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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기획

더 이상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지 말자!

- 장애등급제 폐지

현행 노인복지가 만약 등급제로 실시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복지는 평등해야 한다며 등급제를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장애인 복지에 대해서는 31년간 등급제가 유지돼 왔다.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행정기관에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닿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지난 7월 1일부로 등급은 폐지됐지만 정도라는 기준으로 여전히 사람을 나누고 있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둘러싼 문제점을 살펴보자●

1. 장애등급제의 역사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개별적인 장애의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차등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제도다. 1989년 제정된 장애인복지법은 일본의 장애자 등급제를 기초해 만들어졌다. 당시에 장애인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보장 제도나 서비스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장애등급제 시행과 함께 도입된 정부는 전기료 할인, 공원입장료 할인 등 일부 공공·민간 영역의 감면·할인제도를 도입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조현수 정책조직실장은 “당시 장애인 입장에서는 의학적 손상 정도에 따라 등록과 함께 등급을 받으면 각종 감면·할인 혜택이 일괄적으로 적용되니,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정부에 요구하고자 하는 인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로 장애등급제는 장애인 개개인의 환경이나 욕구를 파악할 필요 없이 의학적 손상 정도에 따라 획일적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공급자 중심의 제도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2. 장애등급제 폐지, 무엇이 달라질까?

장애등급제 폐지의 배경
지난 2013년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 및 장애종합판정체계 도입 등 국정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내에 ‘장애판정체계기획단’을 구성했다. 이후 2015년 정부는 장애인 맞춤형 서비스 지원체계를 중심으로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을 실시해왔으며 이러한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현 정부는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국정과제로 수립해 단계적 폐지를 추진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었던 2017년 4월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석해 장애인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장애 정책의 최종 목표는 완전한 통합과 참여”라고 밝혔다. 현 정부의 첫 번째 장애인 정책 공약 역시 장애등급제 폐지였다.
2017년 12월 국회는 현행 법정용어인 장애 ‘등급’을 장애 ‘정도’로 개정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30년간 물리적 손상을 기준으로 유지돼온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을 기능적 손상으로 바꾼 변화였다.
지난 2018년 3월 5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 아래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열려 장애등급제 폐지 추진 방향을 논의·의결했다. 당시 이 총리는 모두발언을 통해 “장애등급제 폐지는 수요자 중심 정책의 구체적인 출발”이라고 강조하며 “장애인 개개인의 욕구와 수요를 존중하면서 그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애 ‘등급’에서 장애 ‘정도’로의 변화는 단순한 용어 개정일 뿐 실질적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 동안 여러 장애인단체들이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해온 것은 장애인 각각의 장애 유형과 처한 여건이 다른데 등급판정이 물리적인 의료 기준에만 지나치게 편향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낮은 등급의 장애인들은 지원이 필요함에도 서비스의 제한을 받기도 했다. 거동이 불편한 4급 장애 등록자는 1~3급 장애 등록자만 가능한 휠체어 리프트 장착 차량을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보긴 논의 끝에 올해 7월 1일부로 폐지된 것이다.


장애등급 폐지 전
1. 팔, 다리, 시각 등 의학적 상태에 따라 1~6등급으로 나눴다.
2. 일상생활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장애등급이 4등급 이하라면 활동 지원신청 자격 미달로 활동 지원 서비스 신청 자체가 불가능했다.
3. 장애등급이 3등급 이하라면 휠체어리프트가 장착된 장애인 콜택시 이용이 불가능했다.
4. 1~2등급 장애인과 3등급 중복장애인만 장애인연금을 수령할 수 있었다.

장애등급 폐지 후
1. 장애인 등록은 현행대로 유지되지만 1~6등급으로 나누던 장애등급은 없어지고 장애의 정도에 따라 기존 1~3등급 장애인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4~6등급 장애인은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용어가 변경된다.
2. 활동 지원 신청 대상은 1~3등급 장애인에서 모든 장애인으로 확대되고 활동 지원 시간은 월평균 120시간에서 127시간(보건복지부 추정)으로 늘어나며 본인부담금은 32만 2천900원에서 15만 8천900원으로 인하됐다.
3. 중증의 보행 장애가 있으면 장애인 콜택시 이용 가능해졌다.
4. 장애인연금 수급 자격이 실제로 근로가 어려워 소득수준이 낮은 장애인으로 변경됐다.





3.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한 우려 및 문제점

정부는 ▲활동 지원급여 ▲보조기기 제공 ▲거주 시설 이용 ▲응급안전 등 4가지 서비스를 지원할 때 장애인들의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이하 종합조사)를 장애등급제가 폐지된 7월 1일부로 도입됐다. 종합조사표의 조사 항목과 문항을 보면 국가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관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 활동 지원이 필요한지 그 상태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종합조사는 기존 1~3급 장애인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인정조사표의 수정 버전에 불과하다. 오히려 기능 제한 중심의 관점이 더 높아진 내용에 가깝다. 바로 일상생활 동작이라는 소위 정상성과 의료적 관점에 가까운 기능 수준을 정해두고 거기에서 얼마나 능력이 떨어지고 무능한지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에 전장연 조 실장은 “조사원들은 장애인의 기능 제한 수준을 정확하게 평가해야 하고 자칫 행정적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엄격하게 평가하게 된다”며 “조사에 임하는 장애인은 자신의 삶과 생존이 걸려있는 중요한 판정에 있어서 위축된 상태일 수밖에 없고 자신의 무능을 계속해서 입증하며 모멸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의학적 관점의 기능 제한 평가 자체도 문제이지만 조사문항 간 배점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단적으로 기능 제한 평가 총점 532점 중에 옷 갈아입기에서 기능 제한이 심하면 24점을 받게 되고 누운 상태에서 자세 바꾸기에서 기능 제한이 심하면 12점을 받게 된다. 각각의 일상생활 동작이 어떤 장애인에게는 더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데 더 필요하지만 점수 배점이 낮다면 결국 장애인 지원 서비스 시간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각각 일상생활 동작의 배점 차이가 활동지원사의 노동 강도를 의미한다거나 해당 일상생활 동작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서비스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재로써는 장애인 당사자가 체감하는 필요의 정도와 서비스 시간은 다를 수 있고 이것이 고려되기 어렵다는 것은 조사 문항과 배점만으로도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1) 장애 특성 미반영

