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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획

기다림으로 열꽃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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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파악된다. 필자가 파악한 연봉상(52) 씨는 나이 차를 넘어 친구로 사귀고 싶은 유쾌한 사람이다. 그의 개성 강한 작품은 지난 2010년 서울 G20 세계 정상 회의의 기념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줄줄이 이어지는 경력에 비해 웃는 얼굴은 소박한, 그럼에도 특유의 실험정신으로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 2004년 본교 박물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어 본교와도 인연이 깊은 도예가 연봉상 씨를 만났다●

용진요(작업장) 안에 있는 작품 전시방에 들어가자마자 맨 처음으로 한 일은 도자기 구경이었다.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만 공간을 남겨놓고 바닥이든 창틀이든 도자기들이 빽빽히 자리 잡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도자기들이 있었지만 각각의 크기나 모양, 색깔들은 다 달랐다. 개성 강한 그의 특징이 한 눈에 들어왔다.

도예를 시작한 계기?
어릴 때부터 흙을 좋아했다. 흙을 만지다가 고등학생 때 그림을 그리고 미대에 가서 도자기를  선택했다. 더 확실한 계기는 전국대학미술대전에 출품한 작품이 동상을 수상한 것에 있다. 상을 받고 보니 이걸 계속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른 곳에 취직하면 두 번 다시 흙을 못 만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살리려고 한 거다. 흙을 계속 만지려면 계속 흙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 선배나 후배나 다른 데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 못 봤다. 힘들어도 전공을 파야 손에서 안 놓고 작업을 할 수 있다.


실험정신이 뛰어나다.
시작부터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백자, 청자 재연에 가까운 작업은 할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이 잘 하니까 내가 잘해도 2등밖에 못 한다. 새로운 백자, 청자, 도자기를 구상하고 찾다보니 실험정신이 강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똑같은 유약 발라 본들 뭐하나. 똑같은 게 나오지. 내 것을 찾으려고 하니까 독특한 게 나오는 거다. 작가는 내 것을 찾아야 한다. 예술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베끼는 것은 영혼을 베끼는 것이다. 그런데 내 것을 찾는 것은 전통을 매개로 한다. 전통이 축이 돼서 옹기 유약이든 유약 시유 방법이든 개발한다.

작품 <우주>가 2010년 G20 세계 정상 회의 불교계 대표 작품으로 선정됐다.
1, 2년 만에 나온 게 아니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토기와 자기 기법을 합친 ‘토하기법’으로 만든 거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고 흙 자체, 자연을 바라보면 그곳에 답이 있다. 우주도 그 안에 있다. <우주>는 20년 전에 나온 작품인데 나는 좋아서 보고 있으면 지인들이 ‘시커먼데 이게 뭐가 예쁘냐’는 말을 했었다. <우주>가 탄생 하면서 <달 표면 접시>도 같이 탄생했는데, 바다에서 건졌냐는 소리도 들었다. 그래도 남들하고 타협 안 했다. 그랬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작품 활동의 원동력?
옆의 아내가 나를 봐줬다. 아내와 나는 바라보는 시점이 같다. 배고파도 그냥 살자는 마인드다. 마음만 먹으면 작품을 얄팍하게 팔아먹을 수 있는데 집사람이 그때 그때 차단시켜 준다. 제일 무서운 사람이지.

인터뷰 내내 연봉상 씨 옆에 앉아서 말을 거드는 아내 분은 내조의 여왕으로 보였다. 실제로 연봉상 씨가 작품을 판단할 때 아내 분이 선택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를 위해 책으로 이론을 배우고 작품을 보는 눈을 길렀다. 아내 분은 남들과 다른 작업세계를 가진 남편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스승님이 있나?
도자기에서는 나 스스로가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 다 했으니까. 운전도 지금은 안 한다. 도자기 하나만 해도 바쁘니까 차 끌고 돌아다니거나 취미를 둘 여유가 없다. 도자기 생각만 하니까 다른 거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반 도자기와의 차이점?
일단 흙이 다르다. 흙을 수비(곡식의 가루나 그릇을 만드는 흙 따위를 물속에 넣고 휘저어 잡물을 없앰)할 때 흙을 보면 ‘이게 도자기 흙이 되겠다, 유약이 되겠다’가 눈에 보인다. 또 유약이 다르다. 옛날 사람들처럼 주변에서 재료를 구한다. 주변에 포도나무, 복숭아나무가 있으니까 그것들로 유약을 만든다. 형태에서도 고집을 둔 작품이 많다. 항아리를 만들어서 다음 날 일부러 찢어버린다. 찢어도 담을 수 있으면 되지. 움직이는 입체가 되는 거다. 눕혔다가 심심하면 세워도 보고. 하지만 내 작품을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작품에는 계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서히 계단을 넘어가는 거지. 처음부터 눈 뜬 사람이 어디 있나. 예술의 영역에서는 타인을 비하해서는 안된다. 할머니들한테 피카소 그림 보여주면 ‘이게 뭐고?’ 할 것이다. 

