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상을 드로잉으로 기록하는 여행작가 리모. 본교 IT대학 컴퓨터학부를 졸업한 그의 본명은 김현길이다. 언제나 그리웠던 모교였다며 이렇게 경북대신문의 지면으로 동문들을 만날 수 있어 감회가 새롭다고 밝히는 그를 만났다●Q. 다녀오신 여행의 일정을 소개해주세요.사진 대신 그림으로 담는 여행이 목표였기 때문에, 여행지를 유럽으로 정했습니다.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을 종이에 가득 담아 오고자 마음먹었죠. 총 38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체코를 거쳐 마지막으로 터키의 이스탄불을 여행했습니다. 마음이 쫓기는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아서, 너무 많은 도시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Q. 여행을 떠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나요?새로운 직업을 고민하던 시기에 떠난 여행이었어요. 공과대학에서 소프트웨어를 전공하고 4년 가까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었는데,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결국 이기지 못했죠.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갑자기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니, 어떤 분들은 저를 굉장히 즉흥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하더군요. 하지만 회사에 입사하기 전부터 저는 그림을 좋아했기 때문에 굉장히 오랜 기간
안마사, 사회복지사, 볼링선수, 도서관 관장까지. 1급 시각장애인이 이뤄냈다고 보기는 어려운 직업들이다. 스스로의 열정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대구점자도서관 관장 서관수 동문(인문대 국어국문 84)을 만나봤다●Q.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질병으로 시력을 점점 잃었다고 하던데 학교생활은 어떻게 했는지?4학년이 되니 글자가 잘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업은 들을 수 있었지만 내가 교재를 확인하기 힘들었다. 그때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가 거의 필기를 해줬었다. 시험 칠 때에는 눈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아는 교수님들의 배려를 받았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나 스스로가 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눈이 유독 안 좋다고 생각해왔었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장애인의 삶이 나와 관계없는 삶이라고 생각했었다.Q. 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집에만 있다가 ‘안마학교’에 입학했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학교 졸업 후 눈이 점점 나빠져 일상생활이 불편해졌다. 눈이 나빠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집에만 있게 됐다. 결혼을 하고 자연스럽게 아내가 경제활동을 하고 나는 가
유명해지고 싶어서 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며 메이저 언론사의 취재 요청도 거부하는 얼굴 없는 천사. 그의 주된 관심사를 보여주듯 인터뷰 시작 전부터 그는 실종 어린이 전단을 보여주며 경북대신문에 협조를 구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웃긴 대학’에서 ‘가수엔터스’로 활동하며 봉사활동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는 유정호(23) 씨를 만나봤다●Q. 봉사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인가요?8년 정도 전에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 형편이 어려워 밥 한 끼 먹는 것도 걱정하고 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술이라도 드시면 저희는 밥을 굶어야 했죠. 중학교 때 학교 마치고 중국집에서 배달을 했는데, 홀몸 어르신이나 자장면 하나를 여러 명이서 나눠 먹는 아이들을 보니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실천하게 된 겁니다.Q. 인터넷 커뮤니티와 연계하여 활동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제 글을 보고 봉사할 용기가 생겼다는 분들을 많이 봐요. 제가 한 방식으로도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어요. 또 한국의 복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예를 들어 소년소녀 가장 같은 경우는 돈
대구·경북지역 미식축구를 휩쓴 오렌지파이터스의 주장. 언뜻 흘겨본 그의 거친 팔뚝에서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운동하는지 알 수 있었다. 5월과 6월에 있을 대구지역 대학 춘계리그와 일본과의 국제교류전 준비를 위해 맹연습을 하는 미식축구 국가대표 최승규 씨를 만나보았다●Q. 미식축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오렌지파이터스는 대구지역에서는 시합 때마다 이겨서 벌써 36연승 째에요. 그런데 전국대회만 가면 성적이 좋지 않아 속상한 적이 많았습니다. 특히 경북대와 부산대가 라이벌 관계에 있는데, ‘경부볼’(부산대의 경우 ‘부경볼’이라고 부름)이라고 해서 매년 친선경기를 해요. 경부볼에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계속 졌었는데, 작년 경기에는 꽤 큰 점수 차로 이겼답니다. 이때가 군대 전역한 후로 가장 기뻤던 것 같아요. Q. 미식축구의 매력은 무엇인가?미식축구라는 게 혼자 잘나서는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선수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야만 해요. 저는 디펜스(수비)의 중심 역할의 포지션에 있는데, 디펜스 11명이 하나가 돼서 오펜스(공격)를 막는 재미가 있어요. 또 미식축구는 다른 운동에 비해 격한 편인데, 제대로 부딪혔을 때는 나도 아프지만, 상
