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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유변

학생회와 학보사 기자, 그 사이 아슬한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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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의 의무는 무엇인가? 당신은 본인이 노력한 만큼의 대가도 없이 ‘봉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결과보다는 과정에 도취해 ‘열심히 했다’며 생색내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작년 2학기에 본지에 기자로서 몸담게 되기 전부터 과 학년대표로서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 활동 약 1년 차에 접어든 지금, 나는 아직도 과학생회에서 부학생회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1년 반에 걸쳐 학생회 활동을 하며 여러 번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 있었다. 내가 최선을 다해 학우들의 권리와 편의 증진을 위해 애쓰고 힘써도 결국 그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나의 노력과 땀보다는 객관적인 결과라는 것이었다. 객관적인 결과만을 바라본 그들의 쓴 소리가 내게 긍정적인 피드백 작용을 한다기보다는, 내 노력을 몰라준다는 생각에 ‘울컥’ 억울함부터 치밀게 했었다. 그리고 그런 쓴소리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스스로가 학생회에게 쓴소리를 할 ‘의무’를 지니게 되는 ‘학보사 기자’의 타이틀을 달게 된 직후부터였다. 관점의 전환은 생각보다 너무 빠르고 쉬웠다. 반대의 입장을 겪어봤는데도 그랬다. 내겐 억울함의 표현이었던 ‘울컥’하는 감정의 표출을 직접 당해보니 달리 느껴졌다. ‘얼레, 이 친구 생색내네?’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은 내가 학생회로서 해왔던 감정적 자기 변호들 또한 ‘생색’이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후 대학부에 발령을 받은 나는 여러 단대, 과 학생회들 및 총학생회와의 접촉을 전담하게 되어 어쩔 땐 기자로서의 나로, 또 다른 날은 학생회로서의 나로 그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들 중 누구는 왜 기사를 이런 식으로 썼느냐며 따져댔고, 누구는 내게 ‘학생회 활동 해보셔서 아시겠지만…’하며 그들의 노력에 공감을 요구했다. 그래, 공감은 간다. 그들(나 또한)의 노력은 곧잘 평가절하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쓴소리를 발판 삼아 발전해야 할 사람이자 단체들이다. ‘우리’가 듣는 쓴소리들이 심지어 ‘우리’를 단지 무작정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더라도 ‘우리’는 그 쓴소리를 딛고 도움닫기 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에 도취하여 제자리에 멈춰 서서는 안 된다. 자승자박의 덫을 조심해야 한다.
하루는 신문사 선배가 내게 말했다. “학생회 하면서 기자 활동하기 힘들텐데.” 절대적 일의 양이 많다는 문제보다 내 정치적 입장에 대한 걱정이었다. “네가 학생회 활동하는 와중에 그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취재에 뛰어들 수 있겠어?”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당연하다’였고 선배의 대답은 ‘네 선택은 어떨지 몰라도 주위 시선들이 곱지 않을 거다’였다. 뭐, 나는 학보사 기자로서 내부 문제를 캐내 밝혀낼 것이고, 학생회로서는 해당 기사 자체의 비판적 역할을 받아들이고 기사에 의해 형성된 비판적 여론을 수렴하여 결국에 발전해나갈 것이다. 내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계속 될 것이며 뭐, 균형 감각은 발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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