종합조사표가 장애 유형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15개 법정 장애 유형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하나의 종합조사표로 장애 정도를 평가하겠다는 것이 그 문제의 원인이다. 특히 시각장애인 요구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고 심지어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시각장애인들이 받는 서비스가 기존보다 9시간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본교 재학 중인 장애 학생 A씨는 “종합조사표 문항이 장애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며 “장애등급제 폐지가 실질적으로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2) 기존에 받던 지원 분산 우려 표현

복지 대상의 확대에 걸맞은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오히려 활동 보조 시간 등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 장애인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하 복지위)는 지난 7월 17일 장애등급제 폐지에 따라 급여량이 감소하는 기존 수급자의 급여량 보전을 위해 873억 원이 증액된 987억 원을 통과시켰지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대폭 삭감, 결국 정부안 114억 원만 확정됐다. 
이런 복지위 증액을 반영하지 않은 장애등급제 폐지는 결국 정해진 부분에서 혜택을 나누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중증(기존 1~3급) 장애인이 기존에 받던 서비스 시간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발생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 25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종합조사 방식을 적용하면 활동 지원 서비스의 월평균 지원 시간이 현행 120시간에서 127시간(추정) 이상으로 늘어나게 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지난 5월 12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장애인 2520명을 대상으로 종합조사 기준에 따라 모의평가를 한 결과 34.4%가 현재 받고 있는 활동 지원 시간보다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전장연 조 실장은 “기존과 같은 서비스 시간을 제공하는데 새로 혜택을 받게 되는 장애인들이 추가되면 어느 쪽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며 “재원 및 인력 보충을 통해 장애인들이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맞춤형 서비스”라고 말했다.

4. 문제는 장애등급제 자체가 아니다

1) 예산 확대 및 실질적인 제도 개선

#예상사례1. 특별교통수단
(’20년부터 적용)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 장애 3급인 B씨는 휠체어 리프트가 장착된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대상이 1~2급으로 한정되어 있어 이용이 불가능.
→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 이용대상이 종합조사(이동 분야)에 따라 실질적으로 이동이 제한되는 장애인으로 개편됨에 따라 B씨도 장애인콜 택시 이용이 가능해짐.


#예상사례2. 장애인연금
(’22년부터 적용)

정신장애 3급인 C씨는 직장생활이 불가능해 생계에 어려움이 있지만 장애인연금이 1ㆍ2급 및 3급 중복 장애인(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를 둘 이상 가진 장애인)으로 한정되어 있어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없음. → 장애인연금 수급 자격이 종합조사(소득ㆍ고용 분야)에 따라 실제로 근로가 어려워 소득수준이 낮은 장애인으로 변경됨에 따라 C씨도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됨. [출처 : 보건복지부]

현재 특별교통수단은 1~2급 장애인 200명 당 1대 꼴로 평균 3~4시간의 대기시간을 가지고 운영된다. 특별교통수단의 추가배치 없이 B씨가 특별교통수단 이용 범위에 포함되더라도 현재와 같은 서비스 구조에서는 사실상 이용이 어려울 것이다.
전체 장애인의 약 14%에 해당하는 장애인만이 수급받고 있고 1~중복 3급이라는 임의적 기준으로 인해 C씨가 장애인연금을 수급받기는 어렵다.
예산 증가 없이 숫자 등급을 장애 정도로 껍데기만 바꾸는 것은 진정한 장애등급제 폐지라고 할 수 없다. 개인별 욕구와 사회적 환경 등을 고려하여 맞춤형 서비스 지원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바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진정한 장애등급제 폐지는 필요한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권리로서 보장될 수 있느냐가 핵심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예산 확대가 전제조건이자 필수요소이다.
전장연 조 실장은 “현 정부가 임기 내에 OECD 평균의 4분의 1에 불과한 GDP 대비 장애인복지예산을 어느 정도까지 확대할 것인지 목표치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본교 장애학생지원센터 김정숙 주무관은 “장애등급제 폐지로 1~2등급만 받던 혜택에 3등급인 장애인들이 추가된다면 대상이 확대된 만큼 재원 및 인력 보충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2) 서비스 사정 제공에서 장애인의 참여 및 권한 인정

서비스 제공을 위한 판정 도구는 분명히 필요하지만 정부가 장애등급제 폐지 관련 문건에서 언급하는 개인의 필요와 욕구를 반영하는 것은 기계적 판정 도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장애인의 참여 보장 및 권한 인정이다.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환경과 욕구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다.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판정과정에서 당사자의 결정 권한이 보장되는 것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맞춤형 지원은 ‘예산’맞춤형 지원이 될 수밖에 없다.
2015년 UN총회는 향후 국제 사회의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를 수립하는 데 있어 ‘누구도 배제되지 않을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은 바 있다. 장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사회 구조적인 차별의 문제로 바라보고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계기로 장애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 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 방향은 비장애인과의 삶의 격차를 완화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 수준은 최소한 국제 사회의 평균은 돼야 한다.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펌프 위에 붓는 물인 마중물과 같이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시작이 돼야 한다.


김동호 기자/kdh19@knu.ac.kr
편집 이연주 기자/lyj17@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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