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 인류 문명의 끊임없는 진보를 가능케 한 것은 문자를 통한 기록과 그 기록을 담아내는 그릇, 즉 책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의 놀랄 만한 발전으로 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신속하게 저장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책의 효용성과 책이 가진 힘은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책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책만큼 효율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도구를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책이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수천 년 존속해 왔다는 사실은 책의 뛰어난 효용성이 긴 세월 동안 검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국가에서 역사서의 편찬이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문명 발전의 한 척도가 된다. 서양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의 헤로도투스는 기원전 5세기경에 『역사』라는 책을 지었고, 중국의 사마천(기원전 145년경~기원전 87년경)은 기원전 1세기경에 『사기』를 지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고구려 국초에 편찬되었던 『유기(留記)』가 있고, 백제 근초고왕(346~374) 때 박사 고흥(高興)이 편찬한『서기(書記)』를 있다. 신라 진흥왕 6년(545)에는 거칠부(居柒夫)가 『국사(國史)』를 편찬했다. 이러한 역사서의 편찬 순서는 문명 발전의 순서를 그대로 보여준다.

국가적 차원의 역사서 출판이 문명 발전의 순서를 보여주듯, 한 국가에서 각 지역의 서적 출판은 그 지역의 학술 문화 역량은 물론 경제적 역량까지 그대로 반영한다. 조선시대의 영남 지역은 대구의 영남감영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서적을 간행한 곳이다. 전통적 고서 출판뿐 아니라 서구 문명의 유입에 따른 양서 출판에서도 대구는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대구 지역 출판문화의 힘은 대체로 198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형설출판사는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저명 출판사였고, 학문사도 다수의 학술서와 교재를 출판하였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중앙집중화가 경제와 문화 등의 면에서 더욱 심화되면서 오늘날 대구의 출판문화는 크게 위축되었다. 요즘 대구 지역의 출판사에서 나오는 수준 높은 학술서와 교양서는 크게 줄어들어 우리를 걱정스럽게 한다. 튼튼한 재정을 가진 출판사 부족, 편집력과 기획력을 가진 인재 부족, 책을 구입하는 시민의 감소 등이 합작한 결과이다.

대구 지역의 출판 역사상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출판사는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이다. 이 출판사의 주인은 김기홍인데 류탁일 선생에 의해 김기홍의 상반신 사진이 소개되기도 했다. 김기홍은 유교 경전은 물론 초학자용 학습서와 각종 실용서적, 딱지본 소설 등 다양한 책을 간행하였다. 그가 간행한 책은 지금까지 90여 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근대 대구 지역 출판문화의 개척자이다. 김기홍이 간행한 책의 판권지에는 간행 주소가 “慶尙北道 大邱面 京町 一丁目 四十七番地” 혹은 “大邱府 京町 一丁目 二十七番地” 등으로 나타나 있다. 후자 주소지를 현재 주소로 바꾸면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동 1가 27번지이다(최호석 논문 참고). 약전골목 옆에 있는 가구골목 일대가 이 주소지에 해당한다. 당시 재전당서포 이외에도 소규모 출판사가 몇몇 있었다. 달성공원 서쪽에는 광문사(廣文社)가 있었는데, 이 출판사에서는 1906년에 『유몽휘편』이라는 아동학습서를, 1907년에 『중등산학』(中等算學)이라는 수학서를 간행했다. 후자는 대구 지역에서 나온 최초의 근대 학술서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출판 수량은 적지만 광문사의 출판이 시기적으로 가장 빠르고 근대적 서적이라는 점에서 이 출판사의 가치는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이밖에도 칠성당서포가 있었는데, 그 주소는 “大邱府 京町 一丁目 七番地”로 되어 있다. 앞의 재전당서포와 매우 가까운 자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대구 인근 지역인 성주에는 있던 회소당(繪素堂)이란 출판사에서는 1923년에 『달성세고』(達成世稿)라는 전통적 성격의 책을 목활자로 간행하기도 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대구의 근대 출판문화를 방치해 두었던 것이 아닌가? 우리 지역의 출판문화 전통은 더욱 자세히 밝혀져야 한다. 이런 노력은 앞으로 출판을 통해 우리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데 초석이 될 것이다. 재전당서포가 있었던 실제 위치를 확인하여 그 자리에 표지석 하나쯤은 세워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백두현 교수
(인문대 국어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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