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생이다.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럼 대체 무엇을 위해서 사냐고 묻는다면 아주 숨이 턱턱 막힌다. 요즘 누군가가 나를 향해 나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하면 화가 먼저 치밀어 오른다. 묻는 사람이 미워서도 아니고, 그가 내 미래에 참견해서도 아니다. 내 미래에 답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답이 있긴 있다. 바로 회사원, 공무원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답으로 여기는 것들, 그게 왜 내 꿈일까.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서로의 꿈은 다양했다. 누구든 자신의 꿈을 자신 있게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었으며, 뭐든지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미래를 꿈꾸는 모든 순간은 행복할 수 있었다. 나의 초등학생 시절을 돌아보기만 해도 꿈이 많아 뭘 적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지 꿈이 없어서 지어내 본 적은 없었다. 축구를 못했지만 축구 선수도 해 보고 싶었고, 법이 뭔지도 몰랐지만 변호사가 되어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다. 친구들이 나의 유쾌한 모습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개그맨이 되고 싶기도 했다.

지금과 달리 예전엔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미래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다 뻔하고, 또 뻔하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찍 현실을 깨닫고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 승자가 되는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내가 진짜 행복할까?

내가 정말로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이라도 해 보자. 꿈꾸고 시도라도 해 보자. 물론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다)’가 전문인 친구가 개그맨을 해보겠다고 하면 말려야겠고, 공도 제대로 못 다루는 친구가 제2의 손흥민이 되겠다고 학교를 그만두려 한다면 말려야 할 것이다. 많이 유치하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지금이 꿈이라도 꿔볼 수 있는 내 평생의 시간 중 가장 젊을 때이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내 현실을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한순간에 말도 안 되는 꿈이 생기지는 않는다. 부모님이 건물이라도 물려주었으면 평생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건물 중 하필 우리 부모님 소유의 건물은 없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타협은 있을 수밖에 없다. 타협할 이상이라도 갖고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평생 아파트 평수만 늘리고, 집안에 화장실 개수만 늘리고, 차의 크기만 키우다가 가는 인생이 아니라, 꿈꾸며 하고 싶은 일과 비슷한 일이라도 하면서 행복하게 살다가 가는 우리의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스물한 살,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대학교 2학년이 지나치게 현실에 함몰되어 꿈꾸기를 주저하는 것보다 비현실적인 것과 씨름하며 매일을 기대하는 것이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인 것 같다. 각자의 환경은 모두 다르다. 환경이 좋지 않아서 행복할 수 없고, 환경이 좋아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삶의 목적, 이유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학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이유를 가지고 행복하길 기도한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류수곤

(사회대 정치외교 18)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