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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의 수준

우리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는 대충 일만개 정도 되는 부품으로 만들어졌지만, 호미나 낫 같은 간단한 농기구는 부품 두 개짜리 공산품이다. 불에 달군 쇳덩어리를 망치로 쳐서 모양을 만든 뒤 다듬은 나무토막과 연결하면 조립이 끝나는 부품 두 개의 공업 기술 수준에서 일만 개 즉 십의 4승 부품단위의 수준까지 오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개 부품도 않되는 모나미 볼펜을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고 신기해 하다가 선풍기나 컬라 TV처럼 부품 백 개, 천 개의 공산품으로 이행되어가는 기술의 진보를 1960년대와 70년대를 지나면서 우리들은 지켜봐왔던 것이다.
지금은 우리도 일부 만들 수 있는, 자동차보다 열 배 이상의 부품이 소요되는 십의 5승 하이텍 물건들이 보고 싶다면 하늘로 올라가거나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점보 제트기나 원자력 잠수함은 부품 수가 50만개 정도 된다고 한다. 50만개 부품으로 움직이는 기계는 설계 단계에서 집단 지성이 필요하고 축적된 정교한 공학기술과 고도의 조직 노하우까지 겸비해야 하기에 기술 선진국이 아니면 가능치 않은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십의 6승 즉 백만 개 부품 차원의 물건은 우주 공간으로 올라가면 볼 수 있는데 달 왕복 우주선이나 우주 정거장 같은 기계가 될 것이다. 공학 기술의 최고봉, 가히 인간 기술의 걸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같은 초 하이텍 기계들은 사실 기술력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다. 만화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황당한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낼 수 있는 창의적 두뇌 집단과 방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서 효율적인 정치 사회적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몇몇 강대국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물건인 것이다. 어찌 되었건 서구의 과학 기술 문명은 산업혁명 이후 불과 2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십의 6승 차원의 기술혁명을 이루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 뱃속에 무진장 많이 살고 있는 대장균은 도대체 부품 몇 개짜리 물건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혹자는 생명체인 세균을 어떻게 감히 부품 갯수로 따지는 기계와 비교할 수 있느냐고 꾸짖을 수도 있겠지만 세균도 엄밀히 따지면 수많은 부품들로 이루어진 정교한 기계임에 틀림이 없다. 차이라면 자가 조립되고 스스로 증식하며 환경 적응에 필요한 인공 지능을 장착하고 있으며, 사물인터넷처럼 주변 다른 세균들과 커뮤니게이션 할 수 있는 합목적적 기계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10의 8승개 정도 되는 모든 부품들에 조립 정보가 들어있어서 스스로 움직이고 저절로 꿰어 맞추어져서 완벽한 대장균이 만들어지는 데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환상적인 작은 기계가 세균인 것이다. 약 38억 년 전에 조물주가 만들어 바다에 집어넣었거나 아니면 원시 바다 어디에서 저절로 조립되어 활동을 시작한, 인간이 만든 기계와는 차원이 다른 나노 로봇이 바로 우리 몸속에서 살아가는 대장균인 것이다.
엔지니어들에게 있어서 궁극의 모델 기계가 바로 대장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번 즐거운 상상을 해 보자. 우리 국방부에서 대장균을 닮은 부품 백 만개짜리 원자력 잠수함을 만들어 제주 앞바다에서 진수식을 치루었더니 태평양을 운항하면서 바다 속의 철분과 온갖 물질들을 흡수 정제하여 자라면서 20년마다 한 대가 두 대가 되도록 늘어나서 여분의 국방예산 투입 없이 태평양이 우리나라 잠수함들로 득실거리는 바다가 될 것을. 잠수함 안에서는 DNA가 복제되듯 승무원들끼리 열심히 결혼하고, 태어난 아이들을 교육시켜 승무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만 있다면 언젠가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상상해본다.
미래에는 국가별 과학기술의 수준을 평가할 때, 만들 수 있는 기계의 부품 개수가 아니라 자체 조립, 자가 증식, 환경 적응능력을 갖춘 기계를 만들 수 있는지가 척도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먼 미래에는 진화의 능력까지 갖춘 잠수함을 건조하는 시대가 올 지 누가 알겠는가? 득실거리는 잠수함의 바다에서 마침내 육지로 기어 나오는 탱크와 스텔스 전폭기로 까지 스스로 진화 하는 기계의 시대를 볼 수 있을지 말이다.

하지홍 교수

(자연대 생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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