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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동방을 향한 창,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 부쳐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에게 더 이상 먼 곳이 아니다. 전공 특성상 이 도시로 출장 갈 기회가 가끔 생기는데, 최근 몇 년은 이곳이 한국인지 러시안지 헛갈릴 정도로 거리에서 쉽게 한국말을 들을 수 있었다. TV여행 프로그램에 자주 소개되기도 했고, 그게 아니라도 유난히 더운 한국의 여름, 비행기로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이국적인 이 도시는 피서지로도 나쁘지 않다. 몇 년 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해변에서 우연히 우리 학과 학생을 만나기도 했다. 군 제대 후 친구들과 놀러 왔단다.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도 많이 좁혀졌다는 방증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러시아 극동에서 가장 큰 도시다. ‘동방을 지배하라’는 의미의 이름에선 제국주의적 뉘앙스도 감지된다. 러시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인데, 20세기 초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개통된 후 블라디보스토크는 극동의 교통과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독립운동의 근거지이자 이광수나 박경리의 소설에도 자주 등장하는 해삼위가 바로 이곳이니, 우리 역사와도 긴밀한 연관을 지닌 곳이다. 군사 요충지이기도 해서 소련 붕괴이전엔 일반인들의 출입조차 통제되던 블라디보스토크는 최근 아시아에서 가장 ‘핫’한 도시로 꼽히는데, 지난 9월 4일부터 6일까지 제5차 동방경제포럼이 개최되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에 있는 극동연방대학 캠퍼스는 건물만 달랑 있기 마련인 러시아의 여느 대학들과 다르다. 광대한 부지에 멋진 조경, 초현대식 학교 건물, 태평양을 바라보며 리조트처럼 지어진 숙소 등은 2012년 푸틴 대통령의 특별 명령으로 건설되었다. 극동지역 대학들을 통합하면서 이례적으로 많은 자본이 투입된 이 캠퍼스에서 2015년 이후 매년 동방경제포럼이 개최되고 있다. 푸틴은 매년 아시아 각국 정상들을 초청해서 이 행사를 개최할 만큼 꽤 공을 들이고 있는데, 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 국가들이 경제와 문화 발전을 함께 모색하자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양쪽에 걸쳐 있는 나라지만 역사적으로 유럽을 지향해왔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예술 문화의 폭발적 발전이 가능했던 것도 유럽을 향한 창이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천도하여 유럽 각국의 문화를 모방한 덕분이었다. 반대로 몽골의 침입에 200년 넘게 고통을 겪은 탓인지 러시아인들에게 아시아는 오랫동안 ‘야만’과 동의어로 여겨졌다. 황제의 눈에 벗어난 정치범이나 흉악범들을 유형 보냈던 시베리아보다도 더 멀리 있는 미지의 땅이 극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최근 이곳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푸틴의 오랜 집권과 측근의 부정부패, 서구와의 불편한 관계 등 러시아 정부가 처한 위기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극동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크림반도, 시리아를 둘러싼 입장 차이로 야기된 서방과의 껄끄러운 관계와 경제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러시아로선 본인들의 강점인 에너지 자원 수출 판로를 동북아 지역으로 다변화하여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다. 값싼 러시아의 전력과 천연가스 제공은 동북아 국가들로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그뿐이랴. 극동은 광활한 영토에 농업·수산업·임업·관광자원의 보고이며, 그 중심인 블라디보스토크는 북극항로의 중요 기점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은 에너지 산업뿐만 아니라 택지개발, 도로준설, 항만건설 등 극동 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몇 년 전부터 대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그런데 동북아 각국 정상들이 앞다투어 참석했던 2-3년 전과 달리 올해는 그 열기가 어느 정도 식은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대통령과 총리가 꾸준히 참석했던 우리나라도 이번에는 부총리를 파견했다. 우리로서야 복잡한 국내 정치가 그 이유일 것이고, 외적으로는 경색된 동북아의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그 와중에 지난 9월 5일 블라디보스토크로 급히 날아간 아베 총리와 푸틴의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북아 국가들과 복잡한 외교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 입장에서는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체결과 경제협력이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으리라. 
사실 이런 경제적 실익을 논하는 자리가 오히려 정치적 사안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갈등 구조에서 정치 논리를 빼고 경제적 실익이라도 챙기자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경제와 문화 교류의 증대가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촉진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동북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지향하며 물리적, 심리적 경계를 넘어 다면적인 교류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동방을 향한 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포럼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윤영순 교수
(인문대 노어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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