지난 2월 11일, 지역 최초 독립영화관인 ‘오오극장(55극장)’이 개관했다. 전국 2184개 스크린 중 독립영화만을 위한 스크린 수는 단 0.18%에 불과하다. 소수의 자본가가 이윤을 독식하는 일반적인 자본주의 구조도 아니고, 심지어 ‘다수’의 자본가가 ‘대다수’의 이윤을 독식하는 무자비한 구조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최초’ 독립영화관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오오극장의 프로그래머 김창완(35) 씨를 만나봤다.●사진: 이정아 기자/lja13@knu.ac.kr처음 만난 그는 꾸밈이 전혀 없는 소박한 의상과 멋쩍은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지역 최초’ 독립영화관 오오극장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도 부끄러워하며 “지역 최초는 사실이지만 굳이 수식어를 붙인 건 홍보 목적이 크죠” 라며 솔직한 모습을 드러냈다.오오극장은 순수 시민 모금을 통해 초기 설립 과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깊다. 운영 또한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로 이뤄진다. 지역 문화의 다양성을 바라는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55개의 좌석이 생겼다. 각 좌석에는 기부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오오(55)극장이다. 삼삼오오 모였다는 뜻도 있다. 오오극장 홍보대사는 tvN 드라마…
사진: 이슬기 기자/lsg14@knu.ac.kr책이라 하면 하얀 종이에 활자가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런 책의 이미지에 도전장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스스로 책이 된, ‘사람책’ 들이다. 사람책이란 디지털, 문서 등이 아닌 사람이 겪었던 소중한 경험과 지식, 재능, 정보 등을 면대면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사람책이 가지고 있는 경험들을 함께 공유한다. 사람책과 그 책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다리가 되어 주고 있는 국내 최대 사람도서관 ‘위즈돔’의 대구총괄매니저 정지용 씨를 만나봤다●Q. 위즈돔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A. 위즈돔은 지혜가 모여 있는 아카이브(특정 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아 둔 정보 창고)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도서관을 플랫폼 형태로 운영하는 기업으로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요즘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면대면으로 볼 기회는 줄어들고 그 과정에서 소통도 단절됐다. 위즈돔은 혼자 힘으로는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연결의 장 역할을 한다. 사람들의 경험을 공유해 단절된 소통을 연결하고 나아가 사회적 자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지난 24일부터 29일까지 박남희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회고전이 열렸다. 회고전은 박 교수의 작품인생을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손님과 취재진을 맞이하느라 분주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정년퇴임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녀의 미술 인생을 만나봤다●Q. 본교에 33년 동안 재직하셨다.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무엇인가?A. 제자들의 성장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나의 수업을 듣고 논문지도를 받아 대구는 물론 전국에 흩어진 대학의 교수가 된 상당수의 제자들, 국공립미술관의 학예사, 문화재단 등 각종 미술관련 기관의 기획자, 한국미술의 무대에서 인기작가가 되어 흰 캔버스도 예약되는 미술가 제자들이 흐뭇하다. 이번 전시에도 미술현장의 후배미술가, 제자 미술가 66명이 출품했다.Q. 미술, 미술교육, 미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셨다. 힘들지는 않았는가?A. ‘물론 매우 어렵다. 서울서 미술사학자들이 모이면 예술세계보다는 학문에 몰두함이 적절하다고 충고를 한다. 학문의 논리적 세계와 예술의 감성세계를 병행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밖에 없다. 학문과 예술 사이에서
자신이 썼기 때문에 여러 번 읽었을 텐데도 그토록 즐거울 수가. 기자에게 소설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저자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대학에서 국어학을 연구하는 교수, 은사님인 김춘수 시인에게 추천을 받은 시인, 60년 만에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출간한 신예작가 등 어느 분야에서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규 교수를 만나봤다●Q. 첫 장편소설 '포산 들꽃'을 출간했다. 소감이 어떤가?젊은 시절에 작가의 꿈을 꾼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러했다. 지금은 교수가 되어 논리를 따지는 학문의 길에 있지만 언제나 내면에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국립국어원장을 마치고 난 후의 휴식 시간이 결정적 계기였다.포산 들꽃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팩션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포산은 현 달성군 현풍의 고 지명이다. 왜군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데 있어 현풍은 중요한 길목이었다. 작품은 임진왜란에 현풍에서 발견된 진주 하씨의 편지글과 고대 정경운 선생의 「고대일기」를 팩트로 구상됐다.임진왜란에 늘 관심이 있었는데 이순신, 권율 같은 장군들만 주인공이 되더라. 사대부가들도 많은 노력을 했지만 민초들이 혼연일체가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