗게 물들어가는 캠퍼스의 은행잎을 본다. 이렇게 가을을 맞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우울하다. 사상학을 분명히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을 불신하며 ‘여기’를 떠나 ‘저기’에 가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기’서 깨닫지 못하면 ‘저기’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신라의 고승 원효를 생각해 보라. 중국 유학을 포기하고 오히려 신라에서 위대한 공업을 이루지 않았던가. 우리가 사는 대구 공간이나 우리가 공부하는 경북대 공간도 마찬가지다. 사상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곳은 우리가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며, 이 때문에 더욱 소중한 수도장이다. 아름다움은 이처럼 언제나 아주 가까운 곳에서 깊게 열려 있다.



정우락 교수
(인문대 국어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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