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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기획

어제의 나는 어땠나요, 오늘의 나는 안녕하신가요.

-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그대에게, 다이앤 리(인문대 독어독문 93)

다이앤 리(한국명 이봉주, 인문대 독어독문 93) 작가는 세계일보에서 주최한 제15회 세계문학상에서 소설 <로야>로 대상을 수상한 신예 작가다. 이번 수상은 15년 만의 재외 한인 수상으로, 20년 동안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신인 작가가 수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독자들의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자신에 대한 냉철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면의 회복을 시도한 작가 다이앤 리. 그녀와 함께 우리 자신의 삶에 귀 기울여봤다.●



Q. 오랜간만에 모교를 방문했다. 어떤 기분인가?

내 지도교수님이자 은사이신 이덕형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학교를 찾은 지 꼭 10년 만이다. 오랜 세월동안 학교가 너무 많이 바뀌어서 어디가 어딘지 전혀 못 알아보겠다.(웃음) 캠퍼스가 과거에 비해 더 커지고, 발전한 것 같다. 과거에 비해 많이 변화했지만, 모교에 돌아오니 왠지 모르게 편안했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부생 시절 추억이나 활동이 있는가?

학부생 시절에는 학교에 있었던 시간보다 공부를 위해 독일, 캐나다 등 해외에 나가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저학년 시절 학과 소리패 활동에 짧게 참가한 적도 있지만, 캠퍼스 생활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쉬운 부분이다.

내가 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학생 운동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던 시기였다. 나 또한 당연히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조세희 작가님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마르크스의 여러 저서들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Q. 소설 <로야>로 문단에 처음 등단했다. 소설을 쓰게 된 과정은 무엇인가?

어린 시절부터 소설을 쓰겠다는 거창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83년, 라디오 방송에서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인터뷰를 들었다. 그 때는 해외여행 자유화제도가 실시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이 특별대우를 받을 정도로, 해외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당시 나는 책을 통해서 유럽이라는 곳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 묘사가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정작 큰 감명을 받은 부분은 나 자신이 원하면 유럽이든 어디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용기’였다. 그때부터 나는 성인이 되는 해에 유럽으로 떠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정했다. 이후 과외 등으로 돈을 모아 결국 성인이 되는 해에 유럽으로 떠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제2외국어로 배운 독일어와 본교에 입학한 후 공부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흥미를 느껴 독어독문학을 평생 공부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학부생 시절에는 이덕형 교수님의 강의가 인상적이었는데 수업에서 주인공의 내면을 끈질기고 집요하게 기술하는 독일 동화를 다룬 적이 있다. 이 강의에서 이야기와 소설의 매력을 느껴 공부하는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Q. 2001년부터 캐나다에 정착한 이후로는 한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이 없었을 것 같다. 이런 언어적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 소설 집필을 준비했나?

외국에 거주하게 되면 모국어의 사용이 제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실제로 지금 내가 구사하고 있는 한국어는 전통적 규칙이 파괴된 한국어다. 어쩌면 오히려 이것이 작가라는 직업상 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이점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이해해야 하는 표현의 정확성 측면에서 보면 이는 상당한 구속이다. 때문에 <로야>를 쓰는데 있어 번역을 통해서도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또 꾸준히 공부하고 소설을 쓰려면 한국어의 지속적인 사용을 포기할 수 없다. 한국에 있는 지인과 연락하는 겸, 한국어를 스스로 훈련하는 수단으로 미니홈피를 이용했다. 지금은 미니홈피 대신 블로그를 개설해 글을 게시하고 있다. 블로그에는 문학적인 글도 게시하지만 개인적인 내용의 글도 적는다. 꾸준히 한국어로 소통하려고 노력한 것이 소설 집필에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세계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Q. <로야>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로야>는 작가인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나는 ‘참는 것’을 삶에서 우선으로 여겨왔었다. 과거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할 때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자신이 피해자라며 나에게 끊임없는 요구를 할 때도, 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 1월에 있었던 대형 교통사고는 이런 나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5~6중 추돌이 일어난 사고에서 나는 운 좋게도 큰 상처 없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를 기점으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문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좁고 긴 구멍으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체력과 정신이 모두 한계에 다다라서야 ‘몸이 아픈 내가 왜 정신적으로까지 더 힘든 것일까’와 같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 나서야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에 끌려가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말은 쉽게 했지만, ‘왜’라는 질문에서 스스로의 답을 찾고 이에 대해 대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여기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추가되면 이는 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왜’라고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관행·관습·도리·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야만 한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 번째 걸음이다.