대구에서 유일하게 장작 가마를 사용한다.
장작 가마에서 불을 땔 때는 ‘잉태된다’고 표현한다. 인간도 뱃속에 있을 때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알 수 없듯이 장작 가마 안도 그렇다. 예전에는 불을 때면서 잘 나오기를 빌었는데 이제는 주어지는 대로 만족하고, 생각보다 더 잘 나오면 고맙다고 한다. 잘 안 나오면 재도전하고. 그렇게 항상 다시 도전하는 모티브가 필요하다. 

가마 앞에선 묵언을 한다던데...
어느 날 누가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니까 입이 근질근질 했던 차에 신이 나서 자랑을 막 했다. 그런데 다음 날 꺼내보니까 실패를 했더라. 세치 혓바닥으로 꺼내니 작품이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징크스가 생긴 이후로는 아예 사람들 출입도 못하게 한다. 불이 굉장히 민감한데 말 한마디 하다가 놓쳐버리니까 말을 안 하는 게 맞다. 사람이 안 오는 것도 맞고. 불 땐다고 하면 온 사람들이 미안해하면서 돌아간다.
처음 묵언을 했을 땐 입이 아팠다. 다물고 있으려니까 답답해서 죽겠더라. 하지만 여기서 묵언은 불하고의 대화다. 그것에 집중을 하고 있으면 불 소리도 들리고 불 색깔도 보인다. 나는 불 심장소리라고 표현하는데 온도에 따라서 불 흐르는 소리가 다르다.

긴 장작의 한쪽 끝을 가마 안에 넣고 다른 끝을 귀에 가져다 대면 타닥타닥 불 심장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묘사를 위해 눈을 감고 손가락을 살살 움직이는 모습이 황홀해 보였다.

전국에 산이 많은데 왜 하필 팔공산에 자리를 잡았나?
고향은 충북 괴산인데 고등학생 때 본가가 대구로 이사했다. 본가와 가까운 곳이어서 그렇기도 한데 거친 표현을 좋아해서 여기 정착할 수 있었다. 팔공산에서 캐낸 거친 흙으로 만든 작품도 있다. 팔공산은 도심과 가까워서 대중과 융화도 되고, 흙과 나무 구하기가 자유롭고 마음 놓고 불을 피울 수 있는 공간이다. 용진요도 골조만 빼고 다 내가 직접 지은 것이다. 장작 가마도 직접 지었는데 그 가마에서 집 지을 때 쓴 벽돌도 직접 찍어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하나하나 다 소중하다. 작업을 해서 나온 결과물은 내 자식과 같다. 그 중에도 더 좋은 게 있기야 있겠지. 그런데 이게 하루 아침에 나온 게 아니니까 계속 실험을 하다 보면 또 새로운 데 빠져든다. 하나만 잘해도 되는 데 만족을 못해서 자꾸 새로운 걸 찾는다. 그러니까 재미가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해서 도자기에 꽃이 피면 ‘와 좋구나’ 한다. 실패작도 많지만 좋은 게 한 점만 나와도 몇 날 며칠을 보고 ‘와 좋네’ 하면 힘들었던 일은 다 잊혀진다. 

작업할 때 무슨 생각을 하나?
작업 생각 밖에 안 한다. 한 번에 두 가지 생각을 못한다. 작업에 집중해야지. 장작 패기에서부터 불 때기, 유약 만들기, 하물며 차 마시는 것까지도 다 나 혼자 한다. 그러다보니 체력이 안되긴 하지만 남에게 맡기는 게 용납이 안된다. 다 내 손으로 해야 한다. 더 늙어서 힘이 없으면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 내가 한다. 제자나 보조자가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가마에 도자기를 넣거나 들어낼 때는 아내가 도와준다.

체력관리의 비결은?
아내가 음식을 맛있게 해준다. 하루 밥 세끼. 일을 하려면 배부르게 먹어야 한다. 불 때다 너무 힘들면 오히려 잠이 안 오는데 그럴 때 개를 데리고 걷는다. 누워있으면 더 쳐진다. 비몽사몽이라도 걷는 게 더 낫다. 그래서 일없이 누워있는 사람, 게으른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자식들도 초등학생 때는 7시 땡 하면 일어나야 했다. 밤 9시 되면 자야하고 새벽 4시가 되면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항상 한다. 그리고 뒷산에 가서 3, 40분정도 걷는다. 

