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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기획

지구가 돌듯 세상도 움직인다 탈코르셋 운동

누나는 1교시 수업이 있는 날, 오전 6시 알람벨을 맞춘다. 눈이 붉게 충혈 됐지만 렌즈를 끼고 화장을 한다. 고데기로 머리를 매만지고,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고선 덜 마른 긴 머리를 휘날리며 강의실로 달려간다. 반면 나는 1교시 수업이 있어도 침대위에서 뒹굴거리다가 일어나 세수만 하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선 강의실로 달려간다. 하루는 누나가 늦잠을 자서 늦게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여전히 열심히 꾸민다. 그냥 모자 쓰고 마스크 착용하고 학교로 가면 안 되냐고 묻자 그러고 학교에 가면 어디 아프냐고 자꾸 물어보기 때문에 그 말이 듣기 싫어서라도 꾸며야 한단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누나는 브래지어 후크를 풀고 일자형의 품이 넉넉한 티셔츠로 갈아입는다. 앞이 뾰족하고 굽이 높은 구두 때문에 까진 발뒷꿈치에는 밴드를 붙이고 대자로 누워 기지개를 편다. 한국 여성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을 갖추도록 ‘코르셋’을 입는다. 무엇에 의한, 무엇을 위한 ‘꾸밈’인지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코르셋을 조인다. 여기에 반기를 들고 코르셋을 벗어 던진 여성들이 있다. 여성다움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사회적 억압에 맞서는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알아보자●

#1. 서비스직 아르바이트에 단정하게 하고 갔음에도 머리가 짧고 화장을 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또한 대외활동에서 경험한 모의 회사 면접에서도 남성보다 훨씬 불편한 복장으로 불편한 자세를 오래 유지해야 했습니다. (인문대 A씨)
#2. 멀쩡히 일하던 가게에서 갑자기 잘린 적이 있는데 일하는 것도 성실도도 태도도 달라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 하나, 화장을 안 하고 나가기 시작하고서 얼마 뒤 잘렸습니다. 남자 손님이 많은 가게였고요. 잘리는 이유도 갑자기 가게랑 제가 안 맞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알바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그때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인문대 B씨)


코르셋, 탈(脫) 코르셋

코르셋(corset)의 사전적 정의는 배와 허리를 졸라매어 체형을 보정하거나 교정하기 위해 착용하는 여성용 속옷이다. 코르셋이 만들어졌던 시대에는 허리가 가느다란 여성이 남성에게 인기가 있었다. 따라서 남성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과거의 여성들이 남성들이 생각한 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물이 코르셋이다. 본교 페미니즘 소모임 ‘여성주의’ 회장 김가현(예술대 미술 13) 씨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등장하게 된 것은 남성 중심의 권력으로 여성이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점에 착안해 현대사회에서 탈코르셋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탈코르셋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보정 속옷 ‘코르셋’을 벗어난다는 의미이자 코르셋처럼 여성을 옥죄는 ‘여성성’의 이미지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회적 움직임을 말한다. 이 운동에서 상징적인 의미로써의 ‘코르셋’은 속옷(브래지어)뿐만 아니라 높은 구두, 화장과 같은 꾸밈과 이런 꾸밈의 강박적인 일상화를 포함한다.
해외에서 진행된 탈코르셋 운동으로는 여성의 발을 옥죄어 기형적으로 작게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천족운동(전족반대운동), 1968년 미국의 미인 대회인 미스아메리카(Miss America) 대회장 앞 속옷을 태운 미스아메리카 반대 시위가 있었다. 2012년 영미권 국가에서는 SNS에서 남성 상의 노출은 허용하면서 여성 상의 노출은 검열하는 것에 반발해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국내에는 1920년대 우리나라 신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단발’ 역시 탈코르셋 운동의 일부라는 의견이 있다. 그 유행은 1922년 기생조합인 한남권번의 기생 강향난에 의해 시작됐다. 또한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이렇게 세 명의 여성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앞서가는 신여성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남성에게 의존하던 지난날을 잊고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또한 지난해 6월 2일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 10명이 페이스북코리아의 사옥 앞에서 상의 탈의 시위를 벌였다. 페이스북 측이 남성의 반라 사진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의 반라 사진은 음란물로 규정해 삭제한 것에 항의하기 위한 시위였다. 여성의 신체를 음란물로 규정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후 SNS 상 잇단 탈코르셋 선언과 함께 가장 가시적으로 보기 쉬웠던 코르셋인 브래지어 착용으로부터 벗어나는 탈브라운동이 시작됐다. 또한 탈코르셋을 지지하는 이들은 SNS 등에 ‘탈코르셋’을 해시태그(#)로 해서 부러뜨린 립스틱 등의 화장품, 짧게 자른 머리카락 등 인증 샷을 올렸다. 이들은 주로 여성에게 부여된 ‘꾸밈’의 이미지가 코르셋이라고 주장했다.