Q. <로야>에서 가정폭력을 소재로 삼아 가족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가족은 개인에게 가장 오래되고, 밀폐되고, 내밀한 조직이다. 동시에 모든 가족은 그 가족만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때문에 일반적인 사례를 가지고 한 개인의 가족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말이 되지 않는다.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아이에게는 더욱 그렇다. 완벽하지 못한 부모가 있을 뿐, 모든 아이는 완벽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생물학적으로 부모를 따르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설사 부모가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도 이 본능은 유지된다. 결국 아이들은 가정 내 폭력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거나 폭력을 인지했음에도 ‘가족이기 때문에’ 무감각해진다. 내면의 상처를 받으면서도 이를 상처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상처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꾸만 자기 자신을 외면하게 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아이는 완벽하다.’ 여기서 ‘완벽’이라는 의미는 ‘가능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상처로 망가진 가족이라도 그 구성원은 다시 진화된 가족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Q. ‘소통’에 대한 내용이 많다. 다이앤 씨가 생각하는 소통이란 무엇인가?

세대 간 소통, 친구 간 소통 등 소통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소통은 ‘자기 자신과의 소통’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실제로 그럴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나처럼 여러 가지 관습과 규칙에 얽매여 자기 자신이 왜 아픈지도 모른다. 아마 그들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도 못한 채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과의 소통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거부한다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 전체가 분명 심각하게 다뤄야 할 문제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나’에게만이라도 본인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단순히 ‘어른이니까’, ‘모두가 다 이렇게 사니까’와 같은 이유로 위로받고 싶어 하는 자아를 억누르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물론 처음부터 자신의 자아를 솔직하게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아를 관찰하려면 자기 자신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자신과 남을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고 평가해 나 혼자만이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이 나아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당연히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뀐다. 사회의 여러 관계 속에서 ‘타인이 정의하는 나’보다는 ‘내가 정말로 정의해보고 싶은 나’에 초점을 맞춘다면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타인과의 소통 또한 유익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Q. 계획하고 있는 차기작이 있다면?

<로야>는 나 자신의 첫 번째 이야기, 다시 말해 부분적인 이야기다. 부분을 통해 전체를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두에게 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로야>의 다음 이야기를 꼭 쓸 예정이다. 현학적으로 말하면 <로야>는 ‘내면의 실존’에 관한 이야기다. 나의 삶이 계속 진행되고 성장하는 동안에는 제2의 로야, 제3의 로야가 나올 것이다.

나는 소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 썼다.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왜’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내 글이 다른 사람들의 내적 질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쓸 예정이다.


Q. 작가로서 독자들과 본교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 내가 어떤 상황과 자극에 반응하고,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졌으면 한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고, 낯선 것을 낯익게 보자’는 말은 결과적으로 동일한 말이다. 다음으로 내가 인지한 나의 반응에 대해,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이유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진정하게 원하는 내 모습과 자극을 주는 대상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고민의 결과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한다. 일단 행동하기 시작하면 과거와 똑같은 양상으로 반응할 확률은 무척이나 적어진다. 이 단계까지 올 수만 있다면 이미 내면의 회복은 이뤄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타인의 행동에까지 영향을 주고 싶다면 합당한 행동을 넘어 나만의 고유한 것을 발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한 마디로 간추리면 ‘나’ 자신을 유연하고 끊임없이 성장시키자는 것이다. 몇 학번으로 정해졌다고, 어느 출신지로 정해졌다고, 어느 부모의 어느 자식으로 정해졌다고 성장 없이 삶을 살아가는 것은 획일적으로 평가되는 시공간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본격적으로 상처를 회복하고 성장하길 바란다. 그 후 어느 지점에서, 어느 선상에서 나와 만나자.



▲<로야>의 표지.



▲ 지난달 17일 다이앤 리 작가는 모교 독어독문학과를 방문해 학부생 및 내·외빈을 대상으로 강연을 실시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이앤 리 작가는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봄으로서 아팠던 과거와 화해하고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건영 수습기자

유동현 기자/ydh17@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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