불을 때는 것은 생각보다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하루 종일 가마 앞을 지키고 있어야 하고 숱한 시간 불을 계속 봐서 눈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 그는 해가 갈수록 체력이 약해지는 게 느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학생들도 자기 본분에 충실 하는 게 최고다. 그게 학생이잖아. 자기가 뭐하는 건지도 모르고 적성에 맞네 안 맞네 할 거 없다. 딴 데 가면 잘할 것 같나? 다른 거 없다. 지금 하는 거라도 열심히 해라. 나도 전공 시작할 때 이걸 할까 말까 했다. 하지만 자기한테 주어진 과라도 졸업해놓고 배추장사를 하든 뭘 하든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난 천막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이다. 천막에서 슬레이트 그리고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시작이 바닥이었으니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위로 올라갈 일 밖에 없었다. 항상 그런 희망을 가졌다. 안 보이는 저 앞에 내 희망이 있다고 믿었다. 어느 정도 가진 것이 없어도 젊음 하나가 재산이다. 젊음은 바닥에서도 올라올 수 있게 한다. 그런 용기는 있어야지. 
결정적으로 고등학생 때 국어선생님이 읽어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내 인생을 바꿨다. 그 당시 운동한다고 좀 껄렁하게 다녔다. 어느 날 국어 선생님이 이 시를 읽어주면서 ‘벼랑에 가서 죽는 놈도 용기 있는 놈이고 다시 돌아오는 놈도 용기 있는 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농땡이들도 다시 공부해도 된다. 그거 용기다.’ 그 말씀이 이상하게 와 닿았다. 그래서 운동하는 친구들이랑 관계를 끊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시로 용기도 생겼었고 해보니 정말 다른 길로 갈 수 있었다.

10년 만에 개인전을 결심했다.
전시회 한번 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수성 아트피아에서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여는 전시회니까 대구에서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해서 하게 됐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줄줄이 전시를 했으면 좋겠다. 테마가 있는 개인전을 하고 싶다. 커피잔 도자기전, 달항아리전 등 주제가 있는 개인전을 하면 재미있게 잘 나올 것 같다. 대구에서 하는 것도 좋지만 서울에서도 보여주고 싶다. 서울 인사동에 경인 미술관이라고 있는데 대학을 갓 졸업하고 가 봤었다. 너무 멋지더라. 나도 ‘언젠가는 이런 데서 전시해야지’ 라는 꿈을 가지고 돌아왔었다. 

도예가로서 최종 목표?
솔직히 생각해본 것 없다. 다만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게 체력이 받쳐 줬으면 좋겠다. 죽을 때까지도 흙을 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목표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건강해야 한다. 건강해야 건강한 작품이 나온다. 힘이 있어야 힘 있는 작품이 나온다.




연봉상 씨는 ‘마지막까지 일단 해보라’고 말했다. 과정 없이 어느 날 툭 떨어지는 것은 없다, 해보지 않고서 그 맛, 그 재미, 그 느낌을 모른다고 말이다. 이는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것을 먼저 찾으라고 강요하는 사회에 드는 반기다.
남들에 맞추지 않고 확고히 자신만의 길을 걷는 멋진 예술가. 그의 뚝심이 있었기에 <우주>가 빚어질 수 있었다.








오늘도

긴 붓 장작을 무심히 휘두른다

익어가는 흙 그림자에

스치듯이 내 마음의 그림을 그려본다

나의 캔버스인 가마 가득히

일렁이는 불길

익어가는 불놀이에

캔버스는 점차

불지짐으로 번진다

설레임

그리고 긴 기다림

터질듯 넘실대던 불길이 퍼지다

결국 새로운 숨길을 토해낸다

토해낸 소리에 흙의 심장소리가 들린다

내 꿈소리도...


-작업노트 중에서







"이 세상에 최고는 없다
그것만 바라봤기 때문에 최고라 하는 거지
자기가 아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다"







"감성은 머무는 것이 아니다
매번 새로운 감성을 만들어내야
거기서 새로운 작품도 나온다"






▲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연봉상 씨의 작업장, 용진요의 전경이다.



▲ 물레에 울리기 전 반죽을 치대고 있는 모습이다.



▲ 물레질을 하며 그릇의 형태를 잡아가는 중이다.



▲ 유약을 바른 그릇은 장작 가마에서 ‘잉태’된다.



▲ 기다림 끝에 작품이 완성된다. 연봉상 씨가 바닥에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문구를 새긴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1. G20 기념품인 <우주>



2. 반야심경을 표면에 새겨 놓은 도자기



3. 깨진 도자기도 장식이 되는 그의 작업장 



4. 공기를 담은 찻잔과 주전자



5. 달을 따다 놓은 듯한 <달 표면 접시>



6. 물결 문양이 인상적인 주전자



7. 대표작 <반야심경>, 액자에다 도자기를 바른 ‘액자 도벽 기법’을 시도한 작품




<연봉상 도예展>

전시일자: 03.18 ~ 03.23
전시시간: AM10:00-PM7:00
전시장소: 호반갤러리
입장료: 무료
문의: 053)668-1566, 1585

<연봉상 도예展>은 매체의 직접성을 보유하면서 현대 도자예술의 결합으로 다양한 조형적 접근이 재료적 한계를 뛰어넘어 현대 도자예술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전시회다. 작가 내면의 잠재된 시간의 순환성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은 순환된 시간 속에서 생명력을 창조하고 만들어진 이미지를 연결, 결합함으로 생명력을 부합하였으며 또한 과거와 현재의 접목을 통한 연결을 시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달 항아리를 비롯하여 현대적 감각의 정서가 깃들은 작품 5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출처 : 수성아트피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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