꾸밈코르셋뿐만 아니라 내면화된 코르셋

예능에서 출연진의 행동에 대해 언제나 여성스러움, 남성스러움, 여성스럽지 못함, 남성스럽지 못함이라는 평가가 붙는다. 이처럼 탈코르셋은 단순히 외적으로 불편한 화장이나 불편한 옷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 그런 꾸밈과 행동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시선과 여성이라면 마땅히 해야 한다는 식의 행동양식과 어투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한쪽 성별에만 지나치게 치우쳐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타인의 시선에 구속되지 않으려는 해방운동이다. 본교 천선영 교수(사회대 사회)는 “탈코르셋이라는 단어가 사회가 정한 여성성, 남성성과 같은 것들에 저항하는 운동을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탈코르셋의 시작, 페미니즘 그리고 선택의 자유

탈코르셋 운동의 지향점

#3. 화장하는 것과 내 머리 손질하는 것은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평소에도 화장 하고 싶음 하고 안하면 안하고 머리도 진작에 숏컷으로 잘랐지만 굳이 탈코의 의미가 아니더라도 나에게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사범대 C씨)
#4. 자신을 가꾸는 것은 개인 자유의지고, 안 할 사람은 안 하면 되는데 그걸 강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간호대 D씨)

탈코르셋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남성에게는 강요되지 않지만, 여성은 강요받는 꾸밈 그 자체에서 벗어남으로써 가시적으로 운동 효과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단순히 꾸밈 자체가 힘든 일이니 꾸밈을 포기해서 편함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꾸밈에 갖는 기호가 어떻든 간에 ‘여성성’ 안에 화장, 긴 머리와 같은 꾸밈이 포함되는 상황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 탈코르셋 운동이다. 김가현 회장은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에게 ‘여성다움’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사회적 억압에 맞서는 저항행위라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탈코르셋 운동은 사회운동으로 여기에 참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본인의 몫이고 참여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운동에 참여하도록 강요하는 여성,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 등 개인에게 화살을 돌리고 내부갈등을 조장할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꾸밈노동을 강요한 사회구조에 주목·비판해야 한다.

탈코르셋과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여성이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평등, 해방의 의미를 가진다. 탈코르셋 운동은 선택의 자유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여성성’만이 미의 기준이라는 선택지를 없애고자 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꾸밈을 거부한 여성이 가시화되면 꾸밈노동을 줄이거나 중단할 자신이 없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에게 모두 화장하고 인형처럼 예쁘지 않아도 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는 정말 다양한 여성이 있고 그들이 본연의 모습으로도 잘만 살아간다는 걸 알면 아름다움에 대한 과열된 경쟁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꾸밈 : ‘선택’의 문제

#5. 탈코르셋(색조화장 등)하면 “어느 정도 화장은 해야지”라며 ‘여자’라는 이유로 안좋은 시선으로 본다. 사실 여자든 남자든 ‘사람으로서’ 기초적인 관리만 하면 되는 건데 어떤 성별은 화장을 당연하게 해야되고 어떤 성별은 화장을 하면 안좋은 시선으로 본다. 성별을 구분하지 말고 사람 대 사람으로 보면 좋겠다. (경상대 E씨)

천 교수는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기르는 등의 취향 모두 개인의 ‘선택’이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러한 선택지와 취향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며 “온전한 본인만의 취향인지, 미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는 사회적 억압에 의해 만들어진 취향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탈코르셋 운동이 필요한 이유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억압, ‘여성’에 대한 억압 구조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여성이 자유롭게 꾸밀 자유뿐만 아니라 어떤 성별이라도 자유롭게 꾸미고 꾸미지 않을 자유가 모두 존재하는 사회. 그리고 어떤 성별이든 선택을 강요받지 않고 선택할지라도 그것이 불이익이 되지 않는 사회.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 탈코르셋 운동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으나 주위 시선이나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 화장을 하거나 꾸미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하는 사람들 대부분 탈코 외에도 레디컬하게 행동해서 무섭다.

탈코르셋도 나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또 다른 족쇄로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탈코르셋 하는 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탈코(색조화장 등)하면 “어느 정도 화장은 해야지”라며 ‘여자’라는 이유로 안 좋은 시선으로 본다. 사실 여자든 남자든 ‘사람으로서’ 기초적인 관리만 하면 되는 건데 어떤 성별은 화장을 당연하게 해야 되고 어떤 성별은 화장을 하면 안 좋은 시선으로 본다.

반드시 꾸며야 할 필요는 없고, 상황에 맞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는다. 여성의 꾸밈노동이 당연시 여겨지는 사회에서 (탈코르셋이)의미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시작했는데 주변의 반응과 누구도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화장은 원래 안 했고(피부 건강, 비용 등) 어린이(초등학교 저학년)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외모의 여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본지는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본교생 총 357명을 대상으로 페미니즘과 탈코르셋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문항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여성 탈코르셋 운동 인식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여부 ▲꾸밈 비용(시간,돈) 등이다. 백분율은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반올림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에 응답자의 152명(42.6%)이 ‘페미니즘은 필요하지만 한국 페미니즘은 잘못됐다’고 답했다.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고 계신가요?’라는 문항에 여성 응답자의 117명(71%)이 ‘안 한다’고 답했다, 29명(17.6%)이 ‘하고 있다’고 답했다, 15명(9.1%)이 ‘하고 싶지만 주위의 시선때문에 포기했다’고 답했다, 4명(2.4%)이 ‘했다가 포기했다’고 답했다.
‘아르바이트, 취업 등에 여성에게 부과되는 용모 관련 수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물음에 ‘필요 없다’가 143명(46.1%)으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으며 다음으로 응답자의 130명(41.9%)만이 ‘현재는 합리적이지 않지만 용모관련 수칙은 필요하다’에 답했다. 현 용모와 복장관련 제도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학생이 많았다.


김동호 기자/kdh19@knu.ac.kr
편집: 곽나영 기자/gny18@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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