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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론

중국몽(中國夢)의 시금석

홍콩은 근대 중국의 역사와 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홍콩에서 쑨원은 중국 혁명을 꿈꾸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1920년대 제국주의와 군벌에 반대하는 민중의 투쟁을 대표하는 성항대파업이 있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국민당 정부의 탄압과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거점이었으며, 1949년 이후에는 공산주의를 표방한 신중국 수립에 동의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탈출구이자, 국민당 독재 하의 타이완에서 자유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해방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1950년대 이래로는 사람과 상품, 서비스,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국제무역항이었고, 이를 보장하는 독립적인 사법권과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공간이었다. 이처럼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이면서도 중국에 새로운 사상을 공급하는 저수지이자 정치권력의 탄압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였고, 미래 중국의 번영을 예감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1997년의 홍콩 주권 반환은 현재의 홍콩을 이해하는 가장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홍콩인들은 홍콩반환이 자신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 초부터 대략 60만 명의 홍콩인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이주하거나 이중국적을 취득했다. 홍콩인이 중국 정부를 불신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이 대체로 1949년 신중국 수립에 반대하여 이주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받아 홍콩의 좌파 노동조합이 주도한 1967년의 반식민정부 운동의 폭력성은 중국공산당에 대한 홍콩인들의 기억을 더욱 악화시켰다. 1989년 5월 천안문에서 전개된 민주화 요구를 성원하는 대규모 시위가 홍콩에서 일어난 것도 이러한 정서의 연장이었다. 덩샤오핑은 이러한 홍콩인들의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 ‘일국양제(一國兩制,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체제)’를 제안했다. 여기에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의 조건을 더하여 1984년 영국과 중국 정부는 1997년 이후에도 적어도 50년간 현재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와 홍콩인의 생활양식 유지를 보장하는 ‘홍콩반환협정’을 체결했다. 이 모델은 1999년 마카오 반환에도 적용되었고, 타이완 정부를 향해서도 중국 정부는 이 모델의 적용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 대한 홍콩인의 불신이 쓸데없는 걱정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3년 홍콩 정부는 기본법 제23조 ‘국가전복금지법’ 입법을 추진했다. 당시에는 언론과 의사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었으나 중국에서는 입법 추진이 홍콩 정부의 중요한 책임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계속 언급하고 있다. 2014년에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새로운 홍콩 행정장관 선출안을 발표했다. 사실상 친중국적 인사만이 행정장관에 입후보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홍콩 시민들은 우산으로 최루탄을 막아내며(‘우산혁명’) 무려 79일 동안 시위를 전개하였지만, 시위 장기화에 따른 홍콩 경제 악화를 우려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두 사건을 통해 홍콩인들 사이에는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와 ‘항인치항’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홍콩을 중국화하려고 한다는 두려움이 확산되었다. 2019년 ‘범죄인 송환법’ 반대를 명분으로 전개되고 있는 홍콩 시위는 중국 정부에 대한 홍콩인의 이러한 뿌리 깊은 불신에 근본 원인이 있다. 약속된 2047년 이후에도 홍콩에서 살아가야 할 젊은이들에게는 더더구나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997년을 전후로 출생한 10대 후반과 20대의 청년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진핑 시대의 국가 목표는 ‘중국몽’으로 표현된다. 국가의 부강, 민족의 진흥, 그리고 인민의 행복이 실현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몽’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애국주의적 중국 정신, 그리고 중화민족의 대단결을 통해 성취된다. 여기에 비춰볼 때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시위대다. 일부 시위대 사이에서 나타나곤 하는 ‘홍콩광복’과 ‘시대혁명’ 등의 주장은 ‘일국양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이것은 중국 정부가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부정으로 간주된다. 그런 점에서 홍콩 시위의 앞날은 불투명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2019년은 5.4운동 100주년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이며 천안문 사건 30주년이다. 5.4운동은 중국에서 공산주의 운동이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였고, 신중국은 인민의 나라를 주창하였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에서는 대학생의 ‘민주’ 요구가 무력으로 좌절되었다. 이제 홍콩인들이 다시 ‘민주’를 요구하고 있다. 언젠가는 중국도 ‘인민의 행복’을 가장 앞자리에 두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9년의 홍콩은 ‘중국몽’의 시금석이 아닐 수 없다.


홍성구 교수
(사범대 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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